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한드로 아베나바르 <아고라>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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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7374 bytes / 조회: 6,243 / ????.08.06 11:22
[영상] 알레한드로 아베나바르 <아고라>


 

 



* 영화 <아고라>의 한 장면. 화면의 왼쪽에 보이는 탑 형태의 건물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파로스 등대.

 

엄숙주의:
구체적인 조건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원리ㆍ원칙을 고집하는 극단적으로 엄격한 고정적 사고 및 행동 양식. 도덕에 있어서 칸트가 도덕 법칙은 어떤 경우에도 의무적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하고 의무를 최고의 것으로 한 것이 엄숙주의의 전형이며, 도덕적 의지의 동기로서 행복이나 쾌락의 요구를 엄하게 배척하는 금욕적 경향을 띤다.
- 출처. 지식사전

 

나는 종교든, 정치든, 사상이든, 사람이든 엄숙주의가 붙는 것이면 그게 뭐든 딱 질색하는데 엄숙주의는 일단, 무엇보다, 유머감각이 없어 재미가 없다. 그런데 알레한드로의 영화 <아고라>는 결국 엄숙주의 구체적으로 종교적 엄숙주의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제 역사나 세부 사건들의 양상에서 조금 차이가 있지만)일단 영화에만 집중하면, 줄거리는 이렇다.

기원전 6세기 무렵, 한차례의 극단적인 대립 이후 이교도(영화에선 학문을 추구하는 무신론자들)는 흩어지고 그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도서관이 파괴된다. 이후 알렉산드리아는 유대교도와 기독교도가 종교적으로 대립하면서 다시 극단으로 치닫는데 기독교 주교 키릴로스(혹은 키루스)는 유대교도들과의 싸움에서 정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지방 장관 오레스테스를 압박하고 그 수단으로 오레스테스와 친분이 있는 (과)학자 히파티아를 위협한다. 그 와중에 오레스테스가 일부 광신적인 기독교인의 돌에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이 처형을 당하자 키릴로스 주교는 죽은자를 순교자로 칭하고 기독교인들을 부추긴다. 결국 광신적인 기독교인들은 이교도 히파티아를 납치, 살해한다. 한편 과격분자였던 키릴로스 주교는 당시 교세 확장이 시급했던 기독교단의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지원으로 숱한 문제점에도 승승장구, 사후에 성인(聖人)으로 추대된다.

극단적인 것은 언제나 파괴적인 결말로 이끄는데 그 성격상 불순물이 섞이는 걸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정적과 대립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힘의 우위에 있는 집단 혹은 개인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대개 폭력이라는 방식을 불러들이는데 특히 종교간 분쟁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실제로 물리적인 강제력은 불순물을 걸러내는데 가장 단기적이고 가장 확실한 효과를 안겨 주는데, 안타깝지만 폭력은 고래로 국가 기관 혹은 권력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은 꽤나 역사가 깊은 실천적인 금언인 셈.

<아고라>의 주제는 초반의 '도서관 강당에서 시작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데, 히파티아와 학생들이 토론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나아갈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또 이 장면은 지동설을 두고 벌어진 토론에서 천문 현상 역시 신의 뜻에 귀속되어 있다고 믿는 기독교도 제자와 눈에 보이는 증명된 사실만 인정하는 (이교도)학자 히파티아를 통해, 과학과 종교, 주인과 노예, 남성과 여성이라는 갈등을 한꺼번에 보여주는데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처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 전체 지구를 보여주고 지중해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가는 미시적 접근법 역시 현재 이 도시가 처해있는 상황이 폐쇄적이고 폭압적인 것임을 잘 보여준다.

역시 영화 초반, 눈에 띄는 장면이 있는데 키릴로스가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서 불 위를 걷는 것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장면이 그것.
인간의 종교가 다 그렇지만 기독교 역시 많은 자기 모순(= 인간의 모순)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미신성이다. 기도를 통해 기원을 하고, 기원을 통해 구원을 받는 방식은 그 형태로만 보면 무속신앙의 '굿'과 별 다를 바가 없는데 귀신을 불러 점을 치고, 굿을 통해 구원을 받는 무속신앙을 우상숭배, 이단이라 하여 배척하고 금지하는 기독교는 그 역사를 들여다 보면 같은 방식으로 신자들을 모으고, 교세를 확장해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가당착의 모순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불필요한 희생이 너무 많았다는 것인데 영화 크루서블(The crucilble)로 제작되기도 했던 세일럼의 마녀재판은 이러한 경직된 종교적 엄숙주의와 종교의 미신성이 합작해 만든 비극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 <크루서블>이 보여주었던 것과 유사한 장면 즉, 교인이 아니면 곧 마녀라는 편집증적이고 광신적인 이단 논쟁은 <아고라>에도 등장한다.

영화에선 자세히 나타나지 않지만 당시 가장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고대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는 결국 종교 분쟁, 정확히는 인간의 욕망 앞에서 쇠락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여성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히파티아이고, 영화 내용 역시 히파티아의 일생의 절정 부분에 집중하지만 다른 한편 히파티아와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운명이 그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주인공을 '도시 알렉산드리아'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신념이 이상이 되면 개인의 욕망이 되지만 이상이 신념이 되면 개인을 벗어나 공리적인 것이 되는데, <아고라>는 키릴로스와 히파티아를 통해 이 차이를 보여준다. 어떤 점에서 그들은 결국 자신의 신념을 충실하게 따른 개인일 뿐인 것.
결국 '나쁜 인간은 없다, 나쁜 신념을 가진 인간이 있을 뿐' 인 걸지도...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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