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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5036 bytes / 조회: 429 / 2023.10.04 00:56
[도서] 정이현 外 『사랑, 이별, 죽음에 관한 짧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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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별, 죽음에 관한 짧은 소설』

정이현, 임솔아, 정지돈 (2023)

 

-

 

정이현은 오랜만이고, 임솔아는 처음 읽는 작가. 정지돈이야 최근 계속 읽고 있는 작가이고.

 

정이현은 예전에 내가 읽었던 작가가 맞나 작가 소개란을 뒤적였을 정도로 글이 생소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내가 문체(or 문장) 감별사는 아니지만서도 여러 권 읽었으면 의식 아래에 익숙한 뭔가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 텐데 처음 보는 작가처럼 낯설어서 의아했다. 한편 생각해보면 당시는 트렌디한 글쓰기를 하는 작가군에 속했고 지금은 지난 세월만큼 작가도 변화를 겪었을 테니 낯선 게 자연스러운 것도 같고.

 

정이현의 「우리가 떠난 해변에」는 평이했는데 혹시 '한주영'이 반전을 위한 설정인가 싶어 한번 더 읽었고 역시 작가가 그런 의도로 썼구나 확신에 이르렀다. 유감인 건 반전은 딱히 인상적이지 않고 소설은 지지부진했다는 거. 게다가 다시 생각해봐도 이 키워드를 굳이 반전 장치로 쓸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든 건 해당 키워드를 다루는 작가의 태도가 지나치게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보이는데도.

 

임솔아의 「쉴 곳」은 내가 싫어하는 방식의 서술인데 결말부에 이르러 독자를 따돌리는 짓을 한다. 민영과 민기가 서로를 보며 눈빛으로 뭔가를 말하는데 그게 뭔지 독자가 알게 뭔가. 그러고 소설은 끝. 작가는 무슨 얘기가 하고 싶었던 걸까.


마지막으로 정지돈. 직전에 정지돈의 소설에 관하여 불호에 가까운 리뷰를 썼는데 그럼에도 왜 정지돈을 계속 읽고 있는지 이 단편집에 대답이 있다. 이 책은 정이현, 임솔아, 정지돈 세 작가가 각각 '사랑', '이별', '죽음'을 주제로 쓴 단편집인데 세 단편 중 역시 정지돈의 소설이 가장 좋다. 

 

정지돈의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 는 작가의 다른 단편 「지하 싱글자의 수기」와 정서가 비슷한데(디스토피아+블랙코미디) 여기에 SF가 묻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나무위키와 실명을 뺀 정지돈의 단편이 궁금하면 이 단편을 읽어 보시길. 

   

 

"적당한 감각 자극만 있으면 우리가 평생 구성해놓은 어떤 지식들은 단 몇 초 만에 부정될 수 있다."

(중략…)

모어가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몸과 마음이 생각보다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야. 몸은 의식에 따라 다르게 인지될 수 있는 고깃덩이에 불과해.

 

-p.82,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 정지돈


정지돈의 단편은 조던 필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두 작품의 발표 시기로 보아 소설이 영화를 오마주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 사실 눈치라곤 개미 눈곱 만큼도 없는 나조차도 도중에 눈치챘을 정도라 스포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그래도 스포일 수도 있으니 조던 필을 모르는 분은 영화를 찾아보지 말고 읽으시길.

이건 진짜 뜬금포지만, 아마도 엽기적인 결말과(조던 필의 영화로 사전답사가 되었음을 감안해도 엽기적인 건 엽기적인 거다) 여자친구의 이름인 모어에서 모리가 연상되어서인 것 같은데 문득 정지돈 작가가 '독스 인더 하우스'를 읽으면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독스'는 여성이 주소비층인 로맨스 장르소설지만 정통적인 로맨스를 사랑하는 분들에겐 추천하지도 권하지도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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