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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3578 bytes / 조회: 3,588 / ????.12.20 16:10
[영상] 남한산성 그리고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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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포스터가 많아서 고르기 힘들었다. 인조(박해일)가 포함된 포스터와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두 신하'에 의의를 두고 고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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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클라이막스 장면. 척화와 주화로 대립하는 김상헌(김윤석)과 최명길(이병헌).

 

김훈의 <남한산성>이 원작이다. 소설을 읽은지 좀 오래 되어 미시적인 부분은 기억이 거의 날아간 것이 아쉽다. 재독하면 좋은데 초독도 못한 책이 넘쳐나서 언감생심이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쓴 줄 알았는데 안 썼던가 보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이 리뷰는 남아있는 소설의 기억과 영화를 함께 하기로 한다.

 

기억을 되살려 영화와 소설을 비교해보면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도체찰사 김류가 입을 열 때마다 뒷목 잡고 혀를 차게 했던 영화와 달리 소설은 김류를 위시한 주둥이만 살아있는 조정 대신들의 활약이 그닥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소설은 김훈의 문체 덕에 혹은 탓에 그 답답하고 홧병 오르는 인물들을 제법 관조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즉슨 척화와 주화가 제 주장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영화와 달리 소설은 이들 사모 관대로 무장한 답없는 꼰대들이 배경으로 슬쩍 밀려나고 대신 청의 침략에 쫓겨 피신한 산성에서 고립무원에 빠진 조선의 비극이 서사의 중심을 차지한다. 이러나 저러나 인간은 역사에 묻은 아주 작은 먼지 한 점에 불과하다.

 

영화가 척화와 주화 사이에 낀 우유부단한 인조를 직접적으로 보여줬다면 소설은 인조는 물론이고 조정 대신들, 하물며 청을 포함한 병조호란 조차도 객관적인 거리를 확보하고 사감을 극도로 배제한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한다. 이를 가능케하는 건 역시 김훈의 문체 때문인데 즉 김훈만이 쓸 수 있는 내러티브이고 서사다.

 

인물만 보자면 영화는 압도적으로 김상헌과 최명길이 화면을 지배하지만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의외로 청 장수 용골대다. 이는 영화의 용골대와 다른 점인데, 영화 속 용골대는 무관의 기질만 극대화해서 보여줬다면 소설은 무관의 면모만큼이나 외교와 정치에 능한 문관의 면모가 부각된다. 합리적이고 사리에 밝은 용골대의 인상은 청을 오랑캐라 하여 멸시하고 화친을 거부하는 조정의 분위기와 맞물려 그 대비가 더욱 극명하다.

 

5천 년 역사 중 유독 '조선'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 있으니 바로 '명분'이다. 조선이 성리학을 국가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다고는 하나 들여다 볼수록 곱씹을수록 골때리는 게 바로 이 '명분'이다. 명을 섬기는 신하의 도리로 청을 섬길 수는 없다고 목에 핏줄을 세우는 대신들은 그냥 희극이다. 애초에 원이든 명이든 청이든 남의 나라를 섬기겠다니? 명은 되고 청은 안 된다니? 이 무슨 개연성이라고는 1도 없는 헛소리인가. 그런데 이 개연성 없는 헛소리가 대한제국말기까지 이어진다. …생각해보니 중국이냐 미국이냐 중심을 못잡고 그와중에 일본한테 빌빌댔던 503도 있었다. 그 잔당이 지금도 친일친일하고 있고. 역사는 여전히 흐르고 있고... 나는 속터지고...

 

영화 전반에 걸쳐 만연한 감성 즉, 관조적이고 체념적이고 그러다 불쑥 치미는가 싶지만 의미 없다는 듯 이내 바스라지는 불꽃은 소설에서 받은 인상과 닮아있다. 물론 소설보다 영화가 더 격정적이고 동적이고 사람 냄새가 물씬하다.

형용사와 부사를 싫어하는 김훈 작가 특유의 절제되고 압축된, 역설의 역설로 마침표를 찍는 문체가 영화에서도 과연 구현이 가능할까 or 구현되었을까 궁금했는데 결론적으로 영화적 문법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구현됐다.

 

(최)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

신의 문서는 글이 아니라 길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 영화 <남한산성>

 

익히 학교에서 배우고 드라마에서 자주 접한 병자호란이고 보니 내용에 대해선 달리 할 얘기가 없다. 그냥 '아이고 저 꼰대들' 혈압만 오르지.

출연진의 면모를 보면 역대급 캐스팅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데 다만 연기 잘하는 이병헌도 지나치게 청량한 발성 탓에 사극톤은 안 어울리는구나 싶었다. 근데 이런 감상은 기존 대하드라마를 통해 성대를 긁는 두꺼운 사극톤에 익숙해진 편견 때문일 수도 있다.

 

내 기준, 조선조와 관련하여 난제 중 하나인데 선조와 인조 중 누가 더 찌질한 상등신인가 하는 거다.

조선조 첫 방계 출신 선조는 출신컴플렉스를 극복 못한 찌질이이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평생 명분에 시달렸던 찌질이이고.

뱀발이지만 조선 사대부 분당의 시초인 동서분당의 시조가 되는 인물이 동인 이황, 서인 이이(율곡)인데 오늘날 이 두 사람은 화폐의 주인공이 되어 존경을 받고 있으니 참 분통 터지는 일이다. 그와중에 충무공 이순신은 백원 동전이다. 동전을 무시하는 건 아님.

 

5천 년 역사에 위인이 그렇게 없던가. 분당 싸움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강점기 시절 일본이 심어놓은 역사 왜곡의 잔재라는 얘기도 있지만 내 보기엔 당파 싸움질은 그냥 사촌이 땅사면 배아파하는 민족성이다. 지금 자유당이 하고 있는 지랄도 마찬가지. 이 땅과 민족에게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게 무엇인지 그들이 정말 몰라서 허구헌날 선불 맞은 짐승처럼 돌아다니면서 비뚤어진 입으로 나불대겠는가.

 

그사이 책은 100쇄 기념 에디션도 나오고, 개정판도 나왔다. 개정판과 100쇄 에디션엔 작가의 '못다 한 말'이 수록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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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은 첫 번째 분홍 표지.

세 번째 검은색 표지가 100쇄 기념 에디션으로 화가 문봉선 선생의 모필화가 삽입되었다. 가운데 개정판인 흰 표지의 그림이 문봉선 선생의 모필화.

 

나는 저널리스트의 혹은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마침 참고할만한 관련 인터뷰가 있어 인용한다.


 

“형용사·부사를 다 빼. 주어·목적어·서술어로만 써라. 이 세상에 일어난 모든 일은 3형식 문장에 담을 수 있다."

"너는 문장과 문단의 차이를 아느냐? 문단이 바뀌면 우주가 바뀐다. 회사를 나가라.”

 

몽골 기병들의 복귀 | 고제규 | 시사IN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0331

 

- 언론인 경험이 소설에 영향을 미쳤나?

사실적 정황을 묘사할 때 언론인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문장에서 수다 떠는 걸 제일 싫어한다. 되도록 짧게 한마디로 딱 정리한다. 형용사나 부사 안 쓰고 문장의 뼈다귀만 쓴다. 주어·동사·목적어 중심으로 프레임만 짜려는 것은 역시 기자 시절의 습관, 그 영향이 남아 있는 거 같다.

 

"패배와 치욕도 배워야 할 역사"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0371

 

* 출처는 링크에 

 

부산에 오기 전 김훈 작가는 이웃사촌이었다. 빵집 가는 길에 노천 카페에서 다른 김 작가와 커피 마시는 모습도 보고, 교차로에 나란히 섰다가 나는 길을 건너고 작가는 택시를 타고... 운좋으면 동네를 돌아다니다 곧잘 마주치는 동네 아재였다.

나는 생각이나 기분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타입이라 아마 작가는 십중팔구 '쟤 내 팬이구나' 눈치챘을 거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입이 귀에 걸리고 눈이 관자놀이에 걸렸으니 모를리가...

『공터에서』이후 소식이 없는데 새해에는 그의 신간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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