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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25064 bytes / 조회: 3,741 / ????.08.05 15:01
[도서] 당신 인생의 이야기 & 컨택트 (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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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네 인생의 이야기」

이 소설이 얘기하는 것은 결국 '시간'이다. 시간을 보는 관점, 시간을 보는 관점을 통해 삶을 이해하는 방식을 얘기한다.

 

 

1. 인과론적 해석 vs 목적론적 해석

하나의 결과물을 두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심리학은 보통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프로이트의 인과론적 해석과 아들러의 목적론적 해석이 그것인데 인과적인 해석은 과거의 원인이 현재의 결과로 이어진다고 보고, 목적론적 해석은 현재의 목적이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2. 표의 문자 vs 표음 문자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관점을 바꾼다는 건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는데 소설이 설정한 '시간'의 패러다임을 이해하려면 먼저 언어학에 대해 약간의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헵타포드의 언어와 인류의 언어는 표의문자표음문자로 대변된다.

 

어느날 갑자기 지구에 나타난 7足(헵타포드) 생물 외계인과 대화를 하기 위해 언어학자 루이즈가 호출된다. 루이즈는 거대한 거울로 묘사되는 체경을 통해 헵타포드와 대화를 시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헵타포드의 문자는 말하자면 표의문자에 가깝다. 인류가 현재 사용하는 문자체계는 알다시피 음성에 기반한 음성+기호로 이루어진 표음문자다.

표의문자는 표식, 그림과 같이 직관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문자로 상형문자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듯 하다.

 

흔히 드는 예가 교통표지판인데 붉은 원 안에 붉은 사선이 그어져 있는 표식을 봤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진입금지'라고 해석한다. 기호를 보는 순간 뇌가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읽는 과정 없이 바로 인지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같은 기호를 표음문자로 표현해보자. 

짧게는 '진입금지'부터 길게는 '여기서부터는 비통행도로이므로 통행을 금지합니다'까지 표현할 수 있다. 언어의 궁극적인 목적이 의사소통에 있다고 할 때 그냥 단순비교로도 인간의 표의문자가 여러모로 비효율적이고 낭비로 보인다. 

 

  

3. 사피어-워프 이론 vs 페르마 이론

헵타포드와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를 구분했다면 다음 단계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두 개의 이론인 사피어-워프 이론과 페르마의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사피어-워프 이론 - 인간은 사용하는 언어의 영향을 받는다

페르마의 최적화 이론 -  빛이 표면에 도착하는 최단 거리

 

이 두 이론은 이 소설을 구성하는 처음과 끝이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소설 전반을 아우르는 핵심이다.

 

 

4. 언어와 인지

마지막으로 헵타포드의 언어와 인류의 언어의 차이를 보자.

 

헵타포드의 언어 - 동시적 체계, 목적론적 해석

인류의 언어 - 선형적/순차적 체계, 인과론적 해석

 

언어학자인 루이즈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헵타포드의 언어를 익히게 되고 그것에 영향을 받아 기존에 갖고 있던 인류의 시간 개념이 깨어지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겪는다(사피어-워프 이론)

즉 과거-현재-미래를 순차적으로 나열하여 해석하는 선형적 체계와, 과거의 원인이 현재의 결과에 이른다는 인과론적 태도에서 벗어나 헵타포드의 동시적, 목적론적 사고 체계를 체득하게 된다.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인지하게 되면서 루이즈에게 시제(時制)는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루이즈는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된다.

 

재미있는 건 새로운 언어를 습득한 루이즈가 마치 개안(開安)하듯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다. 문맹의 반대어는 문해(文解) 즉 문자해독이다. 

 

인류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시제(時制)의 틀 안에서 운용된다. 즉 '읽었다(과) - 읽는다(현) - 읽을 것이다(미)'로 이어지진다. 이와 달리 헵타포드의 언어는 시제의 간섭을 받지 않고 한 덩어리 즉 동시적(同時的)으로 기능한다. 그러니까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과정 전체가 하나의 결과=목적이기(페르마 이론) 때문에 헵타포드의 사고 체계에서 시간은 연쇄적, 순차적으로 흐르지 않을 뿐더러 그러한 시제가 의미도 없다. 

 

페르마 원리에 빗대면, 빛이 대기를 통과해 표면에 닿는 최단 거리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굴절 등의 우연적인 요소와 상관없이 처음부터 특정 목표지점에 도착하도록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최종 목적인 최단 거리는 바뀌지 않는다. 이것을 소설에선 '목표는 이미 결정되었으며 남는 것은 최소와 최대라는 목적 뿐'이라고 표현한다(이 내용은 여러 페이지에 걸쳐 등장하므로 페이지 표기는 생략합니다).

 

 

5. 결정론적 세계관

여기까지 전개하면 떠오르는 개념이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운명론적 태도'와 유사한 이 개념은 이미 결정지어진 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태도인데, 여담이지만 이쯤 이르면 뉴턴의 역학이론에서 출발해 아인슈타인 - 하이젠베르크 - 슈뢰딩거를 거쳐 다시 뉴턴인가 싶은 약간의 논리적 비약의 유혹이 살짝 생긴다. 

 

궁금한 건 이러한 관점의 변화를 과연 낙관적, 긍정적인 태도로 볼 것인가인데, 일단 소설은 '인과적 해석'에서 '목적론적 해석'으로의 시간 패러다임의 전환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헵타포드 언어, 즉 동시적 체계를 습득하게 되자 자신의 일생을 시작(탄생)과 끝(죽음)으로 연결된 하나의 사건으로 체화하여 받아들이는 루이즈의 변화는 비극이 예정된 미래 역시 동시적인 것으로 순응하여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기실 이러한 관점이 긴 생애 동안 마주치게 될 비극을 받아들이는 데 긍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어." 라고,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면 갈등도 고민도 없다.

 

 

6. '세월의 책'

소설은 미래를 받아들이는 두 가지 방식인 인과론적 태도와 목적론적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 '세월의 책'을 등장시킨다.

 

한 여자의 생애가 기록된 '세월의 책'이 있다. 여자는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 그녀가 하게 될 일을 미리 읽어본다. 그리고 그 날이 왔을 때, 그녀는 책에 적힌 대로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자유의지'이다.

 

이 딜레마가 재미있는 건 행동을 해도, 안 해도 이미 그녀의 자유의지는 박탈당했다는 관점이다. 왜냐하면 일어날 일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 있다'가 기본 상수로 이미 지정되었기 때문에 이후 그녀의 행동은 그 상수에 따른 결과일 뿐이고, 때문에 자유의지는 박탈되었다는 해석이 재미있다.

 

결론은, '자유의지'가 존재하려면 '세월의 책'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아니면 '세월의 책'을 읽지 않던가.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있다는 건 그 순간이 왔을 때 어떤 행동을 해도 or 안 해도 이미 자유의지로부터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루이즈는 말하자면 세월의 책을 읽은 사람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의 생이 50년인 것을 알며 그 책의 결말이 자신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당연하다). 루이즈는 남편과 이혼할 것이고 이후에 딸이 산악 등반 중 추락으로 사망할 것을 안다. 하지만 루이즈는 이미 자신이 봤던 그 미래의 길을 간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하고 동시적, 목적론적 세계관을 터득한 루이즈에게 시간은 이제 의미가 없다. 인간에게 미래가 의미 있는 것은 그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인데 루이즈에겐 그 미래가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과거에 연연하지 않듯 이미 알고 있는 미래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미래를 아는 루이즈에겐 이혼도 딸을 잃는 것도 자신의 전 생애가 씌어진 50년 인생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그러므로 루이즈에게 의미를 갖는 건 지금, 바로 이 순간이다.

 

 

7. 미래가 갖는 의미 

숙명은 뒤에서 다가오고, 운명은 앞에서 다가온다고 한다. 그리하여 숙명은 피할 수 없지만 운명은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점에선 굉장히 결정론적인 이야기다.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고, 나는 그것을 미리 알고 있지만 바꿀 수 없고, 그리하여 정해진 미래대로 간다는 것이니까.

여기서 본질적인 의문이 생긴다.

 

a. 미래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인가, 아직 내가 모르는 시간인가.

b.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가 이미 알고 있다면 그것은 미래인가 아닌가.

c. b가 미래라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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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우주는 완벽하게 양의적(兩義的)인 문법을 가진 하나의 언어이다. 모든 물리적 사건은 두 가지의 완전히 상이한 방식으로 분석할 수 있는 언술에 해당된다. 한 방식은 인과적이고, 다른 방식은 목적론적이다. 두 가지 모두 타당하고 한쪽에서 아무리 많은 문맥을 동원하더라도 다른 한쪽이 부적격 판정을 받는 일은 없다.

인류와 헵타포드들의 조상들이 처음으로 자의식의 불꽃을 획득했을 때는 양 종족 모두 동일한 물질 세계를 지각했지만, 지각한 것에 대한 해석은 각자 달랐다. 궁극적인 세계관의 상이함은 이런 차이가 낳은 결과였다. 인류가 순차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킨 데에 비해, 헵타포드들은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 우리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원인과 결과로 지각한다. 헵타포드들은 모든 사건들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최대화라는 목적을.

(pp.188-189)

 

 

놀라운 점은 익숙하지 않은 물리학과 언어학의 개념을 황새 다리 쫓는 뱁새 심정으로 쫓아가던 와중에 책의 마지막 페이지, 정확하게는 조금 앞 부분의 '그릇을 사는 장면'을 읽으면서부터 고개를 갸웃(진짜 갸웃- 했다)하다 다시 지나간 페이지를 팔랑팔랑 넘겨가며 내용 전개 상의 시점을 재확인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어? 뭔가 좀 이상한데... 오독했나... 근데 아닌 것 같아... 어, 진짠가? 아닌가? 이런 과정을 거치고 세 번째 읽었을 때 작가에게 진심으로 감탄했다. 나는 무의식 중에 과거-현재-미래로 흐르는 순차적 시점으로 책 속 사건의 흐름을 의심 없이 쫓아갔던 것이다.

 

사족이지만 재미있는 점은, 스스로 좀 놀라운 깨달음이기도 한데, 나는 무의식 중에 루이즈에게 일어난 비극이 과거이길 바랐다는 점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다시 앞 부분을 뒤적거린 데는 그러한 바람이 컸다. 나는 이미 일어난 비극은 덜 슬프다고 생각한 것일까? 모르겠다. 남편과 이혼하고 딸을 사고로 잃은 개인사가 이미 발생한 과거이면 루이즈의 개인적 고통이 덜어지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앞서 액자식으로 등장했던 루이즈의 개인사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라는 엔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울러 이 저항심이 정확한 시제를 확인하고자 책을 여러 번 읽게 했던 동기이기도 하다.

 

8. 컨택트(원제: Arr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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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들어오면서 현지 제목 'Arrival'이 '컨택트Contact'가 되었다. 조디 포스터 주연의 그것도 같은 SF 장르인 'Contact'가 이미 있는데 굳이 제목을 'Contact'로 바꾸었어야 했나, 그 바뀐 과정이 궁금하다. 다만 영화의 주제와 크게 동떨어진 제목은 아니다. 제목을 고른 센스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굳이?' 라는 것이다.

 

책과 달리, 당연한가?, 상대적으로 영화는 헐리우드 상업영화의 키워드를 곳곳에 배치한 점이 많이 아쉽다. 이들 키워드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소영웅주의'인데 이를 위해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언어가 안 통하는 외계인과 전면전을 벌이려는 중국과 그에 동조하는 몇몇 국가들, 우주전쟁 카운트 직전 헵타포드의 언어를 완전히 깨우치면서 미래를 미리 본 루이즈가 직통전화로 중국의 수장을 설득하고 우주전쟁을 막는 것,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 목적은 3천 년 뒤 루이즈로 인한 도움을 받기 때문이라고 털어놓는 것 등등... 상업영화 마인드에 충실한 사족은 개연성을 떠나 그냥 좀 많이 오글거렸다.

 

SF소설을 영화화할 때 역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텍스트로는 부족한 상상의 빈 부분을 영상으로 확인한다는 것일 텐데, 이 작품의 경우는 이를 테면 헵타포드A와 헵타포드B로 정의되는 헵타포드들의 언어 - 글자가 그에 해당한다. 그것이 원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하나의 원이 분화? 변이? 등등의 형태로 '± 알파' 구성인가 막연히 상상만 했던 것을 작가와 관련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영상으로 구현한 장면을 확인하는 건 책에서 얻을 수 없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아래 이미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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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가 들고 있는 판넬의 이미지가 헵타포드의 언어다.

 

대개 원작을 시나리오화 할 때 원작자의 자문을 받기 마련이고 <컨택트> 역시 작가가 자문을 하였으니만큼 작가의 의도가 왜곡될 리도 만무하다. 책이 은유와 암시를 반전의 묘미로 활용했다면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착각할만한) 효과로 루이즈가 미래를 보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아쉬운 건 루이즈의 미래를 보는 능력이 앞서 얘기한 '소영웅주의'의 도구로 활용된다는 부분이다. 미래를 본 루이즈가 중국의 수장을 설득해 우주전쟁을 막는다니... 아, 이건 몇 번을 떠올려도 오글거린다.

 

쉽지 않은 내용이다. 머리는 이해하는데 적응이 안 될달까. 지구는 둥글다고 했을 때 16세기 이탈리아인들의 인지부조화가 아마도 이렇지 않았을까.

시간을 시제(時制)와 무관하게 총합의 결과물로만 인지하는 이러한 태도가 정말 낙관적인가? 글쎄. 잘 모르겠다.

 

 

사족_.

원래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봉준호 감독에게 갔다는데 봉감독이 미국 패권적인 부분(정확한 표현이 기억안남)이 마음에 안 들어 시나리오를 수정하길 요구했고 이미 완성된 시나리오를 뜯어고치는데 부담을 느낀 제작진이 반대했고 그리하여 드니 빌뵈브에게 시나리오가 갔고... 이런 내용인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봉감독이 난색을 표한 지점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개봉과 크랭크인을 기다리는 드니 감독의 차기작을 들여다 보면 아쉬움은 남는다. 아, 봉감독님....

 

이 단편을 처음 읽었던 게 10년 쯤 전인데 그땐 아무 생각 없이 읽었다... 는 건 이번에 두 번째 읽으면서 깨달은 사실... 그런 점에서 처음 읽은 거나 마찬가지인 재독 직후 영화 <컨택트>를 보고 바로 다시 세 번째 독서를 했다. 이미지 중 책에 색인을 붙인 건 세 번째 독서 때 한 짓이다. 이건 결국 세 번이나 읽고서야 이해했다는 의미.

 

원제는 <Arrival>인데 책을 읽은 사람이면 아마 원제가 이 작품에 더 적확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위, 페르마의 원리를 참고하면 '도착', '도달'이라는 의미를 가진 'arrival'이 여러모로 작품의 함의를 잘 드러내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I와 O로 구현되는 컴퓨터의 이진법을 이해못하는 문과형 컴맹이라 SF 특히 하드SF를 읽을 때면 뇌주름이 쪼그라들다 못해 쪼글쪼글해지는 괴로움으로 몸부림친다. 그럼에도 하드SF를 향한 애정이 식지 않는 건 내가 잘 모르는 세계, 그렇지만 틀림없이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욕구 때문이 아닌가....... 는 낙관적인 소리이고 그냥 에리히 프롬 식의 '피학적 자기 성애'의 일종이 아닌가 한다. 굳이 괴로워하며 책을 읽는 행위를 달리 뭐라고 표현한단 말인가.

 

영화를 보기 전 원작을 먼저 읽는 순서를 선호하기 때문에, 오랜만에 테드 창의 책을 펼쳤는데 막상 궁금하다. 나야 이왕버린몸이라지만 책을 읽지 않고 영화를 먼저 본 사람은 어떤 감상을 느꼈을까. 궁금해서 M에게 영화를 추천했으나,

71.png액션이야?

67.png아니

71.png재미있어?

67.png아니

71.png그럼 안 볼래

67.png그래라

가 되어 타인의 지성의 힘을 빌어보고자 했던 희망은 물건너 갔다. 게다가 입이 근질근질하여 "정말 안 볼 거야?" "응." 대화 이후 나불나불 A to Z 해버렸다.

이 영화 혹은 책에 대하여 집단지성의 감상이 궁금하여 sns를 뒤졌으나 만족할만한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위 내용에 덧붙여)

영화를 보고 나면 더 많은 이해와 해석의 필요성을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데 물리학과 언어학에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인으로선 당연한 욕구다. 그런데 이건 영화비평가라고 해서 다를바 없는 듯 하다. 그러니 조언을 하자면 영화에 대해 좀 더 전문적인 이해를 얻고자 한다면 영화비평가 말고 물리학자나 언어학자들의 후기를 찾아서 읽는 것을 권한다. 무엇보다 쉽고 유익하고 재미있다. 참고로 이런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 SNS와 유툽을 통해 다양한 감상을 찾아 본 입장에서, 유명한 모영화비평가의 유툽 영상은 보는 내내 '시간낭비'라는 사전적 언어의 물리적 체험을 생생하게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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