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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7805 bytes / 조회: 374 / 2023.10.27 03:12
[도서] 몽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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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 카페 파리에서 마주친 기록 

신유진ㅣ시간의흐름

  


「헤어지는 사람들」

 

어느 겨울, 북역의 카페에서 헤어지는 연인을 봤다. 그들의 대화를 일부러 엿들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테이블 간격이 너무 좁아서.

남자가 화를 냈다. 남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도 화를 냈다. 둘 중의 하나는 바람을 피운 게 분명하다. 도빌행 기차가 곧 출발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화를 내던 남자가 일어서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욕을 했다. 제법 큰 소리였는데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도빌행 기차가 기다리는 플랫폼을 향해 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남겨진 남자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몇 차례 문지르고 자리를 떴다.

나는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봐 고개를 숙이고 커피를 마셨다. 기다리는 사람은 아직 오지 않았고, 인터넷 기가를 모두 사용한 탓에 핸드폰을 쓸 수도 없었다. 나는 그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손가락에 물을 묻혀 그림을 그렸다. 물방울로 그릴 수 있는 그림은 동그라미나 오래전에 가까웠던 사람의 이름이 전부였는데, 금세 형태가 무너져 지워지는 동그라미와 어떤 이름은 조금 슬펐다.

 

겨울이 끝날 무렵, 북역의 카페에서 헤어지는 연인을 봤다. 멀리 떨어져 앉아 있었지만, 테이블 간격이 너무 좁아서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상황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남자 옆에 커다란 가방이 놓여 있는 것을 보니 기차를 타고 떠나는 쪽은 남자인 듯했다. 두 사람은 조곤조곤 대화를 나눴고, 남자의 한숨 끝에 여자가 울어버렸다. 여자가 울자 남자가 따라 울었다.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나는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봐 고개를 돌려 떠나는 도빌행 기차와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손가락에 물을 묻혀 테이블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어떤 이름을 쓰기에는 너무 추운 날이었다. 겨울은 시작할 무렵보다 끝날 무렵이 더 고약했다. 여전히 차가운 날씨에 나는 조금 화가 났다.

 

북역에서 헤어지는 사람들을 두 번이나 봤다.

헤어지는 사람들은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인간은 화를 내는 사람과 슬퍼하는 사람, 두 분류로 나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화를 내는 사람은 화를 내는 사람을, 슬퍼하는 사람은 슬퍼하는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된다고.

나는 어느 쪽의 인간일까? 궁금하나 묻지 못하겠다. 어느 쪽의 인간이어도 화가 나거나 슬플 것 같다.

 

 

-pp127-128, 『몽 카페』

 

엽편 소설 한 편을 읽은 기분이던, 그래서 저자의 문학적 감성을 엿본 기분이던 '헤어지는 사람들'을 통째 옮겨봤다. 이 짧은 글을 두 번 읽었고 발췌하면서 한 번 더 읽었으니 총 세 번 읽은 셈인데 몇 번을 읽어도 마치 눈앞에서 훔쳐 보는 것 같은 회화적 이미지는 여전하다. 새삼 감탄하면서 저자의 책을 대출한 나를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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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대출한 신유진의 책은 소설 한 권과 에세이 한 권인데 대출한 책 말고도 내 책장에도 저자의 산문집 두 권이 꽂혀있다. 미개봉 상태로. 

책장에 책을 꽂아두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 먼저 저자와 안면을 트는 뒤죽박죽 순서가 됐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모처럼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서 기쁘다.

그리고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내 책장에 꽂힌 미개봉인 신유진의 에세이가 그사이 두 번이나 표지를 갈아입었다는 거. 이쯤에서 리커버의 수요 대상이 궁금하다. 이미 갖고 있음에도 취향의 표지에 눈 돌아가는 나도 그 대상에 포함인가?

 

'몽 카페'는 파리에서 십 수 년을 살면서 취향의 커피를 만나고자 카페를 방황했던 저자의 카페 순례기다. 이렇게 쓰니 발랄한 로드트립 에세이 같지만 '발랄'하기엔 저자가 지나치게 내향적이다. 이 책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지 않는 구석에 앉아서 고작 직원을 부르는 것에도 치열한 고민을 하는 내향성 저자가 외부 자극에 예민한 자신의 취향을 때로 차분하게 때로 치열하게 관조하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리하여 마찬가지로 내향성인 나는 저자의 혼잣말을 쫓다보면 정말 파리 어느 카페에 앉아 파리 지붕 위로 느리게 번져가는 저녁 노을을 보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행위에는 풍경이 따라온다. 그러니 어느 카페에서 어떤 커피를 마시는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그날의 커피는 그날의 풍경과 함께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니까.

 

B6 판형, 156페이지 가량의 많지 않은 분량에 온통 북마크다. 우연찮게 들어간 와인바에서 대충 고른 하우스 와인에 취향을 발견한 기분.

 

신유진의 에세이 한 권과 소설 한 권을 읽는 동안 줄곧 커피가 내 앞에 있었다. 4년을 묵혔던, 그래서 언제 다 마시지 했던 난공불락의 성 같던 과테말라가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다. 450g이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양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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