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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8593 bytes / 조회: 6,697 / ????.11.10 17:58
[영상] 잘 만든 리메이크 <신세계> (스포)


 
신세계
감독: 박훈정
출연: 이정재, 최민식, 황정민


제목 '신세계'는 폭력조직에서 시작해 거대기업화 된 골드문이 공권력으로 더는 손을 쓸 수 없게 되기 전에 와해 혹은 컨트롤이 가능하도록 내부를 흔들려는 경찰 측 작전명이다.

영화는 꽤 재미있다. 허투로 쓰는 시간도 없고 액션느와르답게 화면도 잘 살렸고. 한마디로 리메이크 잘 된 한국판 <무간도>를 본 기분. 비교하자면 헐리우드의 <디파티드Departed>보다 낫다. 

꽤 흥행한 걸로 귀동냥한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무간도> 얘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무간도 시리즈를 DVD로 갖고 있는 무간도 팬인 입장에서 <신세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간도>를 연상시키긴 했지만 마지막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불쾌한 기분은 없었다. 이게 어수룩하게 베낀 거면 불쾌하고 짜증이 날 텐데, 다시 말하지만 잘 만든 리메이크 느낌이라 만족도가 꽤 높았다. 


주인공은 강 과장(최민식), 정청(황정민), 이자성(이정재)이고 이들은 각각 경찰, 골드문 서열 3인자, 골드문에 잠입한 언더커버다.

세 인물의 현재 위치를 보자.

이자성 - 조폭 생활 8년 째. 이번이 마지막 작전이라고 강과장에게 끊임없이 다짐 받지만 실상 끝은 요원해보인다.
강 과장 - 부하를 사지에 몰아넣고도 냉철하게만 보이지만 고 국장의 '사표타령'을 통해 이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청 - 전남 여수, 화교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자성을 '부라더'라고 부르며 동생처럼 아끼는 정청은 이자성이 언더커버인 것을 알게 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처리를 미룬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 신세'라는 강 과장의 말은 어쩌면 이들 세 사람 모두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강 과장이나 정청은 둘 다 이자성에게 '죽지 않으려면 조직의 1인자가 되라'고 하는데 같은 말이지만 여기엔 차이가 있다. 이자성에게 강 과장은 죽지 않는 길을, 정청은 사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이 둘 사이에서 이자성의 선택지는 굳이 더 확인하지 않아도 자명해보인다. 

그러므로 내가 이자성에게 궁금했던 건, 상황에 떠밀린 수동적인 선택이 아니라 자유로운 상황에서 능동적인 선택이 가능했을 때 이자성의 선택이다. 만약 경찰내부에 보관된 이자성의 자료가 더 일찍 폐기되었다면 이자성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러니까 '정체탄로'라는 제약이 없을 때 이자성의 자유의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는. 이는 이자성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건 그의 정체를 모르는 골드문 조직이 아니라 그의 정체를 아는 경찰 조직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다.

 
강 과장은 이자성을 완전히 믿지 않는데 이는 정확하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8년 씩이나 특정 조직에 몸을 담고 있으면 누구든 변하기 마련이다. 심연을 계속 들여다보면 그 심연에 물든다고 하지 않던가. 강 과장은 예전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는 언급을 한다. 이자성이 자신을 못 믿느냐고 강 과장에게 분노할 때 어쩌면 그건 흔들리는 자신을 향한 불안이었던 건 아닐까.

'액션느와르' 혹은 '느와르'라고 불리우는 이 장르는 결국 조폭(범죄)영화다. 이성적인 관점을 적용하면 나는 이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서민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조폭이 미화되는 이 장르는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로 뒤늦게 SNS에 올라온 <신세계> 감상을 읽으면서 강 과장과 정청을 선과 악이라는 기준으로 해석하는 감상이 불편했다. 예로, 인간적이라고 미화되고 있는 정청은 이자성의 자료를 폐기하지 않고 금고에 보관하는 것으로 이자성을 봐준 것이 아니라 처분을 보류한 것임을 알 수 있고, 피도 눈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강 과장은 고국장과의 대화에서 실은 이자성 만큼이나 번뇌가 많다는 것을 드러낸다. 누가 더 인간적이고, 누가 더 악이고. 이런 이분법적인 편 가르기는 '느와르'장르를 감상할 때 불필요한 방해요소다. 이런 감정이입이 영화적 카타르시스를 고양시키는데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장르일수록 영화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
1. 시나리오의 개연성 부족인지 내 이해력 부족인지 영화 속 시간 구성이 좀 '뭥미?' 하다. 영화 말미에 6년 전 여수에서 정청과 이자성의 짧은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내 비록 조직세계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른다만 정청이 공권력조차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거대조직의 3인자로 올라서는데 불과 6년 밖에 안 걸렸다는 말인가?

2. 그래서 석 회장을 죽인 건 도대체 누구냐. 하는 짓들을 보니 일단 2인자와 나머지 이사 할배들은 아닌 것 같고. 내부자료를 넘겨줬는데도 석 회장을 법적처리 못한 것에 분노하는 이자성을 보니 그도 아닌 것 같고. 이중구(박성웅)인가 했더니만 면회실에서 정청과 나누는 대화를 보니 이 둘도 아닌 것 같고. 남는 건 강 과장인데... 강 과장인가?

3. 영화를 본 후 다른 리뷰를 찾아 읽을 때면 늘 웃게 되는데 바로 과잉해석 때문. 이번 영화는, 6년 전 이자성의 웃음에 대한 네티즌들의 해석이 나를 웃게 했다.

4. 감독 '박후정'을 검색했더니 <혈투><신세계> 각본, 연출 <악마를 보았다><부당거래>의 각본을 썼다. 네 편 다 봤는데 같은 사람이 쓴 각본인 줄 전혀 몰랐다. 네 편을 늘어놓고 보니 이 감독의 다음 작품 행보를 어쩐지 알 것도 같고...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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