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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4781 bytes / 조회: 4,629 / ????.06.03 23:16
[도서] 아키모토 야스시 / 코끼리의 등


가정과 사회(직장)에서 안정된 위치에 있는 중년 남자가 어느 날 말기 폐암 진단과 함께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6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가의 기로에 선 남자는 연명치료를 포기하고 남은 인생을 충실하게 살기로 결심한다. 여기에서 남자가 '충실하게'의 방점을 찍는 곳은 살아오는 동안 자신이 빚을 진 상대를 찾아 그 빚을 청산하리라는 결심이다. 제일 처음 남자가 찾은 이는 제대로 고백 한 번 못 해보고 끝난 첫 사랑이다. 다음은 사소한 말다툼 끝에 30년 남짓 절교 상태로 있는 단짝 친구... 이렇게 남자는 조금씩 자신의 주변을 정리해나간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만약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할까.
이왕이면 아프지 않고, 더 젊게, 더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의 끝에 있는 것은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죽음이 슬픈 것은 누군가의 부재가 남겨진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떠나는 사람에게 남은 사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보내는 사람 역시 떠나는 사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콧날이 찡했던 부분은 남자가 형과 대면한 자리에서 "내가 죽은 다음에..."라고 죽음에 관한 직접적인 표현을 했을 때였다.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남자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그것이 남자로서는 불가항력인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처연하게 다가온다.

읽기가 힘든 소설이었다.
작가의 진지한 문장도, 행간에 깃든 조용한 성찰도 좋았으나 그럼에도 읽기가 힘들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취향 탓이다. 잡식성 취향이지만 그럼에도 기피하는 장르는 있다. 바로 메디컬 류다. 드라마든 다큐멘터리든 소재나 배경이 메디컬 쪽이면 설령 그것이 코믹 장르라고 해도 의도적으로 채널을 돌려 버린다. 그래서 이제껏 내가 본 메디컬 드라마는 다섯 손가락도 못 채운다. 이는 영상을 볼 때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기질 탓이 큰데 내 정서가 화면 속 메디컬 특유의 정서를 버텨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말 그대로 숙제를 끝낸 듯 홀가분한 기분까지 들었다.

흑백을 구분하듯 구분하는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은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작가가 남성인 것을 의식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나(주인공 후지야마)와 나의 여인들의 관계가 그렇다. 나에겐 아내 외에도 5년간 연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열다섯 살 연하의 에쓰코가 있는데 냉소적이고 쿨(cool)한 여성 에쓰코는 그렇다고 치고, 말기 폐암 진단을 받은 후 오랜 세월을 사이에 두고 재회한 두 여인이 후지야마를 기억하는 방식은 '이거야말로 남자의 로망'이라고 작가의 성별을 확인하게 한다. 물론 버려지다시피 남자로부터 일방적으로 관계를 단절당한 여자들이 모두 옛 남자에게 원한을 품고 살지는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그 오랜 세월을 자기를 버린 남자를 그리워하며 사는 여자들이라니, 이건 아무래도 남자들의 판타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박범신의 신작『은교』에는 독일인 작가 실러의 '시간의 세 가지 걸음' 인용이 나온다.
: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되어 있다'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고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에 관한 것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틀 전 엄마랑 통화할 때 엄마가 "오늘이 선물"이라는 얘기를 하셨는데, 물론 현재를 감사하고 현재에 충실 하라는 의미로, 최근 고민이 생긴 딸에게 엄마 나름대로 격려를 해 주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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