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노년의 연애 <엘레지> 
원작은 필립 로스의 'The Dying Animal'.
벤 킹슬리의 눈빛이 다 한 영화.
노인이 젊은 여성을 꼬시려면 베토벤을 연주할 줄 알아야 되고, 벨라스케스와 고야를 감상할 줄 알아야 하며, 필름 카메라도 잘 다루어야 한다. 젊음과 경쟁하기 위해 늙음을 예술과 지성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더 슬픈 건 노년이 되면 섹스보다 연애가 더 어려운 현실. 관계는 개인과 개인에서 개인이 몸담고 있는 사회로 확장되지 못하며 결국 이로 인해 데이빗은 사랑하는 콘수엘라에게 상처를 입힌다. 집 안에서만 하는 연애와 집 밖에서도 하는 연애는 다르다. 알면서도 데이빗은 주춤하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데이빗은 뭔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낡은 걸 정리하는 것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콘수엘라는 데이빗의 말습관이 'maybe'라고 지적하는데 사실 늙어갈수록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든다. 반면 어린 콘수엘라는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는 출발선에 이제 막 섰다. 두 사람을 가로지르는 30년이란 그런 의미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지만 시들어가는 육체는 현실이기 때문.
노년의 성(性)을 다룬 한국영화로 <바람난 가족><죽어도 좋아>가 먼저 떠오르는데 이전까지 국내에선 불편한 주제였던 얘기를 사회적 담론으로 끌고 나왔던 본격적인 계기가 아마 두 영화의 개봉이었던 걸로 안다. 나는 <바람난 가족>만 봤는데 대사는 잊어버렸지만 시어머니가 시아버지가 입원한 병실 밖에서 아들 며느리에게 애인이 있다고 선언했던 장면이 아주 파격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기서 파격은 선정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노년의 섹스를 노인의 입으로 거침없이 내뱉는 장면을 처음 본 데서 기인한다. 이전까지는 미디어든 모임이든 어디에서도 그렇게 적나라한 수위의 노인의 직접화법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 그동안 미디어는 노인을 무성(無性)으로 다루어왔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별스럽지 않은 것이 되었다. 얼마전에 종영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도 그렇고, 100세 시대가 과연 축복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실버 마케팅의 호황에서도 알 수 있듯 노년이 제 목소리를 내는 세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세대가 어떻든 나이차가 어떻든 이 영화의 장르가 결국 '로맨스'인 이유는 종반부에 있다. 이별 후 사라졌던 콘수엘로가 몇 년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데이빗을 찾아온다. 그녀는 유방암을 앓고 있으며 수술을 앞두고 있다. 콘수엘로는 수술 전에 자신의 가슴을 아름답다고 찬양했던 데이빗에게 가슴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이럴 때 콘수엘로는 사랑했던 남자와 마주 선 여자일 뿐이다.
중간중간 죽마고우인 데이빗과 조지가 나누는 대화가 좋았는데 그중 미인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유는 아름다움으로 장벽을 치기 때문이며 그 장벽으로 빈약(할 것이 분명)한 내면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조지의 주장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
인류의 절반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일부일처 관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