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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9462 bytes / 조회: 298 / 2024.03.10 00:59
[영상] 페어플레이(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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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클레어 도몬트

출연: 피비 디네버, 올든 에런라이크

 

 

총평_

여성운동가들은 싫어하고 일반남성들은 불편을 느낄 것 같다. 

연출이 좋다. 섬세하고 강약조절 잘 하고. 감독의 다른 영화도 궁금하다.

 

나는 흥미롭게 재미있게 잘 봤다. '잘 만든 여성영화'라고 느꼈는데 엔딩 후 뒤늦게 검색해보니 감독이 여성이고 각본도 감독이 썼다고 한다. 어쩐지- 싶었다.

 

먼저 <페어플레이>의 장르에 관하여. 이 영화는 지극히 정석적인 현대 로맨스를 다뤘는데 왜 장르 카테고리가 '스릴러/ 미스테리'일까. 아마도 위 총평에 쓴 것처럼 여성주의자도 일반남성도 불편해 할 소재와 주제여서가 아닐까 짐작한다. 자본의 투자로 만든 상업영화는 어쨌든 흥행에 성공하고 매출을 올려야 되니까. 달리 생각하면 한 발 삐끗하면 낭떠러지인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피마르는 월가 직장인들의 서바이벌기이니 스릴러라면 스릴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 영화의 정체성은 어쨌든 로맨스, 그것도 '망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헤지펀드 회사에 다니는 에밀리와 루크는 사내연애를 허용하지 않는 사규 때문에 비밀연애를 한다.

여느 때처럼 데이트를 즐기던 중 루크가 에밀리에게 청혼하고 두 사람은 더없이 행복하다. 그즈음 그들보다 윗 직급인 매니저가 해고당한다. 직원들 사이에 루크가 승진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소문을 접한 에밀리는 루크에게 미리 축하하고 기뻐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실제로 승진을 한 건 에밀리였고 이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삐걱거린다.

 

'승진'을 대하는 에밀리와 루크의 태도가 재미있는데 (비록 루머였으나)에밀리는 루크의 승진을 내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하고, 루크는 에밀리의 승진을 네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한다. 이런 태도의 차이는 이후 두 사람의 관계를 휘두르는 갈등의 시발점이자 근저인데 자고로 나한테 떨어진 행운을 질투하고 괴로워하는 나는 없는 법이다. 질투는 대개 상대방은 갖고 있지만 나는 갖고 있지 않은 결핍에서 비롯되며 스노우볼처럼 점점 덩치를 부풀리다 임계점에 다다르면 뻥! 터진다. 그러니 에밀리의 승진을 '내 일처럼 기뻐하지 못하는' 루크의 태도에서 향후 이 커플의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 번외 잡담이지만 집안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이 남성이었던 과거와 달리 여성 또한 가장으로서 역할이 두드러지는 현대 사회에 장항준 감독은 여러모로 모범답안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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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관리자로 승진한 에밀리는 사랑과 커리어 모두 성공하고 싶어하지만, 승진이 좌절되었을 뿐 아니라 자리 보존마저 위태로운 루크에게 사랑과 커리어는 더이상 양립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된다.

 

(대체로) 남자는 인정욕구, 여자는 공감욕구가 중요한 사회적 동물인데 이 테마는 <페어플레이>에도 적용된다.

 

승진에서 미끄러지며 한차례 인정욕구가 좌절된 루크의 자아는 이어지는 실수로 점점 방향을 잃는데 루크의 심정을 모르지 않는 에밀리는 루크를 돕고자 한다. 다만 에밀리의 선의가 루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보니 두 사람의 갈등은 오히려 더 깊어진다. 경쟁 사회에서, 그것도 공교롭게도 연인을 상대로 미끄러진 루크를 일으켜 세울 처방은 수직적 상승(=승진)인데 ceo가 루크를 불신임하는 상황에서 에밀리가 루크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은 타 회사로 수평적 이동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조차 '연인의 도움'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이 지점에서 더 큰 불행은, 루크는 자신의 업무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으며 에밀리는 루크의 업무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 가능한 관리자의 위치에 있다는 현실이다. 이 판단에는 승진 직후 루크의 판단으로 감행한 투자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에밀리의 경험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에밀리는 루크와의 관계를 재정립할 생각은 없다. 여전히 루크는 연인이고 (비공식)약혼자이며 에밀리는 여전히 사랑과 커리어 둘 다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은 무인도에서 태어나 자라고 혼자 살지 않는 한 사족보행을 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타인과 자신에게 스스로를 증명하며 산다. 특히 경쟁 사회에 뛰어드는 순간 '나는 이런 사람' 이라고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롤러코스터에서 버텨야 한다.

 

결과적으로 에밀리를 승진시키고 루크의 해고를 저울질하는 CEO의 판단은 옳았고 에밀리는 실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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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펀드매니저가 해고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무실의 모든 직원이 몇 분 전까지 상사이자 동료였던 직원이 사무실에서 쫓겨나는 장면을 지켜봤으며 그중 몇은 비아냥대고 그중 몇은 승진을 점치며 잡담한다. 에밀리와 루크의 관계 변화도 흥미로웠지만 사실 이 오프닝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사실 나는 진담인듯 농담같은 직원들의 잡담 - '누구는 창에서 뛰어내렸지'가 우리 주인공들의 엔딩 복선인가 싶었다.

 

리뷰 시작에서 일반남성은 불편해할 영화라고 썼는데 에밀리의 승진 이후 루크가 신체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혹은 관계를 회피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회사에서야 상사지만 퇴근하고 집에 오면 연인일 뿐인데, -뿐이어야 함에도 루크가 사회적 관계와 개인적 관계를 좀처럼 구분하지 못하며 혼란을 느끼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갈등 요소다.

 

결론은, 에밀리는 죄가 없다. 루크도 죄가 없다. 모든 남자가 장항준 감독일 수는 없으니. 

자본주의 가부장제 시스템이 길러낸 남성이 가진 한계의 전형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루크는 자전거를 타고 아우토반을 달리면서 노력만 하면 결승선에 남보다 빨리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비난을 해야 한다면 먼저 루크에게 자전거를 주고 너만 잘하면 너도 독일 엔진을 단 저 차들처럼 빨리 달릴 수 있다고 자아비대를 심어준 사회구조에 해야 한다. 물론 누구나 루크의 선택을 하지는 않으며 루크는 가장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선택의 대가를 치른다.

 

관계 자체로만 본다면 에밀리는 온전히 피해자다. 루크는 온전히 가해자고. 덧붙이자면 마지막까지 사랑과 커리어 모두 지키고자 노력한 에밀리에게 위로와 포옹을 보낸다.

 

능력의 다른 말은 재능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재능이 없다는 말은 가볍게 받아들이면서 능력이 없다는 말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능력이 없다는 말을 성실하지 못하다(or 노력하지 않는다)로 치환하기 때문이다. 좌절은 이런 요상한 사회적 합의에서 비롯된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쟤보다 내가 더 노력했는데 왜 내가 쟤보다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어야 되는지 혼란이 오는 것이다.

 

 

질투는 과연 나의 힘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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