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바람난 가족>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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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5445 bytes / 조회: 4,599 / ????.11.06 02:17
[영상] 임상수 <바람난 가족>


호정을 중심으로...

1. '보수와 진보'
물론 '보수'는 남편 영작을, '진보'는 아내 호정을 지칭한다. 영작이 '보수'라는 의미는 이전의 세대가 미덕이라고 믿으며 살던 가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호정이 '진보'라는 의미는 영작과 반대라는 점에서다.(굳이 성-性-에 국한된 얘기만은 아니다)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는 입장에 서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보수'가 옳은가, '진보'가 옳은가 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즉, 영작이나 호정, 누구의 손도 들어줄 수 없다는 말이다. 때문에 몇 가지 장면에서 영화가 호정에게 손을 들어주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꼈을 때 자연스레 거부감을 느꼈다.

영작은 호정과의 관계에서 부족한 부분을 애인 연에게서 채우려고 한다. 호정은 오르가즘을 느낄 수 없는 남편과의 관계후 자위를 한다. 즉 만족이 없는 성관계에 대한 해결책으로 영작은 지극히 보수적인 선택, '바람'을 피고 호정은 당당하게 남편앞에서 '자위'라는 진보적인 선택을 한다. 몰래 '바람' 피우는 영작과 당당하게 '자위'하는 호정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할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이다. 이렇듯 영화는 여러모로 은유를 많이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제목의 '바람'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되는 지점이 된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영화의 중반부까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하물며 가장 은밀하다고 볼 수 있는 '성'조차도 당당하던 그녀가 결국 가장 '보수'적이랄 수 있는 대표적인 관념인 '모성'으로 회귀하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그녀의 '진보'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녀의 진보는 보수가 되고 말았는가?

2. 페미니즘? 여성 영화?
'여성 영화'란 엄밀하게 따지면 여성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여성들이 얘기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바람난 가족>이 페미니즘 혹은 여성영화로 회자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바람 피우는 남편에게 쿨하고, 자기를 입양한 사실을 왜 알렸냐는 어린 아들의 질문에 "입양했으니까."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던 그녀가 아들의 죽음 앞에 무너지던 모습은 영화의 절정을 이루는 부분인 동시에 간단치 않은 플롯을 가지는 장면이다.
그녀는 남편의 흔들리는 가부장적인 책임, 남성으로서의 성적 열등감, 입양당한 입장에서의 아들의 고민앞에선 늘 솔직하고 당당하다. 그건 남편의 문제이고 아들의 문제여서였을까? 엄마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시점에 직면했을 때 그녀는 돌변한다. 남편이 외도하는 것을 알았을 때 태연하던 그녀가 남편의 폭력에 자신의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을 때 분노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호정의 쿨한 진보는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이 만든 '가족'이 해체되었을 때 여지 없이 보수로 회귀한다.
영작의 '관대한 화해'의 악수를 거부하고 이혼과 편모 역할을 선택하는 호정의 모습이 과연 그녀가 페미니스트인 증거일까? 호정의 '가족'은 서류가 만들어준 실체없는 그림자다. 입양한 아들과 마찬가지로 영작도 서류상의 남편일 뿐 즉, 그녀에겐 필요했던 건 남편이나 아들이 아닌 '가족' 그 자체였다고 보여진다. 그러니 아들의 죽음으로 그녀가 만든 이상적인 가정이 손상돼 버린 시점에서 남편은 그 역할을 이미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임신을 알게 되고 이혼을 결심하는 순서는 그래서 호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녀에게 이제 혈연으로 맺어진 진짜 가족이 생기게 되었으니 서류가 만들어낸 가족인 남편 영작은 필요가 없는 셈이다.(그런데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결론적으로 내가 <바람난 가족>을 통해서 본 호정은 분명 진보적인 인물이지만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하거나 혹은 붕괴되는 현실에 맞서는 순간 유전자에 이미 각인되어 있던 '전형성'이라는 급진적인 보수로의 전환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새로이 임신을 하게 된 것을 알게된 호정은 다시 예전의 자신을 찾는다. 마지막 장면. 영작이 호정의 연습실을 나가다 춤을 추는 장면은 호정의 모습에서 자신과 닮은 '보수'를 발견해서 안심했던 것은 아닐까...

덧. <오아시스>를 보지 못했으므로 '공주'인 문소리는 모른다. 하지만 <바람난 가족>에서 그녀의 연기가 과연 평단에서 말하는 그런 극찬을 받을만한 연기였던가 조금 의아하다. 시선은 시종 카메라앞에서 불안하고, 대사는 연극하는 듯 톤의 높낮이가 어색하고 얼기설기했다. 나는 영화배우를 보러 간 것이기 때문에 연극배우 문소리를 보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다만 황정민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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