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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22 bytes / 조회: 3,736 / ????.07.29 13:59
[도서] 주진우『주기자의 사법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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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감상:

책 전반에 걸쳐 가장 인상적인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정치검찰'이다. 사법부가 자기들만의 카르텔 안에서 얼마나 권위주의적이며 권력화되어 있는지 실체가 벗겨질수록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이전 정권이 아무리 노력해도 다음 정권이 사법부를 하수인으로 쓴다면 또다시 시궁창이겠구나 좌절감마저 든다.

 

책을 1/3쯤 읽다가 발간 정보를 확인하니 8쇄다. 아, 많이 팔렸나 보네. 진심으로 안심이 됐다.

아쉽게도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지만 이 책은 집집마다 비치하고 읽어야 할 실용필독서.

법조계 전문인이 쓴 것보다 수 백 건의 소송에 불려다닌 기자의 현장 체험이 훨씬 실제적이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물론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불편한 감정도 있었다. 살면서 이런 상식이 도움이 되는 일은 절대로 안 생겨야할 텐데 하는.

 

책에서 강조하는 '소송 대비법'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하면,

 

1. 피의자 신분으로 검사/조사관 앞에 앉았을 때 가능한 말을 아껴라. 자신 없으면 묵비권을 행사해라. 청문회 단골 멘트 '기억이 안 납니다'는 숙련된 법조인들에게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얻은 조언이다.

2. 변호사를 선임해라

3. 소송에서 믿지 말아할 것은 검사/조사관 > 변호사. 검사/조사관은 피의자에게 죄가 있음을 밝혀 실적을 올리는 직업인, 법장사꾼임을 잊으면 안 된다. 변호사도 마찬가지. 수임료가 낮거나 돈이 안 된다 싶으면 성심을 다하지 않는다.

 

법조인과 법리를 다툴 때 가장 그리고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역시 소송을 잘 아는 법조인=변호사다.

나는 죄가 없으니 당당하다- 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소송이 시작되면 일단 변호사부터 선임해야 한다. 소송을 다툰다는 건 죄의 유무를 가리는 게 아니라 법리 적용의 대상인가 아닌가를 가리는 것이기 때문. 최근 시민들이 공감할 수 없는 판결이 우후죽순 나오면서 시중에 흔한 표현이 된 전문용어 '법감정'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보자.

쟤가 나를 열 대 때려서 내가 한 번 밀쳤어요. A가 주장한다. 법리는 A의 '밀쳤다'를 '대응했다'로 해석한다. 밀든, 밀치든, 때리든 법감정은 '대응'으로 해석한다. 그리하여 쌍방폭행 성립. 운 좋으면 정상참작. 법원에서 다투는 건 진실이 아니라 사실 관계 즉 밀쳤는가, 안 밀쳤는가다.

 

하지만 1과 2를 상회하는 중요한 항목이 있으니 바로 3번 내 권리는 내가 찾고, 내가 지켜야 된다는 부분이다.

나는 평소 주변 지인들 특히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께 '병원, 의사 믿지 마세요. 의료장사꾼일 뿐이에요'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데 법 역시도 마찬가지다. 설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장에서 살면서 여즉 법조인들은 법과 심판의 정의를 수호하는 집단이라고 믿는 순진한 바보들은 없겠지.

 

책 내용 중 눈에 쏙 들어오는 소송 상식을 몇 가지 꼽자면,

 

1. 검사가 기소했을 때 피의자는 법원민원실에서 자신의 공소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일주일내에 판사에게 반론을 제기하는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다.

2.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 요구를 받았을 때 핑계를 대고 거절할 수 있다. 출장간다거나 병원에 간다거나. 물론 이때는 실제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3. 진술서에 지장 함부로 찍지 마라.

 

예전에 어떤 조직의 법무팀과 실랑이를 해야 할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

이때 내가 자문을 구한 건 M인데 M은 물정 모르는 나를 붙들고 딱 두 가지만 연습시켰다.

 

1. 녹취

2. 말조심

 

녹취야 어렵지 않은데 문제는 말조심이다. 대화라는 게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에 오가는 핑퐁이기 때문에 저쪽에서 "아!" 하면 나는 "어" 하든지 "오" 하든지 여튼 뭘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가 "어이"가 되고, "어이"가 "어이야"가 되고... 말이 길어지면 틈이 생기고 실수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이런 고충을 주장하니 M이 나를 무척이나 한심해했다. "왜 상대방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게 M의 한심포인트였다. 나도 할 말은 있다. 그건 냉정한 너한테나 해당되는 얘기지.

녹취야 어차피 양쪽이 다 하고 있을 테고. 결국 나를 못미더워한(나도 내가 못미덥다) M이 몇 가지 답변을 적어 주면서 무조건 그 안에서 골라 대답하라고 했다. 답변을 고르기 힘든 질문을 하면 지금은 바쁘니까 다음에 통화하자고 하라고 했다. 

주진우의 사법활극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사람이 M임은 부인할 수 없다. 책을 다 읽어갈 무렵 M과 통화했는데 "넌 검사랑 얘기하면 절대로 손해는 안 보겠더라" 했다. 묵비권을 잘 행사할 것이고, 지장 함부로 안 찍을 거고. 덧붙이면 그 법무팀과 실랑이는 결국 내가 이겼다. M이 적어준 1,2,3,4만 꾀꼬리처럼 읊어댄 결과였다.

 

음_

사실 이 책『주기자의 사법활극』의 의외로운 점은 '무척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책이 정말 재미있다.

나도 그렇지만 주진우 기자를 시사팟캐스트 '나꼼수'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이 많을 텐데 나꼼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대충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방송에서의 정체성이 그대로 책으로 옮겨온 느낌인데 한 가지 놀랐던 것은 '신발끈을 맨다'는 부분이다. 나꼼수 때도 가끔 신발끈 얘기를 했었고 대선 직후에도 신발끈을 매는 애기를 했는데 그때는 형사가 운동화 끈을 매는 그런 의미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했던 이 얘기가, 실은 기자에겐 현실 앞에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을 채찍질하고 자신을 일으켜세우는 기도와 같은 행위였던 것이다. 나꼼수가 18대 대선과 함께 끝났으니 근 5년 만에 주기자의 신발끈의 진실을 안 것이다. 기자에게 미안했다.

'재미'를 꺼내놓고 심각한 얘기를 늘어놓았는데, 다시 말하지만 이 책,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알차고 유익할 뿐 아니라 재미까지 있습니다.

특히 초반부 대선 직후 프랑스에서 김어준 총수와 함께 지낸 일화는 웃으면서 읽었는데 두 사람의 캐릭터가 내용에 그대로 대입되었기 때문이다.

 

도망자가 된 기자의 프랑스 체류기 (pp.54-55)

연말에 김어준 총수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났다. 첫날은 지인의 빈 집에서 신세를 졌다. 집엔 가구도 TV도 없었다. 휑한 바닥에 매트리스만 깔고 잤다. 추웠다. 무엇보다 영화 세트장 같은 현실이 도망자임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파리에서 총수와 함께 사는 동안은 이사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호텔에서 지내다가 체류 기간이 길어지자 주택을 빌려서 생활했다. 내 짐은 캐리어 달랑 하나. 그런데 패션에 관심이 많은 총수가 옷을 사들이면서 짐이 늘어났다. 총수가 돈 쓰는 데는 고기와 옷뿐이다. 나도 쇼핑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총수의 패션에 대한 열정에 비하면 1백분의 1도 안 된다. 시간개념이 없는 총수가 유일하게 늦지 않는 약속이 쇼핑 약속이다. 쇼핑 갈 때는 심지어 20분 일찍 나와서 자기가 탄 지하철을 타라고 닦달하기도 했다. 가장 싫었던 것은 이사할 때 그 많은 옷이 구겨지면 안 된다고 간이 옷걸이를 짊어지고 파리 시내를 활보해야 했던 일이다. 패션쇼 스태프들이 옷을 옮기듯 말이다. 누가 보면 의상실털이범 같았을 거다.

(…중략)

해 질 무렵에 미술관에 가거나 혼자서 밤 산책을 하곤 했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은 열 번도 넘게 갔다. 그럴 때마다 총수는 "그림 본다고 고기가 나오냐" 라면서 비난했다. 야만적인 종육주의자……. 책 보고 산책하고 미술관 가고 ……. 그러면서 틈날 때마다 스위스에 가서 계좌를 뒤져보고 있었다.

총수는 아침에 스테이크, 점심에 스테이크, 저녁에 스테이크를 먹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프랑스는 고기 질이 좋고 저렴하다면서. 총수가 제일 먼저 배운 불어가 '앙트르코트(entrecôte)'와 '세냥(saignante)'이었다. '등심스케이크'와 '설익은 고기'라는 뜻이었다. 체류가 길어지자 먹는 것도 문제였다. 한식을 먹고 싶을 때는 김치를 많이 넣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거기다 달걀 모양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햇반을 함께 넣어 먹었는데 우리는 이걸 '햇반 리조또'라고 불렀다. 라면 맛에 길들여진 김 총수는 '망명라면'가게를 내자고 했다. 내가 하얀 와이셔츠 입고 라면을 끓이고, 자기는 카운터를 보겠다고 했다. 라면 집과 함께 낮에는 '주진우의 미술관 기행', 밤에는 '김어준의 육식 투어' 등의 여행 상품까지 만들자고 했다. 김 총수는 소싯적이 잘나가던 여행 가이드여서인지 아이디어가 많았고, 가게 자리까지 보고 다녔다. 실제로 투자하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물론 나는 턱도 없다고 비웃었다.

 

나는 18대 대선 투표일 당일을 함께 보낼 방송으로 '나꼼수'를 택했고 투표 마감 시각인 오후 6시 직후 나꼼수 멤버들이 탄식하는 소리를 실시간으로 들었다. 이후 김총수와 주기자가 해외로 갔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그게 다였는데 짧게나마 당시의 근황을 그것도 주기자의 글로 읽을 수 있어 기뻤다. 아울러 15년에 출간된 책을 문재인 정부에서 읽게 되어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 내용이 한없이 우울하게 읽혔을 것이므로. 

 

노무현 전대통령이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검사들에게서 받은 모욕은 여러 신문과 매체들에서도 언급된 공공연한 사실이다.

주기자는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모멸감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합법적 신문 기술이라 한들 피의자 당사자에겐 인간의 근원을 건들린 것 같은 상처를 안게 되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이에 대해 주기자는 '자존심을 지키고 자신을 이겨야 한다(p.182)'고 표현했는데 그 와중에도 박장대소가 나왔던 대목. 

 

실전 소환 행동 지침 (p.182)

한 지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런데 검찰청을 동네 슈퍼 드나들듯 뻔질나게 다닌다. 물론 그의 잘못이다. 이분은 기도를 열심히 한다. 검사가 '마귀', '사탄'이라며. 이분은 결과가 잘못되었을지언정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비리 목사들 대다수가 이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아, 이건 정말 금과옥조로 삼아야겠다 싶어 M에게도 얘기해주었다.

누가 널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거든 나한테 왜 그럴까 고민하지 말고 그냥 '저 사람은 사탄이야, 마귀야' 생각해버리는 거야!

이럴 때 보면 역시 종교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여러모로 더 긍정적이지 않은가 싶다.

 

그러나 때로는 박장대소가, 때로는 실소가 나오는 와중에도 가끔 이 양반 참 힘들었구나 하는 대목이 있다. 특히 박근혜/박지만 5촌 살인사건으로 기소되고 출국금지 당했을 때 '기자질'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감을 토로하는 대목은 아주 묵직하게 읽힌다. 특히 영장실질심사를 준비하는 부분은 기자의 스트레스와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그 와중에도 또다시 웃고 말았던 대목이 있으니 바로 검사의 공소사실을 놓고 판사와 질의응답하는 부분이다.

 

기약 없는 길을 나서다 (pp.206-207)

검사는 김어준이 귀국하고 있지 않아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답답한 마음에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저는 김어준 씨와 한때 팟캐스트 방송을 같이 했을 뿐, 우린 회사 동료도 아니고 상사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애인 사이도 아닙니다. 제가 왜 김어준에게 가야 합니까? 저는 <시사IN> 소속 기자이며 그 안에서 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검사님은 제가 김어준 씨와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전 그 사람 별로 안 좋아합니다. 사람은 스마트하고 괜찮은데, 좀 많이 더럽습니다. 잘 안 씻어서 같이 있는 거 싫어합니다."

판사는 당황해 "흡" 소리를 냈다. 변호사들도 모두 놀랐다. 웃는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은 김어준의 최후 진술로 마무리한다.

예전에 유튭이던가 팟캐스트던가 어디에서 한번 들었는데 그때도 감동이다 했더니 글로 읽어도 여전히 뭉클했다. 전문을 모두 옮기기엔 너무 길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문단만 옮긴다.

 

최후 진술은 가슴으로 by 김어준(p.251)

 

(…)그래서 저는 배심원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겁이 나도 아무리 힘센 사람을 상대하더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끝까지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주진우 기자로 앞으로도 계속 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래야 제2의 주진우 기자도 나오고, 제3의 주진우 기자도 나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기자가 대한민국에 한 사람쯤은 필요한 것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아, 그리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대목. 바로 유전무죄 다음 항목이 미인감경이라는 내용인데 미인이 법정에서 울면 형량이 감경된다나 어쨌다나...

 

다음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대한민국 근대사의 악을 '간첩단 조작'이라고 요약해도 무방할 역사적인 현장.

가장 최근 간첩 조작 사건이 서울시청 유오성 사건이었던가? 이쯤되면 저들의 간첩성애는 감동스러울 정도.  

 

우리 법은 왜 강자 편에만 설까? (pp.267-270)

 

해방 후의 일이다. 일제에 부역하던 판검사, 경찰, 군인 들이 그대로 우리나라의 권력을 장악했다.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고 친일 반민족 해위자를 처벌해 역사의 정통성을 세우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자 친일파들은 반민특위 해체와 요인 암살을 기도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반민특위 활동에 적극적이던 국회의원들을 간첩으로 몰아 구속했다. 그러고는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했다. 당시 친일파의 주축은 일제에서 경찰로 부역하던 자들이었다. 모두 이승만 대통령의 비호 아래 이루어진 일이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이렇게 시작됐다. 3·15 부정선거로 전국에 시위가 확산되자 이승만 정부는 "공산당 조직이 조종한 폭동"이라며 탄압했다. 그리고 총칼을 앞세워 진압하다가 최후를 맞이했다.

박정희 육군소장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쿠데타는 헌법을 유린하는 행위 그 자체였다. 1963년 굴욕적인 한일수교 문제로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3월, 대학생 대표들과 면담했다. 당시만해도 소통의 자세를 보였다. 그러더니 1964년 8월, 중앙정보부가 인혁당 사건을 발표했다. 북한의 지령을 받은 대학생들이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47명이 구속됐다. 그런데 서울지검 이용훈 부장검사와 수사 검사들이 기소를 거부했다. 양심의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1967년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박정희는 윤보선을 누르고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공무원이 선거운동을 하고, 돈을 뿌리고, 투표함을 바꿔치기 하는 등 부정선거가 난무했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집회가 들불처럼 번지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해외 간첩단 사건을 조작한다.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한 북괴대남적화공작단 사건, 속칭 '동백림 사건'이다. 해외에서 활동하던 윤이상, 이응로 등이 해외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됐다. 간첩단 사건이 터지자 거리에 모여들었던 부정선거 무효 투쟁은 동력을 잃고 만다.

1969년 3선개헌안이 날치기로 통과된다. 야당과 국민들은 '3선 개헌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를 만들어 장외투쟁에 나섰다. 그리고 1971년 4월 27일, 제 7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될 예정이었다. 당시 박정희는 신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에게 밀려 고전하고 있었다.

선거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4월 20일, 국군보안사령부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터뜨렸다. 북한의 지령을 받은 유학생들이 교련 반대 시위를 벌이도록 지령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선거에서 김대중은 90만 표 차이로 졌다. 공무원의 광범위한 부정선거와 금품 살포, 투·개표 부정 등이 박정희의 선거를 도운 덕이었다. 부정선거와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학생들의 시위에 불이 붙었다. 그러자 중앙정보부는 서울대생들이 정부기관을 습격하려고 했다며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을 발표했다.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이 터지자 중앙정보부는 '유럽 거점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발표했다.

유신헌법은 박정희 영구 집권의 길을 닦은 고속도로였다. 당시 법은 그야말로 독재자의 칼이자 방패였다. 선거제도 자체를 없애버렸다. 제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단독으로 출마했다. 공약도 없고 유세도 없었다. 그래도 백 퍼센트 찬성으로 당선됐다. 제9대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의 선거와 비슷한 풍경이다.

당시 검찰은 충실한 하수인, 해결사 노릇을 했다. 민주주의를 말하면 빨갱이로 몰아 잡아들였다. 마구잡이로. 그리고 고문했다. 영장이니 재판이니 중요하지도 않았다. 공안 사건에서 무죄를 내린 현직 판사들은 수뢰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로 인해 판사들이 지단 사표를 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판사들이 법을 지킨 것만은 아니다. 독재 권력의 앞잡이가 된 판사도 많았다.

무고한 수많은 시민들이 옥상리를 했다.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간첩을 맏는 것도 법이었다. 죽인 것도 법이었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나쁜 일을 참 많이도 했다. 나는 그러게 이해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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