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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7952 bytes / 조회: 103 / 2024.04.21 05:02
[도서] 숲속의 늙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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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늙은 아이들ㅣ마거릿 애트우드

 

 

 

도서관 신착칸에서 발견하고 뽑아온 이 책은 작가가 마거릿 애트우라는 것 외에는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읽었다. ★중요함

 

완독 직후 목차를 세어보니 열다섯 개 단편이 수록되었다. 단편이라고는 하나 모두 넬과 티그의 현재와 과거와 기억과 추억을 아우르는 연작 소설로 큰 틀은 하나의 장편 소설로 봐도 무방하다. 소설을 펼치기 전에 이런 기본적인 정보가 있었다면 독서가 좀 더 즐거웠을까 궁금하지만 어쨌든 현실은 독서가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사실 이 소설의 완독은 매번 사막에서 길을 잃은 기분과 씨름하는 과정이었다.

 

소설의 '장르' 구분은 중요하다. 소설을 읽는 길잡이이자 어떻게 읽을 것인가 태도를 잡는 이정표이기 때문. 하지만 회고록인가 기록문학인가, 읽는 내내 고개를 갸웃했던 이 소설은 픽션이라기엔 지나치게 에세이 요소가 많다. 역시 완독 후 검색을 통해 안 사실은 이 소설이 작가의 다른 소설 <도덕적 혼란>과 연작이며 일종의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이다. 결국 나는 룰과 내용을 모른채 낯선 경기를 그나마도 전반전은 놓치고 후반전만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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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심포지엄」인가 「과부들」을 읽을 때인가, 유사점이 전혀 없음에도 뜬금없이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 떠오른 건 열다섯 개 단편이 큰 틀에서 유기적으로 이어져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역시 완독 후 검색으로 막연한 느낌이 근거 있었음을 확인했고.

 

이 소설에 대하여 한 줄 평을 하자면 '몹시 불친절한 소설집'이다. 작가의 팬, 그것도 코어팬에겐 귀한 선물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독자에겐 불친절한 서술의 합이다. 이 소설을 제대로 읽으려면 그러니까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서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느끼고 공감하려면 작가의 지난 소설과 에세이를 먼저 읽는 선행 독서가 필수적이라는 게 소설을 읽은 소감이다. 이 얘기는 즉슨, 나는 그렇지 못했다는 고백인데 애트우드와 데면데면한 내게 이 소설집은 스토리의 부재 혹은 실종이며 그래서 줄거리를 말할 수 없고 하물며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장르를 특정하는 것조차 어려운(한 예로 작 중에 등장하는 '그레임 깁슨'은 애트우드의 동거인으로 2019년에 사망한 실존인물이다), 그냥 이방인의 세계였다. 

 

다만 그럼에도 팔순 중반에 접어든 노작가이자 기후 위기와 젠더 문제에 실천가로서 활동해왔던 애트우드의 문장은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겸허한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스친 다른 언어권 여행자의 수다를 들으며 뭔지 모르지만 때로 슬펐다가 때로 우울한 감정에 푹 젖는 기분인데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 조금 외롭고 쓸쓸했다. 길어봤자 고작 100세 인생인데 삶은 왜 그리 치열한가.


p.403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 축소되고 점점 더 작아지다가 멀리서 사라지는 것은 착시현상이다. 뒤로 물러나는 사람은 여전히 똑같다. 그들은 정말로 축소되지 않고, 정말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그들을 볼 수 없을 따름이다.

 

이 소설에 장르 태그를 한다면 '여든네 살 노작가의 회고소설'이 적절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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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두 번째 이유는 번역이다. 번역의 질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원어민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언어유희가 잦다. 재미있는 건 이걸 의식한 건지 작가 본인이 직접 '언어유희'를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p.62

 

"언어로 어떻게 장난치는지 알아요?" 갑판에 있는 한 남자가 그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는지 알아서 하는 게 아니라 할 수밖에 없어요. 언어는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죠. 그와 반대로, 병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이것도 언어유희다. '르 모 망, 앙 르방슈 레 모느 망 파(le mot ment, en revanche les maux ne ment pas)"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 의미가 살지 않는다.

 

* 발음은 '모'로 둘 다 같지만 철자와 의미가 다른 단어. '말(mot)'과 '병(maux)'을 이용한 언어유희다.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 의미가 살지 않는다'고 서술했지만 정작 애트우드야말로 이런 방식의 동음이의, 이음동의를 소설 전반에서 활용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언어유희는 원어를 통해 직관적으로 느끼지 않으면 제대로 즐길 수 없다.

 

리뷰에 많이 등장하는 「망자 인터뷰」는, 사실 나는 그닥 재미있지 않았다. 당사자의 입으로 들어도 왜곡되기 마련인 개인의 생각을 망자에 빙의한 방식으로 망자의 입장처럼 서술하는 건 좀 위험하지 않나 그런 생각인데... 이렇게 생각하면 꼰대인가?

하지만 '극단적인 시대의 풍자'(p.159)에 대한 오웰 빙의자의 의견은 음미할만 하다.

 

책 후면 추천사 중 리베카 머카이의 '애트우드의 팬이라면서 오직 작가의 장편소설만 읽어 온 독자라면 눈을 떠라! 당신은 너무 많은 걸 놓쳤다'는 이 소설의 의미를 가장 적확하게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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