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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6223 bytes / 조회: 108 / 2024.02.13 13:17
[도서] 문학이 필요한 시간ㅣ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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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ㅣ정여울

 

 

오랜만에 읽은 정여울의 신간.

심리테라피는 좋아하지 않는 분야라 한동안 정여울의 책을 읽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내 맘대로의 기준-)본류로 돌아온 신간이라 반가웠다. 결론적으로 내 반가움은 설레발이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작가의 심리테라피 여정이 여전히 진행 중이며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겠다는 거였다.

호/불호 얘기가 아니라 처음 보는 작가의 반짝반짝 빛나는 문장에 반해 첫사랑에 빠진 것처럼 두근두근했던 시간을 이제는 못 누리겠구나 생각하니 아쉽다는 투정이다. 참고로 내가 그녀와 처음 만난 책은 '내가 사랑한 유럽' 시리즈. 여행가이드를 연상시키는 제목이지만 이 책의 정체는 여행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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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백색이라고 같은 것을 먹어도 다른 맛을 느끼는 게 취향이다. 똘레랑스는 개인주의가 심화된 21세기에 더욱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하는 바 타인의 생각에 관심을 갖고 타인과 의견을 나누는 궁극적인 이유는 '나와 다른 것'이 기존의 나를 깨부수는 과정에서 느끼는 쾌감이 예상외로 박진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장르에 비유하자면 스릴러와 맞먹는다고 하겠다. 요즘 '도파민'이 밈처럼 사회언어를 장악했는데 똘레랑스가 주는 도파민도 만만치않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정여울의 신간은 책 전반에 걸쳐 저자와 나의 똘레랑스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한 예로 '호밀밭의 파수꾼'의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와 나는 똑같이 큰 감동을 느꼈지만 이 장면에 대한 해석은 조금 다르다.


그 순간 나는 홀든이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존재임을 깨달았다. 네가 나보다 훨씬 성숙한 존재인데, 내가 주제넘게 너를 걱정했구나 싶어 부끄러워졌다. 마음속 밤하늘에서 무지개빛 불꽃놀이 화약이 펑펑 터지는 기분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홀든의 꿈이지만 문학의 영원한 이상이기도 하다. 절벽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한 누군가를 아무 말 없이 꼭 붙들어 주는 것. 그곳이 절벽인지 모른 채 앞만 보고 마구 달려가는 사람들을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것. 문학은 항상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비틀거리는 우리를 붙잡아 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p.79


발췌 내용은 홀든이 여동생 피비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얘기하는 것으로 여기서 홀든이 파수꾼이 되어 보호하고 지켜주겠다던 대상을 작가는 '사람들'로 이해했고 나는 '아이들'로 이해했다는 차이가 있다. 

 

퇴학 위기에 몰린 홀든은 집에 알리지 않고 학교를 뛰쳐나와 가출 상태로 뉴욕을 떠도는데 울타리 없이 도시를 배회하는 동안 홀든은 혼자 고립된 것 같은 불안심리와 예민한 자아가 극에 달한다. 그리고 그 순간 우연히 어린 동생 피비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거기서 구원을 받는다. 여기서 '구원'이란 이제 얼마후면 어른이 될 홀든이 앞으로 자신이 나아갈 방향성 혹은 지향점을 찾은 것으로 바로 홀든 본인이 겪었고 앞으로 피비가 겪게 될 세상(=어른들이 돌보지 않는 호밀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파수꾼이 되어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다.

- 해당 구절을 다시 읽어보니 아이들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홀든과 독자들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문학을 등치시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이 필요한 시간'을 읽는 건 한편으론 이런 관점의 차이를 수시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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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충실한 책이다. 아래 발췌는 작가에게 문학을 읽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작가 뿐 아니라 문학을 읽는 대다수 독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일 거다.

 

우리는 위대한 문학작품들을 통해 열정의 극한까지, 사랑의 극한까지, 아픔의 극한까지 걸어가 볼 권리가 있다. 그 모든 감정의 극한을 문학 속에서 올올이 경험한다면 우리는 실제 삶에서 더 아름다운 사랑을, 더 눈부신 열정을, 더 뜨거운 고통을 견뎌낼 힘을 얻을 수 있기에.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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