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형 『베이비, 베이비』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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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0070 bytes / 조회: 440 / 2023.07.20 20:51
[도서] 정은형 『베이비,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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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형ㅣ로코코

 

* 리뷰가 빈약한 것 같아 내용 추가했어욤~ (07/26)

 

이틀 전 밤에, 아니 새벽에. 

책장을 뒤지던 중에 눈에 띈 로맨스 소설 『베이비, 베이비』. 

별생각 없이 펼쳤다가 결국 그대로 밤을 샜다. 장르소설의 필살기는 역시 동서고금 킬링타임이지.

눈 퉁퉁 부은 건 덤.

 

예전에 예쁜 동생이 추천해서 한번 읽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두 번 읽은 감상을 간단 요약하면,

1회 독, 왜 말을 못해! 왜 말을 안 해!!! 왁왁거렸고,

2회 독, 이 소설이 이렇게나 올드패션이었나 놀랐고.

 

웹소설 연재 플랫폼에 종종 올라오는 댓글 '올드해요', '구작 감성이에요' 를 볼 때마다 내심 저 말이 참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을 읽으며 '올드하다', '구작감성이다' 하지는 않으니까. 그러니 아마도 저 댓글의 의미는 '촌스럽다'일 텐데 이것도 딱히 공감이 안 되는 것이 할머니의 언어로 옛이야기를 들으며 촌스럽다고 느끼지는 않으니까. 

 

각설하고, '베이비, 베이비'를 읽으면서 '올드하다'는 느낌을 지배적으로 받은 지점은 인물들의 대사인데 한마디로 드라마 작가 김수현의 대사를 읽는 기시감이 든다. 이를테면 남주 이우현의 '내가 원하는 건 기권승이 아니야' 같은 대사. 정작 '베이비, 베이비' 플롯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신파에 의한, 신파를 위한 신파는 오히려 별느낌 없는데 문어체를 읊는 것 같은 인물들의 대사는 항마력이 좀 딸렸다. 이런 대사는 11년 개정판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뻘글이지만 나는 드라마 작가 김수현의 소설을 좋아하는데(대본 아님!소설임!) 재미도 있을 뿐더러 일단 무엇보다 남주의 로맨스가 저세상급으로 절절하다.

 

내가 추천받았을 땐 책이 절판이라 어찌저찌 어렵게 중고책을 구했는데 고생이 허무하게도 얼마후 개정판이 나왔다. 어렵게 구한 중고책의 상태가 메롱해서 못마땅하던 차에 개정판은 내용 수정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에 나는 그 핑계로 개정판을 또 구입했고. 그리하여 어쩌다 보니 이 책을 초판과 개정판 둘 다 갖고 있는데 실제로 개정판은 무의미한 혹은 유의미한 수정이 제법 눈에 띈다. 참고로 초판과 비교하느라 개정판을 이번에 처음 펼쳤다. 

초판과 개정판의 가장 큰 차이는 에필로그. 그냥 '에필로그'인 초판과 달리 개정판은 '나는 나무다'라는 부제가 붙었다. 물론 내용도 다르다.

 

초판 에필로그에선 5년 후 완전한 행복을 이룬 서예린, 이우현과 그들의 두 번째 아이 나현을 볼 수 있고, 개정판 에필로그 '나는 나무다'에선 본편 완결 뒤 독일로 떠난 서예린, 이우현의 1년을 나무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내용상 시간 흐름은 개정판 에필로그 - 초판 에필로그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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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읽으니 확실히 처음 읽을 땐 안 보였던 혹은 무심코 흘려보냈던 것들이 보이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작가가 책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모두 다 애정한다는 사실. 근데 눈 밝은 독자라면 모를까 이건 개정판(=ebook)만 읽은 독자는 못 느낄 수도 있다. 작가의 캐릭터 애정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챕터는 초판 '에필로그' 인데 이른바 TV 일일극 명절 엔딩이다. 독자로선 배신감을 느낄만한 장면인데 책 한 권 내내 예린을 극한의 고통으로 몰아세웠던 인물들이 권선징악, 사필귀정 생략은 고사하고 중간 과정 뛰어넘더니 뜬금포 한자리에 모두 모여 행복을 나누고 성탄의 축복을 받는 것이다. '옛다 받아라 해피엔딩'의 전형적인 결말인데 어쨌든 아쉬운 피날레다. 어찌하여 웹소 작가들은 빌런들의 악행은 거침없이 쓰면서 그들의 엔딩엔 그다지도 관대한가. 

 

(주. 이 소설과 관련 없는 얘기임)

말 나온 김에 소설, 드라마 불문 악행을 저지른 빌런의 엔딩에 관용적인 작가들은 반성해야 한다. 협잡과 모략은 물론이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빌런에게 대가를 치를 것을 요구하지 않는 작가는 까놓고 소시오패스 아님?

 

이외에도 작가가 자신이 읽은 소설들로부터 오마주처럼 이것저것 차용한 흔적들이 보이는데 이건 글쓰기 연성 단계의 아마추어리즘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주고.

 

'기승' 없이 '전'과 '결'로 이루어진 소설의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파혼과 동시에 우현과 결혼한 예린은 행복한 신혼을 보내고 임신하지만 전약혼자와 불륜이 제기되며 축복받아야 할 뱃속의 아이는 하루아침에 남의 집안 핏줄로 의심받고 부정당한다. 한마디로 예린이 임신 기간 내내 소위 가족들로부터 고립되어 핍박을 받는 '서예린 수난곡'이랄 수 있겠다. 

다시 말하지만 '베이비, 베이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파라는 한 우물만 파는 소설이다. 

 

여주가 수난을 당하는 전개이고 보니 여주의 남편이자 남주인 이우현이 필연적으로 욕을 많이 먹는데 사실 '질투'는 인간의 유전자에 박힌 가장 원시적이고 음습한 본성이라 나는 우현의 스불재가 그닥 불편하지 않았다. 애초에 질투는 소유욕에서 촉발되는 감정이고 원래 사랑에 너무 미치면 이성과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 게 정상이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려보자.

 

벙어리냐고 욕을 많이 먹는 서예린도 마찬가지. 태어나면서부터 생모의 학대 속에 방치되다 결국 버림받고 여섯 살 때부터 남의 집안에서 객식구로 눈칫밥을 먹으며 자란 배경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부분. 과연 저들이 내 얘길 믿어줄까, 내 편이 되어줄까 겁을 먹고 망설이는 사이 점점 내가 설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애정 결핍이 자아(=자존감) 결핍으로 이어진 전형적인 예다. 물론 이해한다고 해서 공감한다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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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울리는 소설답게 서예린을 둘러싼 상황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뚝심있게 최루성 피라미드의 계단을 오르는데 다만 서예린 신파의 정점인 배내옷과 오렌지는 작가의 노림수가 지나치게 정직해서 오히려 평면적이다. 오미(五味)는 사라지고 매운맛 하나만 남는달까, 다층적 서사 구조를 좋아한다면 다소 심심하다 느낄 수도 있겠다.

 

이 소설에서 가장 빛나는 대사는 "그래도 엄마 자식은 살아서 태어났잖아"(p.310)이고, 가장 빛나는 장면은 '죽은 아이를 품에 안은 우현'(pp.375-378)이다. (구판 기준). 

 

이 장면은 (독자 입장에서)절대로 용서가 안 될 것 같았던 우현을 끌어안고 슬픔을 나누는 예린의 모습에 묵직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소설 전체를 통틀어 작가가 글을 잘 쓰는구나 감탄했던 장면.

 

참, 교통 단속 경찰이 우현이 갖고 있던 소설 '축복받은 집'을 보며 훈수를 두는 내용이 개정판에선 빠졌다. 이왕이면 엘리베이터에서 김 대리가 육두문자를 쓰며 부부 사연을 털어놓는 장면도 뺏으면 좋았을 텐데. 이 장면은 진짜 황당했는데 부하직원이 상사 앞에서 갑자기 욕을 섞어 신세 한탄을 하는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우느라 힘빠진 독자를 위해 작가가 웃으라고 넣은 장면인가 했다. 

 

오랜만에 옛날 로맨스소설을 읽고 내친김에 오미자 작가의 소설도 있으려나 서점을 검색해보니 아쉽게도 안 보인다. 최근 로맨스 소설은 미디어믹스를 염두에 둔 탓인지 배경 스케일이 커지고 소재가 다양해진 반면 예전만큼 곡진한 서사를 느낄 수 없어 예전 작가들이 가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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