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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2891 bytes / 조회: 4,599 / ????.05.25 13:19
[도서] 뛰어난 이야기꾼 『해럴드 블룸 독서기술』 by 해럴드 블룸


화자는 고골의 친구이자 전기작가로서 "마지못해" 우리에게 고골의 아내 얘기를 들려준다. 실제의 고골은 종교에 심취한 사람으로서 결혼하지 않았고 마흔세 살 무렵 미발표 원고를 소각한 뒤 의도적으로 아사했다. 그러나 란돌피가 그린 (카프카나 보르헤스가 창조해 냈을 법한) 고골은 고무풍선과 결혼한 사람이다. 그것은 멋지게 부풀릴 수 있는 인형으로서 남편의 기분에 따라 다른 형태와 크기를 취한다. 이런저런 형태의 아내를 깊이 사랑하는 고골은 그녀와의 성관계를 즐기며, 그녀에게 베네수엘라의 수도인 카라카스Caracas라는 이름을 붙여주는데 그 이유는 그 미치광이작가밖에 모른다.
몇 년간은 모든 일이 잘 진행되다가 고골이 매독에 걸리게 되는데, 그는 이에 대해 매우 부당하게도 카라카스를 비난한다. 말이 없는 아내에 대한 그의 양가적인 태도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도를 더해 간다. 그는 카라카스가 자위를 한다고, 심지어는 바람을 피운다고 비난하며, 그녀는 억울해하며 종교에 과도하게 의지하게 된다. 마침내 화가 치밀어 오른 고골이 카라카스에게(다분히 의도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공기를 주입함으로써 그녀는 폭발하여 대기 중에 흩어지고 만다. 부인의 유해를 수습한 뒤 이 위대한 작가는 그것을 벽난로에서 태우는데, 그의 미발표 작품들도 그 유해와 운명을 같이한다. 그 난롯불에 고골은 카라카스의 아들인 고무인형도 던져 넣는다. 이 마지막 파국을 들려준 뒤 그 전기 작가는 고골이 아내를 구타했다는 비난에 대해 그를 변호하고는, 그의 고매한 천재성에 경의를 표한다.
-p.78


* 발췌한 본문 내용 중 '그녀는 억울해하며'에서 '그녀'는 문맥상 '그'여야 할 것 같은데 번역오류인지 오타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블룸은 『독서 기술』에서 단편소설의 전통을 체호프 파와 보르헤스 파로 나누는데 두 계파를 읽는 방식을 체호프에게선 진실을, 보르헤스 또는 카프카에게선 전도된 진실을 찾는 것으로 구분한다.
블룸의 이런 기준을 적용한다면 발췌한 란돌피의 「고골의 아내」는 고무풍선 아내라는 기발한 상상력이나 실존인물 고골을 등장시켜 실제 같은 허구를 들려주는 이야기 방식은 보르헤스 파에 더 가깝지 않은가 싶지만, 고골 탓인지 고골의 정신을 잇는 나보코프 탓인지 여하간 블룸은 란돌피를 체호프 파로 분류하고 싶은 듯하다. 하긴 그의 분류 기준이 단편소설이 끝난 후에 남는 침묵에 관한 문제라면 일면 이런 식의 분류가 수긍이 가기도 한다. 
 
비평의 역할은 다양하겠으나 아무래도 대상 작품을 읽기 전이라면 독자와 작가를 이어주는 관문의 역할을, 이미 읽은 후라면 개인적독서가 사회적독서로 확장되는 기회가 된다. 그런 점에서 란돌피의 「고골의 아내」는 모순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발췌문이 이렇게 재미있을 때는 대개 언급된 작가와 작품을 찾아보고 원문이 읽고 싶어지는데, '고골의 아내' 혹은 '토마소 란돌피'는 블룸의 비평을 읽은 것으로 충분한 포만감을 느꼈기 때문. 오히려 란돌피 보다 고골에게 더 흥미가 가는데, 언젠가 읽었던 단편소설집으로 막연히 고딕소설 작가려니 했던 고골을 좀 더 폭넓게 읽었어야 하지 않았나 반성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독서 기술』에 등장하는 작가 중 란돌피 외에 언급하고 싶은 또다른 작가는 바로 체호프다. 블룸이 늘어놓는 체호프의 단편「키스」가 어찌나 매혹적이던지 '당장 읽어봐야겠다!'는 충동이 갈증처럼 일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고개가 갸우뚱-. 어, 집에 체호프 단편이 있는 것 같은데. 분명히 읽었던 것 같은데-. 책장을 훑었더니 역시나 민음사 판 『체호프 단편선』이 있다.
책장에서 책을 확인하고 나니 우습게도 이 책을 읽은 기억이 '확실하게' 난다. 아울러 굉장히 무미건조하게 읽었던 감상도 희미하게 떠오르고. 직전까지 읽은 기억이 확실하지 않았던 건 아마도 누군가가 그토록 깊게 매료되었던 작가가 내겐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위화감 때문이었나 싶다.
 
사실 체호프의 소설이나 희곡을 읽는 기분을 정의하면 더도 덜도 아닌 딱 '완두콩 한 알을 숨긴 매트리스 위에서 자고 일어난' 느낌이다.
도서관에서 대출한 을유문화사 판 『체호프 희곡선』을 읽을 때였다.
목록은 대표작인 「갈매기」「바냐삼촌」「세 자매」「벚나무 동산」네 편인데 하도 지루하고 재미도 없고 집중도 안 돼서 첫 번째 목록 「갈매기」만 읽고 반납해버릴테다! 결심 아닌 결심을 곱씹고 또 곱씹었더랬다. 그리하여 「갈매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간신히 넘기고 미련없이 도서관에 반납했으나 며칠 뒤 책을 다시 대출했다. 내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바로 '고전의 힘'.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완결성을 갖춘 이야기에 담긴 작가의 내공은 이렇듯 은근하고 묵직하다. 결국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가 무섭게 다른 출판사, 다른 번역자의 희곡 전집을 주문한 걸 보면 아무래도 체호프라는 매트리스에는 콩 한 알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도 남을 어떤 특별함이 있는 모양이다.
  
이렇듯 내게 늘 콩 한 알의 불편함을 안겨 주는 체호프인데, 블룸이 읽은 체호프는 어쩜 그렇게 매혹적일 수가 있는가. 혹시 그가 읽은 「키스」는 다른가. 이쯤되니 이 단편을 무조건 읽어봐야겠다는 오기가 드는데 불행히도 민음사 판에는 체호프의 초기작인 「키스」가 없다. 검색을 해보니 이 단편이 수록된 번역본이 있긴 하나 단편 하나 때문에 책을 사는 것이 망설여진다.
연유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아닌 작품 별로 저작권이 등록되기라도 했는지, 국내에 번역된 체호프 단편소설은 출판사마다 목록이 살짝 엇갈리는데, 즉 체호프의 전집을 읽으려면 다른 출판사의 체호프를 각각 모아야 된다는 얘기. 여튼, 그런 이유로 가능한 겹치는 목록을 피해 이미 다른 출판사의 체호프를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는데 단편 하나 때문에 또다른 체호프를 또 사야하나 아무래도 망설이게 된다. 그래도 아마 나는 결국 전작을 모으는 기분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이 책 역시 사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고민은 아주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집에 있는 창비 세계문학단편선 중 러시아 편 『무도회가 끝난 뒤』에 마침 문제의 단편이 수록되었던 것. 제목은 '키스'가 아닌 「입맞춤」인데 사소한 호기심을 풀고자 찾아보니 러시아어 원제는 국내의 '입맞춤'이 아니라 블룸의 '키스'가 맞다. (둘의 차이가 뭐냐고 따진다면 할 말은 없다만.)
그리고 마침내 체호프의 「입맞춤(혹은 키스)」를 읽고 난 감상은 역시나 그의 다른 단편을 읽었던 예전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나를 사로잡은 건 체호프의 단편에 매혹된 블룸인지도 모르겠다. 방점을 '체호프'가 아니라 '해럴드 블룸'에 찍어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로 블룸을 매혹시킨 체호프를 발췌하면 이러하다.
 
체호프의 초기작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키스The Kiss」로서 그가 스물일곱 살 때 쓴 작품이다. 리야보비치는 포병 여단에서 "가장 소심하고 재미없고 내성적인 장교"로서, 어느 날 저녁 은퇴한 장군의 시골 저택에서 열린 사교 모임에 동료 장교들과 함께 참석한다.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지루해진 리야보비치는 어느 어두운 방에 들어서고 모험을 경험하게 된다. 그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한 여인이 그에게 키스를 한 뒤 물러선다. 그는 서둘러 빠져나오고, 그 후 그 우연한 만남에 사로잡힌다. 그 만남은 처음에는 환희를 안겨 주었지만 곧 고통으로 바뀐다. 이 가련한 남자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신원을 전혀 알 수 없고 다시 만날 가능성도 전혀 없는 여인과.
그의 포병대가 그 장군의 저택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리야보비치는 공중 목욕탕 근처의 작은 다리를 걷다가 빨래걸이에 걸려 있는 젖은 시트에 손을 뻗어 만진다. 차갑고 거친 감각이 그에게 엄습해 오고, 그는 강물을 내려다 보는데 거기에는 붉은 달이 비추고 있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다가 리야보비치는 인생이란 앞뒤가 맞지 않는 농담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서, 다른 모든 장교들은 장군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리야보비치는 홀로 잠자리에 든다.
키스 장면 이외에는 차갑고 축축한 시트를 만지는ㅡ말하자면, 키스와 반대되는ㅡ장면이 이야기의 결정적인 순간이다. 이 장면은 리야보비치를 파괴하지만, 키스도 마찬가지다. 희망과 기쁨은 아무리 비이성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절망보다는 강하며, 궁극적으로는 더욱 치명적이다. 나는「키스」를 읽으며 내가 예전에 체호프에 대해 쓴 글에서 지적한 점을 되뇌인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절망케 하리라." 이것이 체호프의 복음이다. 다만 이 우울한 천재는 유쾌하게 살 것을 고집했다. 리야보비치는 자신의 운명이 정해졌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렇지 앟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아는 일은 이 이야기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 p.42, 제1부「단편소설」중 '2. 안톤 체호프'
 
 
* 발췌를 옮기면서 묘사-서술 부분이 블룸의 것과 내가 읽은 것이 미묘하게 다른 것을 발견했다. 단적으로 블룸이 읽은 '공중 목욕탕 근처의 작은 다리 위 빨래걸이에 걸린 시트'가 내가 읽은 창비 판은 '장군 댁 수영장과 다리 난간에 걸쳐진 시트'로 등장한다.

분명한 사실은, 체호프는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읽어야 된다는 점. 감성을 열고 읽을 때에 비로소 체호프의 문장 행간에 배어 있는 작품의 쓸쓸함, 개인의 외로움, 삶의 아이러니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다. 그래서 한 번 읽을 때보다 두 번 읽을 때, 두 번 읽을 때보다 세 번 읽을 때...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낯선 감정에 눈을 뜨게 된다.

블룸의 비평 혹은 독서후기는 단순히 독서의 부산물이라고만 보기에는 지나치게 재미있고 그 자체로 독립된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글을 읽다보면 저자의 책 혹은 작가를 향한 흥이라든지 진지함이라든지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것. 그에 더불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나도 같이 저자의 그런 감정에 전염되곤 한다. 그러므로 블룸은 작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두 번째 저자이며 나아가 자신의 독자를 만드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그 증거로 나는 이 한 권을 읽는 동안 체호프와 디킨스를 새로 구매했고,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을 계획을 세웠으며, 책장에서 밀턴의『실낙원』을 확인하며 새삼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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