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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6073 bytes / 조회: 5,660 / ????.05.25 11:42
[영상] 김대우 / 음란서생


퓨전 사극이다.
그러니 대사톤을 가지고 연기력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다. 고증을 가지고 눈을 흘길 필요도 없다. 편집이 현대적이고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장면 전환이 빠르다. 기존의 정통 사극을 생각하고 이 영화를 보면 배신감 을 느낄지도 모른다. 아. 그러고 보니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가 등장한 지도 꽤 됐구나.

사랑을 모르는 불감증 여자, 정빈(김민정).
사랑에 관심없는 남자, 윤서(한석규).

이 두 사람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사랑밖에 난 몰라, 정빈.
사랑이냐 (예술적)야망이냐, 윤서.

김윤서.
이 남자 진짜 재미있는 남자다. 그는 틀림없이 A형이다. 아마 못 돼도 위 3대까지는 순수 A형일 것이다. 신중하기가 거의 정신병자 수준이다. 하물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사랑인가 아닌가, 영화의 막바지까지 고민한다. 그것과 별개로 새로 발견한 즐거움, '음란소설 쓰기'를 위해서라면 체면도 뭐도 다 버렸다.
뒤늦게 발견한 도둑질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고 하니 장안의 음란소설 분야에서 1위를 탈환하기 위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짜내려고 고심하고 그 아이디어, 즉 자신의 글에 삽화를 넣으려고 집안의 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내숭쟁이 의금부도사 광헌까지 꼬드겨내어 음란물 집필이라는 신선 놀음에 머리 새는 줄을 모르는 것이다.
(꼬는 놈이나, 꼬이는 놈이나... 정말 웃기는 놈들.)

알쏭달쏭한 문제적 인간, 윤서.
소심한가 하면 대범하고, 나약한가 하면 제법 절개가 있고, 지루한 사람인가 싶으면 하고 싶은 건 목숨을 걸고라도 해야 하는 그는 사실은 심심한 걸 제일 무서워하는 인간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쟁도 집안의 복수도 야심도 모두 덧없다 생각하는, '무위(無爲)'론자처럼 보이던 윤서에게 어쩌면 음란소설은 재미있는 세상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일 지도 모른다. 아마 추월색이라는 '익명성'이 그를 소설속에서나마 자유분방하게 만들어 주는 것일 지도. 그런데 우연히 발견한 신천지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막상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정빈과의 사이에 일어나는 화학적 반응의 정체가 뭔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사랑을 하는 자, 약자.

임금이 자신이 아닌 딴 놈과 정분 난 자신의 애첩 정빈에게 하는 말이다. 임금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정빈도 약자라고 말 한다. 그 때서야 비로소 윤서가 진심을 털어놓는데 뭐라고 하는고 하니 요약하면,
'정빈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사랑인지, 그저 본능인지 알 수가 없어 고민했다.' 란다.

정확한 시대 배경은 없으나 의복의 모양으로 보아 대충 조선 시대 어디쯤 될 그 시대에, 유교 사상에 지배당하는 사대부의 장손으로서 윤서에겐 육체와 정신을 결부시킨다는 것이 힘들었을 법도 하다.
영화 중에, 장안의 화제가 된 윤서의 역작 '흑곡비사'(너무 웃기지 않은가?) 의 결말에 대한 얘기가 잠깐 등장하는데 그에 대한 윤서의 생각이 흥미롭다. 출판업자는 윤서에게 해피엔딩이 당연하다고 조르지만 윤서는 결말이 비극이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쯤 되고 보면 남녀의 정사를 바라보는 윤서의 시각이 '그저 유흥'만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남녀 이야기에서 비극이라 함은 결국 죽음이 갈라놓든, 어느 한 쪽의 마음이 바뀌든 어쨌든 '이별'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바로 그 이별이 아프기 때문에 비극인 것이다. 헤어지고 '야, 후련하다. 아, 행복해' 한다면 그것이 비극인가? 희극이고 해피엔딩이지.
그런 이유로 육체적 정사가 전부인 흥미본위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저 즐기고 헤어지면 그 뿐인 것을, 윤서가 '비극적 결말'에 집착하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보여진다.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인 동시에 정빈에 대한 윤서의 감정이 음란한 본능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던게 아닌가 싶다. 음란물을 쓰는 동안 자신의 육체적 본능에 충실해지면서 점차 억눌려있던 감정적 본능에도 솔직해질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푸코에 의하면 광기(狂氣)는 시대적, 사회적 억압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소수 약자들의 본능의 정직한 표출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윤서는 충분히 광인(狂人)적 인물이라고 할 만 하다.

하여튼, 이 영화. 가볍게 웃고 싶고 적당히 자극받고 싶은 사람에겐 그리 나쁘지 않다. 다만...
도대체 누가 이 영화가 음란하지 않다고 했던가! 무지무지 음란하다. 아는 사람과 같이 보면 낯 뜨겁다. 한석규씨. 역시 히트제조기라던 예전의 별명에 걸맞게 10년 영화 연기의 내공이 있다. 뻔뻔하다 못 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천진한 얼굴로 '불가능해 보이는 그것'을 시연하는 장면은 생각할 수록 웃긴다. 아! 광헌役의 이범수씨를 빼놓을 수 없다. 코믹 연기가 물이 올랐음이 느껴진다. 김민정씨는 별로 안 좋아하므로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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