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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3 bytes / 조회: 4,792 / ????.12.18 21:45
[도서] 윤성근『내가 사랑한 첫 문장』


내가 사랑한 첫 문장

윤성근 │MY │2015-07-27 

 

글을 읽다 보면 작가의 성격이 직간접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책의 경우 분류하기를 좋아하고, 넘버3 처럼 순위를 꼽는 걸 좋아하는 대목에서 작가 성격의 일면이 느껴진다. 작가가 제시한 '세 줄 법칙'에 작가 스스로 충실한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상은 그렇다는 거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직후에, 그러니까 세 꼭지 쯤 읽었을 때 뜬금없이 작가가 '답정너'타입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좋다 하면 좋은 거고 내가 별로다 하면 별로인 거고- 랄까. 작가가 대놓고 내 잣대가 보편적 잣대다 라고 선언한 건 아니지만 작가의 습관인지 '나는', '내 기준은'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탓도 있고, 글 여기저기에서  결정론적인 태도가 보이는 것도 이런 감상에 한몫 한다.

 

한 예로, 작가는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 셋으로 무명(『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무어(『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 검은고양이(『검은고양이』)를 꼽는데 고양이 넘버3를 꼽기에 앞서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이라는 단서가 붙으니 새삼 그 선정 기준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문학계의 고양이 넘버 쓰리가 뭔지 알아?" 어깨에 힘주고 주장해도 책임져줄 건가 의문이 든다는 얘기. 아울러 넘버3에 들지 못한 순위 밖 고양이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참고로 나는 문학계 유명 고양이 넘버3에 말라르메의 고양이를 꼭 넣고 싶다. 비록 얘는 사연이 좀 다르지만 어쨌든.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작가가 큰 의미를 부여하는 '첫 문장'에 이르면 머릿속 물음표가 더욱 늘어난다.

기가 막힌 문장좋은 문장이 같은 의미는 아닐 텐데 작가는 이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얘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분류가 나오는데(이번에도 셋이다), 이 분류가 썩 공감이 안 가니 독자 입장에선 더욱 난감한 거고. 

작가가 '첫 문장론'을 중요시하는 배경은 물론 이해가 간다. 작가는 초장에서 자신의 문학세계가 '추리소설'에서 출발했다는 얘기를 하는데, '첫 문장'이 그야말로 중요한 장르가 바로 추리소설이기 때문. 그러나 나처럼 세계명작동화전집으로 문학세계에 발을 들인 독자에겐 사실 '첫 문장'이 그닥 중요하지 않다. 나같은 독자에겐 문장 자체보다 문장과 문장을 잇는 서사가 중요하며 문맥의 함의와 행간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발단-전개-절정-결말이 다 중요하며 아울러 첫 문장이 호기심을 자극할망정 책을 고르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장르소설을 단거리, 본격소설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둘 다 달리기인 건 마찬가지이며, 종목에 따른 감동과 즐거움은 그 나름 매력이 있기 때문. 

첫 문장이란 결국 작가도 표현했듯 '첫 인상'이기 때문에 어떤 책을, 어느 시공간에서 읽느냐도 영향을 미치므로 작가가 꼽는 매력 없는 문장 4가지는 솔직히 공감하기 힘들다. 작가가 하는 식으로 '첫 문장'으로 책을 선택한다면 시작은 평범하지만 조금씩 에너지를 응축하다 피니쉬 라인을 끊는 순간 폭발하는 울림을 주는 수많은 책들이 진가를 채 보여주기도 전에 얼마나 많이 버려지겠는가.

 

게다가 고백하자면 그토록 첫문장을 강조하던 작가의 프롤로그 첫 문단을 읽고 너무 오글거려서, 구체적으로 한동안 화제가 됐던 '픽업아티스트' 느낌이 나서, 이 책을 포기할까 생각을 잠깐 했다. 나를 고민에 빠트렸던 문단은 이렇다.

 

여러분은 지금 이 책의 첫 문장을 읽었습니다. 그럼 다음 문장도 읽게 될까요? 아니면 여기서 그치고 책을 덮을 건가요? 언제나 선택의 순간은 사람을 고민에 빠트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이 책을 쓴 저는 멋지게 해냈습니다! 이 문장을 읽고 있다면 이미 여러분은 여섯 문장이나 읽은 것이니까요. 바쁜 일상을 사는 현대인에게 여섯 문장을 읽도록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 벌써 여덟 문장을 읽었습니다. 지금 어디서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내며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내가 사랑한 첫 문장』

 

단언컨데, 내가 편집자였다면 저 문단을 뺐을 것이다. 또한 같은 이유로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면 절대로 카운터로 가지고 가지 않았을 거다. 첫 문장을 그토록 중요시하는 작가의 첫 문장이 이러하니 이것 또한 아이러니.

사족을 붙이면, 나는 작가가 그토록 극찬하는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를, 예의 그 첫 문장에서 나가떨어진 사람이다. 온라인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무려 두 번이나 도서관에서 대출했지만 결국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눈먼 부엉이』의 첫 문장은 이렇다.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눈먼 부엉이』

 

작가의 '첫 문장론'을 읽으면서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나한테 첫 문장이 가지는 의의라면, 이후 펼쳐진 작가의 말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겠구나, 작가와 소통이 가능하겠구나 시험하는 첫 계단이며 아울러 목적지까지 꽃마차를 타고 가겠구나, 혹은 달구지 혹은 비행기를 타고 가겠구나 진단하는 이정표 쯤인 듯 싶다.

 

구구절절 썼듯 작가의 첫 문장론은 썩 공감이 안 가지만 그래도 본문은 재미있다. 그리고 성실한 주석은 본문보다 더 재미있다. 재미있는 혹은 흥미로운 주석을 몇 가지 발췌해보면,

 

- <죽은 혼> 을유문화사 판본은 고골의 마지막 필사원고를 토대로 번역한 것으로, 불타버린 실제 원고를 짐작할 수 있는 판본.

- 필명 오 헨리의 '오'는 올리비에, 혹은 올리버를 뜻한다.

- 최인훈의 <광장>은 현재 열 번째 개정판이며 그때마다 내용을 수정했다.

- '중2 병'은 일본에서 건너온 개념. 일본 한 개그맨이 방송에서 '중학교 2학년생이라면 할 법한 이상한 행동'이라는 소재로 공감개그 한 것이 원조.

-『잉여인간』의 손창섭은 1973년 갑자기 일본으로 떠나 잠적. 2009년 국민일보 기자가 일본 한 병원에서 찾아냈는데 이듬해 사망. 1998년 일본 귀화, 알츠하이머 병을 앓음.

- 에른스트 테오도르 빌헬름 호프만 Ernst Theordor Wilhelm Hoffmann. 빌헬름을 아마데우스로 바꾸어 E.T.A 가 된다. E.T.A는 호두까기인형의 원작 소설을 썼다.

- 은둔작가로 유명한 토마스 핀천은 2004년 <심슨>에서 자신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에피소드에서 목소리 연기를 했다.

- 발레 공연 <퍼레이드>에서 피카소, 콕토, 사티는 공동 작업을 한 적이 있다.

- 하이데거는 히틀러 집권기에 나치 독일을 옹호했다.

 

맺는글_

첫 문장이 끝내주기 때문에 그 소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니라, 그 소설이 고전이기 때문에 첫 문장이 특별해진 걸 거다. 내지 사이사이 꽂혀있는 소문난 '첫 문장'이 인쇄된 삽지가 무척 예쁘다. 전체적으로 예쁜 인상을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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