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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6691 bytes / 조회: 3,474 / ????.01.14 22:56
[도서] 조지 손더스 <바르도의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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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도의 링컨

조지 손더스|정영목, 문학동네

 

몰라도 상관 없는 tmi...

 

1. B가 미용실에 있는 동안 도서관에서 일독함.

2. 이 소설은 전체 500페이지임. 

 

결론. 현대인이 머리를 다듬는데 들이는 정성과 시간에 진심 경의를 표한다.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혹은 특징적인 점은 소설을 구성하는 방식 즉 '형식'이다.

'바르도'에서 이미 짐작한 사람도 있겠지만 소설은 죽은 사람들이 웅성웅성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대화로 가득하다. 그 사이로 삽지처럼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살아있는 자들의 근황이 등장하고.

* 바르도 - 티벳 불교 용어. 불교에서 죽은 영혼이 49일 동안 머무는 곳. 기독교의 연옥에 해당.

 

망자들이 떠드는 소리를 구현하는 데는 일반적인 대사와 서술 형식보다 호메로스의 운문 형식이 확실히 효과적이다.

(이건 출판사 제공의 이 소설에 쏟아지는 찬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기존 소설의 형식을 취하지 않은 것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건 호들갑으로 느껴진다. 부연하자면, 대중적인 예로 베케트가 이미 내용과 형식에서 '낯설게 하는' 방식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적) 실험을 충분히 시연했기 때문에 고작해야 운문에 가까운 진행 방식 정도로 독자가 새삼 충격을 받을 일은 없다. 그러니 출판사 제공에 등장하는 쏟아지는 찬사는 오히려 소설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린다. 

 

개인적인 평은, 충격적이거나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지만 재미있는 시도, 이 정도가 이 소설에 대한 찬사로 적당한 것 같다. 참고로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1위를 수식하는 온갖 찬사는 로맨스소설에도 똑같이 쏟아진다. 주례사 찬사에 별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는 얘기임.

 

개인적으로 내게 이 소설은 형식은 재미있는 시도로 읽혔던 반면, 서사는 낯설었다. 이야기가 기승전결을 갖추고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르도의 사자(死者)들과 이승의 생자(生者)들을 오가는 액자식 에피소드로 이어지다 보니 얼핏 풍물 백과사전을 보는 기분이랄지, 창 너머로 구경하는 전지적 구경 시점으로 읽혔다. 여튼 이야기에 멱살 잡혀 끌려가는 즐거움은 없다. 그러니까 내 기준, 발단에서 결말로 이르는 스토리의 과정과 완결성에서 감동이나 재미를 얻는 전통적인 방식의 소설은 아니었다.

 

<바르도의 링컨>은 일단 굉장히 '소란스럽다'. 구분을 잘 해야 되는데 '시끄럽다'가 아니라 '소란스럽다'. 아직 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망자들이 일종의 '정거장'에 모인 탓에 사연도 많고 그만큼 말도 참 많다. 현실세계의 대화든 소설이든 말이 많은데 소란스럽다면 대화의 맥락이 불분명할 확률이 크다. 

 

둘째 영미권, 그 중에서도 미국 독자들이라면 이 소설이 특히 애틋하겠다 짐작은 되지만(링컨이 윌을 품에 품는 장면이라던가) 유감스럽게도 태평양 구석의 어느 반도에 사는 동양인은 작가가 정성껏 준비한 만찬을 온전히 즐기기가 힘들다. 일례로 링컨과 그의 아들 윌의 일화를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게티스버그, 하는 순간 "아!" 하는 미국인과 "어!"하는 한국인의 차이랄까.

 

셋째, 미국인들이 링컨에게 갖고 있는 애정을 새삼 확인한다. 사실 이런 확인은 링컨 관련 영화나 책을 볼 때마다 하는 거라 크게 새롭지는 않다.

 

넷째, <이집트 사자의 書>와 <티벳사자의 書> 애독자인 B라면 같은 소설을 읽고 좀 더 지적 감상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역으로 몰라서 내가 놓친 독서의 즐거움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건 만고진리.

 

이상의 이유로 맨부커 심사위원장의,

 

“완전히 독창적인 이 소설의 구성과 스타일은 위트 있고 지적이며 지극히 감동적인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중략)”

 

에서 '완전히 독창적인 구성과 스타일'은 공감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감동적인 내러티브'는 공감한다. 망자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울림이 있다.

 

소설을 읽은 감상을 짤막하게 정리하면, 

읽던 중에는, '나쁘지 않다', 읽고 나서는 '괜찮다'. 

그런데 500페이지를 완독하고나니, 완독해야지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이 있다. 상의 권위를 그닥 신뢰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아무한테나 대충 주는 상은 아니지 않겠는가. 상을 받았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재미있는 건 읽을 땐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 읽고 나서 며칠이 지나 리뷰를 쓰는 지금, 뜬금포 이 소설이 고전적-, 클래식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는 거다. 역시, 상을 받을 땐 이유가 있다.

 

그렇고 그런 일본 사소설에 질린 사람이라면 신선한 독서의 경험이 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형식 때문에 오히려 서사의 빛이 바라는 느낌인데 기회가 된다면 그의 단편소설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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