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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4933 bytes / 조회: 282 / 2024.02.10 13:11
[도서] 서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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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20분. 재무 서류나 검토하자. 여자한테 조바심낼 거 없잖아. 일하자. 일.

5시 22분. 젠장. 서정연. 

 

-p.90

 

 

설 오전에 읽은 소설.

찾을 책이 있어 책장을 뒤지다 (못 찾고)포기하고 대신 눈에 띈 조강은 작가의 『서머 』를 읽었다.

 

- 이것이 바로 내 책장에 꽂힌 내 책의 효용이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시간에, 읽고 싶은 장소에서 언제든 읽을 수 있다는 거.

 

제목 '서머summer'는 백준하를 이르기도 하고 백준하와 서정연이 서로를 발견하고 의식하고 다가가고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된 계절을 뜻하기도 한다.

 

세월이 제법 흐른 후 다시 읽은 소설은 이제보니 더도 덜도 아닌 딱 '연애의 정석'이다. 그러니까, 첫 눈에 호감을 느낀 두 남녀가 서로 간을 보고 썸을 타다 쎄게 한 번 밀어보고/밀쳐지고 결국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애 루트가 한 권을 빈틈없이 채운다.

 

늦여름 같은 남자와 초겨울 같은 여자는 각자 막장 서사를 품고 있다. 막장은 신파와 이음동의인지라 이들의 연애도 곳곳이 고구마밭이고 순탄하지 않다. 하지만 남자는 대책없이 뜨겁기만 한 건 아니며, 여자 역시 대책없이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결국 서로에게 가장 적당한 온도를 찾는다. 그리고 해피엔딩. 

 

인간의 기억이란 참 하찮구나 했던 게, 이 커플의 엔딩이 결혼과 육아였던 게 기억에 전혀 없다. 기억하는 (왜곡)엔딩은 큰 갈등의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서로를 받아들이는 장면이다. 찐엔딩은 결혼식에 태몽에 육아까지 완성했으니 어쨌든 장르 독자에게 가장 이상적인, 완벽하게 안심되는 결말이다.

반면 기억 그대로인 것도 있는데 이를테면 턴테이블의 핀이 갑자기 튀는 것처럼 어색한 에피소드 같은 거. 옛날 소설의 공식인지 직전에 읽은 '베이비 베이비'처럼 갑자기 갑툭튀한 주변인이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게 어색하지만 내면의 상처를 숨기고 웃는 것도 상냥한 것도 적당히 잘 하게 된 서정연과 그런 서정연을 꼬셔보고자 껄떡대는 백준하는 다시 보니 적당히 철없고 적당히 귀엽고 여전히 매력적이다. 

 

기억에 없는 투박한 문장이나 항마력을 슬쩍 시험하는 대사 표현은 당황스럽지만, 별개로 로설 남주와 여주 캐릭터 빌드업에 (드라마작가)김수현 식 마초와 가시를 품은 처연청순이 여전히 유효한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그래 클래식은 역시 이 맛이지 했다.

참고로 여러차례 밝혔지만 나는 김수현 식 마초와, 사랑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존재를 압도한다는 김수현 식 극단적인 연애 서사를 몹시 아낀다.

 

이 소설이 지금은 절판이지만 혹시 재간한다면 아무래도 대사는 손을 보지 않을까 싶다. 인물을 둘러싼 배경은 지금 읽어도 어색하지 않은데 대사는 후시녹음 시절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엇박이 잊을만 하면 소설의 연식을 불러온다.

 

조강은 작가는 이후 종이책이나 전자책으로 소설을 더 낸 것으로 아는데 내가 읽거나 소장한 작가의 책은 『서머』가 유일하다. 한 권으로도 넘치게 포식한 기분이 드는, 더 안 읽어도 충분한 포만감이 드는 소설과 작가가 간혹 있다. 물론 글은 쓰는 만큼 느는 게 정배라 기술적으로야 이후 나온 소설이 보다 세련되고 정교해질 수는 있겠다만 감안하더라도 이 작가는 '서머'에서 내러티브나 서사의 온점을 찍은 느낌이다. 말하자면 이 소설에서 작가의 정수랄지 오리진이랄지를 본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당연하지만 취향의 별 아래서 떠드는, 순전히 개취에 의한 잡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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