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석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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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8611 bytes / 조회: 266 / 2023.07.01 16:54
[도서] 백민석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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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백민석이 미학에세이를 쓰면 이런 글이 나오는구나.

백민석의 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관하여 백민석이 하고 싶은 얘기에 쉽게 진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실사화가 여러모로 화제였는데 화제의 중심은 역시 '에리얼 캐스팅'이었다. 결론적으로 '흑인 인어공주'는 화제성에선 성공했으나 중요한 흥행은 재미를 못 보면서 인종차별, 외모차별을 전가의 보도처럼 앞세운 디즈니의 PC주의가 대중을 설득하는데 실패했음을 확인시켜줬다.


'미(美)'를 정의하는 건 쉽다. 고금을 막론하고 '미인'의 정의는 균형과 비율의 범위를 벗어난 적이 없다. 반면 '추(醜)'는 개념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질문을 해보자. 아름답지 않으면 추한가? 그렇지 않다. 누구의 '추'가 다른 누구에겐 '추가 아닌 것'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미'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아름답다'의 반대는 '추하다'가 아니라 '아름답지 않다'고 해야 한다.

세상에 보편적인 의미의 '아름다운' 기준은 있어도 '추한' 기준은 없다. 달리 말하면 미는 추가 될 수 없어도, 추는 미가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런 잣대로 내게 추상(抽象) 미술은 '아름답지 않은(=불균형)' 것에서 잉태된 표현 예술이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다른 무엇'을 증명하기 위한 표현 문법이랄지. 그리하여 같은 맥락으로 이 책의 제목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가리키는 것도 결국 '추상미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해할 수 없으니 '추상'이오, 그럼에도 아름다우니 '미술(美術)'인 것이다.

 

사족인데, 외모가 개인의 최고 자산인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는 예쁘고 잘생기면 아무래도 실보다 득이 많다. 일례로 늘 가는 단골식당인데 M과 동행하면 갑자기 반가운 인사를 받고, 못 보던 반찬이 나오고 서비스 음식이 나오는 것처럼. 

한번은 궁금해서 물었다.

감 "잘생겼다는 얘길 들으면 어떤 기분이야?"

M "새삼스럽게"

 

저자가 백민석이다. 그의 소설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에는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면 권하고 싶지 않은 시각 자료가 점프스퀘어마냥 등장하는데, 나는 이미지가 주는 공포에 몹시 취약한 편이라 어떤 사진 자료는 책갈피로 가리고 텍스트를 읽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했다. 이를테면 초장에 등장하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살인마 잭의 집'이 이에 해당한다. (영화의 한 장면인) 살인마 잭이 '시체들로 지은 집'은 지면임에도 불구하고 시각적 충격이 한동안 지속될 정도로 끔찍했다.

*원제는 'The House that Jack Built'다. 의미가 있고 없고 떠나서 제목에 스포를 하다니...--

 

한때 나는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를 꽤 잘 봤는데 따져보니 <킹덤 2> 이후 그러니까 도그마95 선언 이후부터 이 감독의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그마95 리스트에 오른 감독이나 시놉이 불호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러니까 '싫진 않아, 하지만 보진 않겠어' 인 거지. 의외였던 건 국내 영화 <인터뷰>가 도그마95 리스트에 있다는 사실이다. 리스트에서 <인터뷰>를 발견하고 왜 이 영화가? 싶었는데 변혁 감독이 <상류사회>에서 보여준 괴랄하고 괴랄했던 25금 씬을 떠올리니 아~ 싶기도 하다.

 

역시 사족이지만, '킹덤'은 공포물 수작이다. 이 영화는 심야영화관에서 봐야 영화를 구성하는 공포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미국 드라마 버전도 있다는데 각색한 내용을 보니 원작만 못한 것 같다.

   

시각 자료 중 박미경 <Deep Dark Fantasy>가 흥미로웠고(실물이 궁금했고), 백민석이 보고 있으면 마음에 온기가 돈다고 극찬한(물론 본인의 취향이라고 바로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서도), 김순임 <비둘기 소년>은 작가의 호감과 반대로 나는 좀 많이 불편했다. 이러한 감상의 차이는 백민석이 작품의 재료로 쓰인 펠트의 질감과 성질에 감상의 방점을 찍었다면, 나는 소년의 몸짓과 표정에 방점을 찍은 데서 비롯한다. 종이를 활용한 이 설치미술이, 만든 사람의 의도야 어떻든, 내 눈엔 불행에 박제된 소년의 체념으로 느껴졌다. 유사한 예로 '성냥팔이 소녀'가 떠오른다.

 

가볍게 펼쳤지만 내내 페이지가 무겁게 넘어간 에세이였다.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소비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예술은 작품을 소비하면서 작품의 의미까지 사유하게 하며, 사유의 과정을 통해 소비자를 윤리적 판단에 이르게 한다. 

-p.17

 

가난은 추상이 아니다. 가난은 <소공녀>가 보여주듯 삶의 가장 디테일한 부분까지 옭아맨다.

-p.48



F.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는 소설가지만 재즈 음악하면 꼭 떠오르는 인물이다. 그는 1922년 『재즈 시대의 이야기』란 단편집을 내고 이어질 '재즈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그가 유행시킨 '재즈 시대'라는 말은, 재즈 음악이 크게 융성한 1920년에서 1930년 사이를 일컫는다. 재즈 시대를 그는 마치 자신을 위한 시대인 양 마음껏 누렸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사랑하는 연인 젤다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젋고 건강했던 그에겐 돈과 창작욕이 흘러넘쳤다.

자전적 에세이 『재즈 시대의 메아리』에서 피츠제럴드는 재즈를 이렇게 정의한다. "재즈라는 단어는(…) 원래는 섹스를 의미하는 단어였고 그다음에는 춤, 이어서 음악을 가리키게 되었다. 말하자면 불안하거나 흥분된 자극의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로 ……."

피츠제럴드는 재즈처럼 감각적인 소설들을 썼고, 젤다와 함께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의 호텔들을 옮겨 다니며 재즈처럼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하지만 재즈 시대가 저물면서 그의 호시절도 저문다. 

-pp.141-142

 

추상회화는 그래서 가사 없이 연주로만 이뤄진 음악과 같다. 우리는 차이코프스키나 쇼스타코비치의 합주협주곡을 굳이 문자 언어로 옮기려 하지 않는다. 그 일이 아마도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라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사 없는 연주 음악 역시 이미지도 언어도 아닌, 추상적인 어떤 것이다.

-p.245

 

 

발췌문에 덧붙여. 

<소공녀>는 2017년 개봉작 한국영화를 의미함.

'피츠제럴드' 부분은 저자가 인용한  『재즈 시대의 메아리』가 절판된 이유로 좀 길게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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