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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1524 bytes / 조회: 284 / 2023.07.01 18:39
[영상] 헌터 / 에지 오브 투머로우 / 세버그


헌트

이정재 감독ㅣ이정재,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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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이 적과 아군을 가르던 시절, 국가 정보기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과 배신.

대개 첩보 스릴러로 구분하는 이런 류의 영화는 흥행이 보장되는 주류 장르인데 <헌터> 역시 장르가 갖춰야 할 클리셰로 꽉 찬 영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영화는 보는내내 아홉 개 매트리스 아래 숨겨놓은 완두콩 한 알 같은 찜찜함이 따라다니는 거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아마 영화 초반부터 드러난 박평도와 김정도 두 인물의 관계 구도를 보며 그들에게 닥칠 엔딩을 일찌감치 예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국가 권력은 국가 존립을 대의 명분 삼아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소위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는 거지. 그 과정에 인권은 없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지만 그보다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민중(혹은 시민의)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는 것이 적확하다. 사실 '-ism'은 힘이 없다. 힘을 가지는 건 '-ism' 위에 쌓아올린 '시스템'이다. 그리하여 독재자는 끊임없이 시스템을 만지작댄다. 

해방과 동란 이후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시스템을 건드리기 위해 끊임없이 ism을 이용해왔다. 생각해보자. 친일매국노와 인민군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치르면 누구를 응원할텐가. 어려운 질문인가? 인류가 문명을 이룬 이래 이념의 차이로 동족에게 총칼을 겨누는 역사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약 1400년 전에 한반도는 백제, 고구려, 신라로 나뉘어 서로에게 칼을 들이댔다. 남북 전쟁을 치룬 미국의 현재를 보라. 생각이 달라 싸우는 것과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 과연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가. 결국 우리는 근현대를 지나면서 친일 청산을 못한 빚 청산을 두고두고 하고 있는 것이다.  

 

<헌터>는 인물 관계도가 촘촘하고 섬세해서 몰입도가 높은 것이 장점이다. 다만 김정도가 거뒀던 죽은 동료의 딸 조유정(고윤정)의 엔딩 반전은 놀라움이나 충격보다는 의아했다. '굳이?' 이런 찜찜함. 후반 반전을 위한 배치 때문인지 조유정의 서사가 전면에 나오지 않고 생략된 탓에 결과적으로 조유정의 시적 정의가 모호해진 게 뒷끝이 찜찜한 원인인 듯 싶다.

 

영화는 김정도와 박평도 두 사람 중 누가 옳은가, 누구의 정의가 설득력 있는가 묻지 않는다. 다만 보여준다. 그리하여 감상은 관객의 몫이다.

 

 

 

 

Edge of Tomorrow


더그 라이먼 감독ㅣ톰 크루즈, 에밀리 브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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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이????? 이 재미있는 영화를 나만 안 본 거 실화냐고!!!!!

2013년 개봉작인 이 영화는 사실 제목을 접할 때마다 나는 저 영화를 봤으며 저 영화의 장르는 재난영화라고 혼자 착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이동진 유튭에서 이 영화가 언급되는 걸 보고 내가 착각한 걸 뒤늦게 깨달은 거고.

마침 쿠팡플레이에서 상영 중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봤는데 완전 내취향이다. 알고보니 감독도 내 최애 <본 아이덴티티>의 더그 라이먼이고. 나중에 M에게 영화를 봤느냐고 물으니 봤다는 말에 나만 안 본 거냐고, 왜 재미있다고 진작 얘기해주지 않았냐고 징징댔다. 취향인 영화를 개봉 당해도 아니고 10년 만에 봤다니 억울해서 잠이 안 왔다. 

 

원작은 'All you need is kill'라는 라노벨로 코믹스 작화는 <데스노트>의 오바타 타케시가 했다. 원작이 있다는 정보에 바로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라노벨이라는 장르 벽에 막혀서 아직까지 장바구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나는 라노벨과 팬픽을 못 읽는 증상이 있음. 문법적으로 이상한 제목도 거슬리고... 그치만 만화책은 아마도 살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엣지 오브 투머로우'는 얼핏 장르 클리셰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 타임루프 SF액션 영화인 것 같지만 엔딩까지 보고 나면 가슴 절절한 로맨스 영화다.

 

힘들고 긴 여정 막바지에 빌이 묻지도 않고 리타의 취향대로 커피를 타서 건넬 때, 그런 빌에게 리타가 지금이 몇 번째냐고 물었을 때 나는 순간 콧날이 시큰하게 울렸는데 관객 시점으로 시간 순행으로 지나왔던 매 장면 매 사건들이 빌에겐 수없이 반복된 시간의 생략이었음을 리타와 함께 깨달았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관객은 일찌감치 알아챘을지도 모르겠으나 눈치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는 나는 리타의 대사로 비로소 빌의 외로운 시간을 눈치챈 거다. 감독의 연출이 빛난다고 생각했던 지점이기도 한데, 이 장면은 <선리기연>에서 오공이 뒤늦게 자하 선녀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한다 말하겠소 기한을 정하라 하면 만년으로 하겠소' 흐느끼던 장면과 맞먹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2편 제작 소식도 있던데 1편 흥행이 별로여서인지(아니이 왜애???) 미루어지다 그냥저냥 무산됐나 싶다. 아쉽긴 한데 워낙 영화 자체로 완성도가 훌륭해서 2편 무산이 막 애가 타는 건 또 아님. 어쨌든 해피엔딩이니까.

 

 

 

 

세버그


베네딕트 앤드류 감독 ㅣ크리스틴 스튜어트, 안소니 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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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버그>가 무엇을 얘기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포스터 세 컷이다.

<세버그>는 미국 출신 영화배우 진 세버그가 사망하기 직전 몇 년을 다루는데 두 차례 대전 이후 냉전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 60년 대 전후 미국을 흔든 NAACP(전미흑인지위향상) 운동과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 유행했던 누벨바그를 관통했던 배우가 어떻게 몰락하는지 보여준다.

 

미국 출신 진 세버그는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로 스타가 되었는데 이후 세버그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출연한 영화가 흥행과 실패를 반복하는 와중에 로맹 가리를 포함해 다수 인물들과 결혼, 이혼, 불륜으로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었고 흑인인권운동을 앞세운 흑표당(Black Panther Party)에 후원하면서 FBI의 추적 감시 대상이 되고... 한 여자가 겪기엔 지나치게 많은 일을 겪은 데서 짐작할 수 있듯 17세 이후 세버그의 결정은 대부분 불행으로 이어졌다.

 

영화를 보기 전에 진 세버그 평전이랄 수 있는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가쁜 사랑』을 먼저 읽었는데 재미있는 건 책과 영화는 분명 같은 내용을 다루는데 전달하는 화자의 뉘앙스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 얘기는 따로 이미 했으니 영화 얘기만 해보자면 영화 <세버그>는 사망 직전까지 진 세버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항간의 소문을 그대로 실사화했다. 그 예로, 이미 책을 읽은 입장에서 영화에서 가장 놀랍고 충격적이었던 장면이기도 한데, 세버그가 후원했던 흑표당의 인권운동가와 잠자리를 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그것도 몇 차례나. 세버그를 모르는 관객은 세버그에 대해 당연히 왜곡된 시선을 갖지 않겠는가.

 

진 세버그와 로맹 가리는 FBI가 흑인인권운동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진 세버그를 감찰했다고 주장했는데 세버그 사망 이후 이는 사실로 밝혀졌으며 FBI가 당시 국장인 후버의 지휘 아래 우물에 독을 푸는 방식으로 여배우에겐 치명적인 스캔들- 미국 사회에 분열을 일으키는 흑인단체의 일원과 바람을 폈으며 흑인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흑색 선전을 대중에게 퍼뜨린 것이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영화는 FBI가 퍼뜨린 소문을 그대로 실사화한 것이다. 확인된 사실만 보자면 세버그 부부는 줄곧 소문을 부정했으며 임신 중이었던 세버그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수면제와 알코올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고 태중에서 사산된 아이는 백인인 것이 확인되었다. 사산된 아이의 피부색을 굳이 확인한 이유가 뭐겠는가.

 

이런 이유로 개인적으로 <세버그>는 평점을 줄 수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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