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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0906 bytes / 조회: 3,784 / ????.08.22 11:27
[도서] 공지영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나는 눈물이 많다. 정말로 잘 울고, 많이 운다. 반면 잘 웃고, 많이 웃기도 한다.
그런데 몇 년 전, 안과에서 안구 건조증으로 눈물샘 검사를 했을 때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랄 정도로 내 눈물샘은 바짝 메말라 있었다. 눈물샘이 건조하면 눈물이 많다는 얘기가 아니라, 눈물과 눈물샘은 별 상관관계가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신파’라고 해서 무조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닌 것처럼.

눈물이 많은 나를 가장 많이 울린 영화는, 단연 <간첩 리철진>이다. 이 영화를 보고 순진하고 착한 간첩 리철진이 너무 가여워서 얼마나 심하게 울었던지, 어떻게 울었냐면 그야말로 대성통곡하듯 엉엉엉 목 놓아 울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어떻게 된 것이 리철진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 유오성씨만 보면 울고 있는 것이다.
유오성씨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난 한 놈만 패!’ 할 때도 울었고, 남들이 모두 예, 할 때 혼자만 ‘아니오!’ 하는 걸 보면서도 울고, <별>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때는 간첩 리철진이 생각나서 또다시 통곡하면서 울고... 하여튼 좀 과장해서 유오성씨 그림자만 나와도 울었다.
그런 유오성씨가 요즘 <투명인간 최장수>에서 열연하고 있다. 아예, ‘손수건, 휴지 옆에 갖다 놓고 마음껏 우십시오.’라고 신파를 대놓고 부추기는 드라마에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 드라마를 일부러 안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채널을 돌리다가 마주칠 때, 다른 프로그램에서 자투리로 조금씩 보여줄 때, 이 드라마의 예고 방송이 나올 때, 하다못해 신문이나 동호회 등에서 이 드라마의 감상이 올라온 걸 봐도 대번에 눈물이 차오른다. 나도 왜 그런 것인지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지만 하여튼 그렇다.
여담인데 예전에도 잠깐 썼지만, 오빠의 소개로 어느 유명 영화 동호회에 가입할 때 설문지를 작성해야 했다. 그 때 질문란에 ‘제일 좋아하는 국내 배우’란이 있었고 내가 유오성이라고 정성스럽게 써넣자, 오빠가 장난하냐고 해서 내가 발끈한 적이 있었다. 당시 유오성씨는 ‘난 한 놈만 패!’로 한창 떴을 때였다.

서론이 길어진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이 ‘신파’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딸 부잣집 둘째 따님으로 태어나신 엄마 덕분에 나는 이모들이 많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이모들이 주루룩 여고생, 여대생들이었으니 어찌 보면 큰 언니들 같기도 했다.
어려서 외가에 가면 바로 그 이모들 방에 틀어박혀서 책을 읽곤 했는데 그 때 읽었던 것들 중, 신달자씨의 <물 위를 걷는 여자>가 있었다. 지금까지도 국내 여류작가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신파를 싫어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아마 바로 이 <물 위를 걷는 여자>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였고 또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는데 우희와 난희라는, 환경은 극과 극을 달리지만 친한 친구인 두 여자들이 나온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우희는 개인의 성공을 위해 완벽하게 멋있는 남자의 청혼을 거절하고 유학을 떠나고, 대신 이 남자는 난희와 결혼한다. 페미니즘이 뭔지도 몰랐던 그 시절에도 우희가 불행해지는 걸로 결말을 맺는 이 소설을 읽고 어린 마음에도 화나고, 기분이 불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책 한 권이 청소년기에 미치는 영향이란 이렇게 대단하다.
이후로 국내 여류작가의 소설에 대한 불신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는데 공지영씨 역시 그 중에 속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나 <착한 여자>에서 등장하는 청승의 대표주자처럼 보이는 여자들의 얘기에 ‘한국적 페미니즘’이라고 꼬리표를 붙이는 사람들에게 나는 도저히 동조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인간에 대한 예의>가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이 작가의 소설이 되었다.
그랬던 내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나와 비슷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행.시는 너무 괜찮았어.’라고 얘기하는 것을 듣고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책을 주문하고, 이틀 뒤에 받아들고 그리고 읽었다. 원래 눈물이 많으니 울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거의 안 울었다. 소설 외적인 것에 대한 반발심이라거나, 소설에 감정이입이 덜 되었다거나 그런 옹졸한 이유가 아니다. 사형수를 통해 ‘용서’를 얘기하고 있는 이 소설의 주제를, 몇 달 전 모 방송국의 다큐 프로그램에서 픽션이 아닌 논픽션으로 이미 접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평하지 못하게도, 허구인 이 이야기는 그 시작부터 이미 내게서 신파를 끌어낼 힘을 잃었던 것이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실제로 사형을 선고받은 여러 명의 사형수들이 나왔다. 어떤 피해자의 가족은 죄를 짓고서라도 감옥에 들어가서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가해자 사형수를 죽여버리겠다고 절규했고, 또 어떤 피해자는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혼자 남겨진 존재의 무거움을 감당하지 못해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가장 아프고 안타까웠던 얘기는 6년 째 복역중인 사형수와 그 사형수를 용서한 피해자의 아버지가 나왔을 때였다. 그는 목사님이었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에 따라 가해자를 용서했다. 하지만 용서받은 사형수도, 용서한 아버지도 날마다 고통 받으면서 울고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내가 이 소설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콧날이 시큰해졌던 부분이 바로 ‘용서’ 하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다룬 것은 크게 두 곳이다.

수녀님 내가 나쁜 짓 하려구 그러는 거 아니에요. 시간이 더 가서 나라에서 그놈을 덜컥 죽여버리기 전에 만나고 싶다구요. 이 늙은이가 배운 것도 없구, 하는 게 하나 없는데…… 가서 내가, 이놈아 네가 죽인 그 여자 에미다! 하고…… 그렇게 말하고는, 그놈을 용서해주고 싶어요……. - p.103

용서할 수 없었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용서하기…… 싫어! 그 인간보다 더 용서할 수 없었던 엄마를…… 그런데 오늘…… 용서, 해보려구 온 거야! - p.280

사형수인 윤수의 일당에게 딸을 잃은 할머니와 가장 필요할 때 정작 자신을 외면해 버린 엄마를 향한 여자주인공 유정의 대사인데, 책을 읽다가 가슴이 찌르르 아프면서 훌쩍였던 부분이다.
어렸을 때 누군가가 내게,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뭐냐(아. 이 상투성이란...) 라고 물으면 나는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곧바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라고 말했다. 보통 대다수가 라스콜리니코프가 광장 한 복판에서 바닥에 입을 맞추고 ‘나는 살인자입니다’라고 외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들 하는데(이 부분은 <우.행.시>에도 나온다.) 나는 그가 전당포 노파를 살인하기로 계획을 세울 때, 모두들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았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뒤에 다시 깨닫게 되는 ‘세상에 죽어도 마땅한 자는 없다’라던 부분에 이르면 죄지은 자라고 해서 과연 누가 그를 단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백하자면 나는 사형폐지론자다.
가해자를 사형 집행하는 이유가, 피해자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피해자를 대신한 사회의 복수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 공공 사회의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 인물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사형이 아니라 무기형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어차피 우리가 원하는 건 '그'를 우리 세상에서 보지 않는 것 아니던가.

어차피 죽잖아. 그래봤자 살려놓아봤자, 기껏 오십 년도 안 돼서 다 죽잖아…… 오빠는 사는 게 그렇게 좋아? 그래서 살려주는 게 그렇게 배 아파? - p.234

그러나 누군가가 내게 ‘네가 피해자여도 그렇게 말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오면 나 역시 ‘그래.’라고 말 할 자신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슴이 아프고, 목이 메었던 부분이 ‘용서’하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용서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자기 희생일지도 모른다.

소설을 다 읽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차라리 여자주인공의 고모인 일흔 나이의 수녀님하고 진짜 나쁜놈인 사형수의 얘기였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라고 투덜거리자 친구,
“그럼 재미가 없잖아.”
라고 했다.

진부함과 신파는, 아마 사촌쯤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여기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유년 시절을 지나온, 아직 앳되고 예쁘장한 청년이 있다. 청년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형수다. 이 청년을 용서해 주어야 할까, 아니면 그대로 형을 집행해야 할까?
청년은 죄를 짓지 않았다. 누명을 썼다. 애초에 용서받을 죄도 없다. 도대체 뭘 용서한다는 거야?
'사형 제도'와 '용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작가는 왜 '윤수'여야 했는가, 정말 묻고 싶다. 읽은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칠순의 늙은 수녀님'과 '중년의 희대의 살인마'의 구도에 미련을 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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