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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9976 bytes / 조회: 419 / 2023.12.21 14:23
[도서]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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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비비언 고닉ㅣ서제인(옮긴이)

 

 

먼저.

누구는 이 책을 저자의 약력을 참고하여 전문직 여성이 도시와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고독과 성찰로 읽겠으나, 나는 아직은 젊고 미숙했던 시절에 자의 혹은 타의로 맞닥뜨린 소통 부재의 상황에서 때로는 주인공으로 때로는 보조출연자로 막장 해프닝을 헤쳐나온 극'F'인 저자의 분투기로 읽었다. 내내 우울하고 외로운 화자의 어조와 별개로 정작 비비언 고닉은 이 책을 웃으면서 쓰지 않았을까, 의심할만한 행간이 책 여기저기에 뿌려져있다.

 

이 책은 일곱 편의 에세이를 수록했는데 소설과 구분이 모호한 에세이의 정체가 일단 인상적이다. 다른 리뷰에서 쓴 바 있지만 에세이는 결국 저자의 '신변잡기 문학'인데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는 화자가 자신을 대상으로 2인칭 시점을 전개하는 분위기 탓에 얼핏 모놀로그 소극을 보는 기분이 든다. 그게 뭐야 싶겠지만 여튼 책을 읽은 감상은 그렇다.

 

부연하자면, 수록작 중 표제작과 동명인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를 제외한 나머지 에세이는 연극적인 어조와 소프오페라 소재로 딱인 사건들 탓에 다시 말하지만 이게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장르의 정체성이 모호하다. 굳이 설명하자면 '모노드라마 화법을 두른 인간 관찰 일지'가 이 책의 정체성에 가장 가까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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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는 처음 제목을 봤을 때 책의 분류가 예술(공연/희곡)인가 헷갈린다 싶더니 읽어본 바 실제로 소설 형식의 통속희극에 가깝다. 거리에서 지나치는 군상들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화자의 집요한 시선의 목적지는 인구 밀집 도시 뉴욕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독, 외로움, 결핍이다. 이 세 가지는 이어지는 나머지 에세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한데 알랭 드 보통 식으로 말하자면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를 읽는 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감상하는 기분'이 든다.

 

'그의 문체는 자신과 타인 사이에 오가는 드라마틱한 눈빛과 표정, 숨 막히는 찰나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포착하는데, 단순 설명을 넘어 각 인물의 목소리와 억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화체를 주로 사용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고닉이 체현하는 그 숨막히는 거리감에서 ‘나와 타인’이 비로소 ‘우리’로서 기능하게 됨을 깨닫게 된다.'

(책소개)

 

발췌 중 '드라마틱한 눈빛과 표정'은 이 책을 읽는 길라잡이로 안성맞춤이다. 고닉의 에세이 전반에 흐르는 이 정서를 누구는 매력으로, 누구는 신파로 느낄 것 같은데 나는 어느 쪽이냐면 '신파'. 고백하건대 막장 일일드라마를 텍스트로 읽는 기분이었다.

 

「나는 경험이 너무도 부족한 수영 선수였다」「똑바로 앞을 보고, 입을 다물고」는 주요인물을 가명 처리한 것도 그렇고 플롯의 기승전결도 그렇고 이 두 편은 사실상 팩션도 아닌 그냥 픽션처럼 읽힌다. 

 

이 두 편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가 흐릿해서 조금만 시선을 옆으로 흘리면 자칫 소설처럼 읽히는 드라마틱한 전개는 언뜻 피츠제럴드를 읽는 기시감이 드는데 저자는 체호프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현학적인 처세가 미덕인 집단과 그 집단을 이루는 허영, 가식, 위선 이런 것들은 체호프 보단 피츠제럴드의 영역이다. 

 

「똑바로 앞을 보고, 입을 다물고, 온전하게 균형을 잡는 것」은 저자가 왜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소설을 발표했다면 책 표지에 최소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타이틀을 몇 주는 달았을 텐데 의아할 만큼 막장의 묘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데, '이게 뭐야' 어이가 없는 와중에도 한편 마음이 서늘했던 건 가벼운 듯 보이나 그 중심에 버틴 묵직한 존재감 때문일 거다. 출신 어디 안 간다고 이것이 저널리스트의 힘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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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놀랍고 인상적이었던 건 저자가 픽션인지 다큐인지 모를 에세이에서 자신의 바닥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점이었다. 고닉은 에세이에서 자신의 약하고 이기적이고 비주체적인 단점 혹은 약점을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펼쳐놓았는데 그 절정이 「나는 경험이 너무도 부족한 수영선수였다」다. 고닉은 너무 드라마틱해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인물들 한가운데 자신을 기꺼이 내던진다. 물론 주인공의 이점(benefit)을 제거한 채로. - 그때문인지 얼핏 고백록인가 싶은 느낌도 살짝 있다.

 

고닉은 자신은 공감욕구와 인정욕구에 결핍이 있노라 쉴 새 없이 토로하며 결핍에서 비롯된 외로움, 고립, 고독을 털어놓는다. 때문에 비비안 고닉의 에세이를 읽는 건 타인의 외로움과 일대 일 대면하는 인내심을 감당하는 과정이 된다.

 

솔직히 고닉의 에세이를 읽는 동안 내내 외롭다고 징징거리는 화자 때문에 부정적인 기분에 시달렸는데 책을 덮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끝에 남는 건 산뜻한 뒷맛이라 신기하다. 역시 저널리스트로 단련된 글쓰기의 힘인가 싶고. 

 

중요한 깨달음 하나.

'막장 인물이 막장 드라마를 만든다'.

 

 

거리는 서사적인 충동의 힘을 증명해 보인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일이 역사상 가장 힘든 시대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그 무한한 힘을. 문명이 붕괴되고 있는가? 도시가 혼란스러운가? 이 세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가? 더 빨리 움직여라. 더 빨리 스토리라인을 찾아내라.

 

p.30,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침묵이다. 하루하루, 한 주 한 주가 쌓여갈수록 침묵은 더욱 깊어간다. 그것은 피부 밑으로 가라앉고, 뼈를 짓누르고, 귓속에 압력을 생겨나게 하며, 그 압력은 윙윙거리는 소리로 되돌아온다. 그것은 대화가 매일의 필수품이 아닌 까닭에 섹스와 정치가 때 이른 죽음을 맞는 거리에서 만들어지는 침묵이다. 

 

pp.175-176, '영혼을 죽이는 사소한 일들'

 

그곳은 무분별한 갈망에 따라 앞날이 가늠되는 세계였다. 그곳의 모든 것이 그 무분별함에 달려 있었다. 무지한 채 남아 있기 위해서는 힘겨운 노력이 필요했다. 모르는 채 남아 있는 일이 실패한 사람들은 고립되었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은 항상 누군가의 굴욕을 필요로 했다.

  

p.122-123, '똑바로 앞을 보고, 입을 다물고, 온전하게 균형을 잡는 것'

 

 

 

뒤늦게 책 표지의 원제 'Approaching Eye Level'을 확인하고 원서를 확인해보니 국내 제목은 첫 번째 목차 'Nobody watches, Everyone performs'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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