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신『모두에게 해피엔딩』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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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6394 bytes / 조회: 3,647 / ????.06.28 23:15
[도서] 황경신『모두에게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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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1부 덜 사랑하는 자

2부 더 사랑하는 자

3부 모두에게 해피엔딩

 

 

예전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나와 비의 엇갈린 연애가 안타까워서 애닳아하고 그것도 모자라 책을 덮은 뒤에도 이런 찜찜한 연애소설이라니, 괜히 읽었다는 후유증이 오래 갔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책장을 훑다가 문득 눈에 띄어서 다시 읽은 이 소설은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당황스럽다. 나와 에이와 비의 얘기는 더 이상 애틋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기 때문. 변한 게 있다면 아마 나일 거다. 정확히는 내 감성이 변한 것일 테다. 나이 들어 어릴 적 첫사랑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이 소설보다 재미있는 연애소설을 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첫사랑 연애담이 이 소설보다 훨씬 더 애틋하고 재미있으리라는 거.

 

중/고생 때 등교하지 않는 날은 집에서 케이블채널의 영화를 보곤 했다. 그중에 <풋사랑>이라는 한국영화가 있었다. 무려 1971년 개봉작인데, 놀라지마시라, 주연이 나훈아, 문희, 노주현 님이시다.

이 영화의 줄거리가 어떠한가 하니..., 여주가 남주1도 좋고 남주2도 좋고, 결국 두 남자 중 어느 한 사람을 선택할 수 없어 그냥 정신줄을 놓아버린다는 여주 멘붕 스토리. 천지 구분 못하던 시기임을 감안해도 도통 이해가 안 가는 결말이지만 그래도 풋사랑의 '풋'이 어떤 의미인지 어린 나이에도 개념 공부는 됐다.

 

갑자기 왜 거의 반 세기 전의 영화를 언급하는가 하면 영화 <풋사랑>의 연애소설 버전이『모두가 해피엔딩』이기 때문. 재미있는 건,『모두가 해피엔딩』을 몇 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땐 <풋사랑>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는 거다. 그러니 변한 건 '나'다.

『모두가 해피엔딩』은 소제목을 길라잡이로 진행된다. 얜 너무 좋아서 못 가지겠고, 쟨 덜 좋아서 못 가지겠고, 에라 모르겠다 너(3의 인물)하고 놀아야겠다. 그럼 모두가 해피엔딩이지?... 가 줄거리.

 

우정이냐 사랑이냐, 이성과 친구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황경신의 글에 일관되게 등장한다. 전형적인 십대 소녀감성인데, 그래서 이 소설은 연애소설 보다는 감성소설로 읽으면 차라리 속편하다.

정통소설이라기엔 글의 밀도가 약하고 오히려 장편 아포리즘을 읽는 기분에 가까운데 이건 소설과 에세이를 경계 없이 쓰는 황경신의 글쓰기 방식에서 비롯된 걸로 보인다. 그렇다 보니 분명 소설인데 고백에세이와 차이가 안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 있다. 실상 노희경의 에세이『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의 몇몇 에피소드를 떠올려 보면 그거랑 이거랑 뭐가 달라? 싶기도 하다. 

나는 이런 쪽으로는 좀 고지식한 데가 있어 장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작가의 애매모호한 글쓰기 방식은 좀처럼 응원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황경신의 글이 전반적으로 이런 형식을 고수하니 결국 황경신과 내가 맞지 않는 거다.

그럼 연애소설의 예를 들어봐라, 한다면 아마 드라마 작가 노희경 때문인가 싶지만 지금 막 떠오르는 건 김수현의『겨울로 가는 마차』. 이거 수애 주연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면 배우도 작가도 시청률도 대박날 텐데...는 아묻따 내 생각.

 

뭐 어쨌든,

영화 <풋사랑>은 결말이 공감은 안 가지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여주에게 동정적이기라도 했다면『모두가 해피엔딩』은 연애를 장기판으로 보고 에이와 비와 예술가를 장기말로 부리는 여주를 보는 기분이라 뒷맛이 영 찜찜하다. 마지막의 '모두가 해피엔딩이지' 하는 여주의 독백도 실상 여주에게만 해피엔딩일 뿐 그녀의 연애스토리에 들러리가 된 세 남자는 무슨 죄인가 싶다. 첫 독서 때 내 감성이 그토록 자극 받았던 건 아마 여주에 빙의했기 때문이 아닐까 반성해본다. 무려 세 남자에게서 사랑받는 여자라니, 게다가 세 남자 모두 여전히 선택지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결말이라니 한마디로 '여주만 좋지 아니한가' 결말인 거지.

 

이 소설을 재독하기 전에 황경신의 신간 서너 권을 주문하려고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소설을 읽고 나서 장바구니에서 뺐다. 그중『국경의 도서관』은 내 책장에 있는『초콜릿 우체국』의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하니 조금 더 고민하고 장바구니에서 삭제했다. 처음 글자를 배우고 줄거리가 있는 소설이라는 걸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껏 변치않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어떤 글이든 억지로는 안 읽는다라서.

최근 몇 년은 내 감성이 좀 심하게 메마른 사막이라 가끔 오아시스처럼 사막에 습기를 뿌려줄 감성충만한 글이 필요해- 위기의식을 느낄 때는 이런 류의 소설을 막 쓸어담는데 이번은 적절한 때에 브레이크가 걸린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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