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난해한 책을 읽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정체성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이 책의 정체는 뭘까'.
서점 분류는 '인문학>책읽기'인데 그럼 으레 서평과 비평을 떠올릴 텐데, 나도 그런 예상을 하며 책을 펼쳤는데, 막상 책을 읽어 보니 예상과 달라 혼란이 온다.
시작부터 당황스러운데 책의 서두에서나 볼 것 같은 내용이 본문에 들어선 뒤에도 계속 이어진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이 서두인가 본문인가 페이지 앞뒤를 뒤적거리기를 여러 차례. 마침내 내가 읽고 있는 책은 서평도 비평도 아니며 일종의 책의 문명사라는 '내적 사고의 합의'에 이르렀다. '문화사'는 아니다. 그러기엔 저자의 내러티브가 지나치게 소설식 플롯을 취한다. 그리하여 이 책의 정체성에 대한 나의 최종적인 결론은 관념의 집합체의 실물로서 책에 관한 개론의 개론의 개론.
약간의 떨떠름, 약간의 분개, 약간의 배신감을 안고 다른 독자의 리뷰를 뒤졌는데 세상이 나만 따돌리는 것 같은 소외감만 남았다.
책의 저자가 원한 방식으로 읽지 못한 내 탓이지만 이 책에 남긴 바르가스 요사의 극찬도 같은 스페인어 소설가를 위한 주례사 비평인가 싶고 내처 요사를 향한 애정이 짜게 식는다. 차라리 중남미 문학의 장기인 마술적 리얼이즘이면 고민 없이 읽었을 텐데.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나의 불호를 이해해주길... )
단지 내 취향이 아닐 뿐 극찬 리뷰가 많은 걸로 보아 아마 좋은 책일 거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으니.
시간이 흘러 미래 어느 날의 나는 이 책을 아주 좋아하게 될지 또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