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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5638 bytes / 조회: 251 / 2024.06.11 15:42
[도서] 에꼴 드 경성 『살롱 드 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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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경성ㅣ김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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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부터 분단 이후에 이르기까지 근대 조선의 화가 개인과 주변을 다룬 이 책은 제목으로 '살롱'보단 '에꼴 드 경성'이 딱이다. 본문에 이 표현이 한 번 등장했던 것 같은데 아마 신문 칼럼 연재 때 쓴 제목이라 그대로 쓴 것이겠지만 나는 제목이 작품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주의라 저자나 편집자가 좀 더 과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용이나 형식 모두 저자가 무척 성실하게 썼다는 인상을 받은 책이다. 화가의 그림과 아카이브 자료가 빼곡하고 책 후면에 정렬된 미주에서 저자가 책에 쏟은 애정을 볼 수 있다. 다만 조선일보 DNA랄지, 저자의 말에 남기는 걸로 충분했을 언론사를 향한 고마움과 감사가 굳이 본문에까지 이어져야했을까 아쉽다. 목차 두 번째는 아예 제목부터 '『조선일보』 편집국에는 세기의 시인과 화가가 있었다'인데, 이 꺽쇠 조선일보는 한동안 시시콜콜 지면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온다. 없어도 상관 없는 맥락이라 이 경우는 과유불급이 아니라 '굳이?'라고 해야 한다. 게다가 빼어난 근대 작가의 예를 들때 굳이 '모윤숙'을 언급했어야 했나. 저자의 호오야 저자의 자유다만 대중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간행물이라면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저러 소소한 의문은 있지만 책 자체는 가독성도 좋고 내용도 흥미로우며 조선 근대 미술이 궁금한 대중에게 괜찮은 레퍼런스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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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새머그 아니고 머그 손잡이가 책의 균형을 지지하고 있음

 

말그대로 '조선 근대 미술'이다. 조선. 근대. 미술. 고작 세 단어가 전하는 심상이 만만치않다.

 

때로는 시대가 모든 것을 대변한다.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분단 전쟁으로 정리되는 대한민국 근대사의 반 세기는 따로 설명이나 언급이 없어도 그 자체로 소구되는 웅변적인 한 시절이다.

 

이건 별개의 얘기인데- 전적으로 문학적인 관점, 화가 개인과 화가의 주변과 화가의 일생을 관통한 역사를 읽다보면 비극적인 흐름과 결말 위로 문득문득 '낭만'이라는 정서가 떠올라 당황스러웠다. '낭만'은 책을 덮을 즈음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에 대한 또다른 기제(機制)로 진화하는데 해피엔딩 성애자로서 '비극이어서 아름답다'는 헛소리라고 생각하지만 내 호오와 상관없이 시대가 몰고 온 불행에 발이 걸려 넘어진 천재들의 다른 결말을 자꾸만 상상하게 하는 미련은 분명 '낭만'과 맞닿아 있다.

 

(페렉의 목록을 변용해) 목록을 뽑아보자면 『살롱 드 경성』에서 내가 발견한 화가는 최재덕, 유영국, 박래현, 장욱진이다.

 

최재덕의 <한강의 포플라 나무>는 작은 지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보는 것과 감상은 다르다) 보자마자 마음을 뺏겼는데 생각해보니 이는 여전히 식지 않는 모네(MONET) 애정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싶다. 최재덕은 낙관도 인상적인데 뭐랄까, 역시 '낭만'이다 싶은... 

 

'김기창의 아내'로 더 많이 회자되는 박래현의 <낮과 밤>은 이 책에 실린 많은 그림 중 실물이 궁금한 몇 점 중 하나다. <낮과 밤>은 여러모로 인상적인데 모더니즘 중에서도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보인다. 궁금해서 화가를 검색해보니 아마도 연작일 <밤과 낮>도 있는데, 실물을 보면 감상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림문외한의 단순 감상으로 '종이에 채색'이 박래현 화풍의 원포인트인가 싶다. 구글에서 '박래현'을 검색하면 더 많은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다. 검색 추천.


오지호와 변시지는 화풍의 극적인 변화가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변시지의 <이어도>는 화가는 몰랐으나 그림은 눈에 익다. 특히 후기 경향의 끝자락에 이르러 나온 <점 하나>는 집에 걸어놓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림이다. 

극도로 미니멀한 화풍에 도달하기까지 과정을 책에선 이렇게 설명한다.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난 어느 날 아침, 변시지는 현란하고 화려한 색채에 갑자기 혐오감이 밀려오는 경험을 했다. 그러고는 제주의 색을 찾아냈다. 그 경험을 변시지는 이렇게 말했다.

"아열대 태양 빛의 신선한 농도가 극한에 이르면 흰빛도 하얗다 못해 누릿한 황토빛으로 승화된다. 나이 오십에 고향에 품에 안기면서 섬의 척박한 역사와 수난으로 점철된 섬사람들의 삶에 개안(開眼)했을 때 나는 제주를 에워싼 바다가 전위적인 황토빛으로 물들어감을 체험했다."

_p.349

 

변시지는 "선 하나, 점 하나로 모든 것을 그린 것과 똑같은 느낌을 표현하는 데에 30년이 걸렸다"(p.353)고 했다. '라파엘로처럼 그리는데 4년이 걸렸고 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평생을 소비했다'던 피카소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

 

이외에도 장욱진의 <나룻배><까치>가 시선을 오래 잡았는데 장욱진의 그림은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이중 <까치>는 변시지의 <이어도>처럼 화가의 이름은 몰랐으나 눈에 익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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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상을 눈앞에 보듯 재현하는 회화 개념과는 다르게, 추상화는 점, 선, 면, 형, 색 등 회화의 기본 요소만으로 화면에서 완전한 질서를 찾아 나가는 작업이다. 

_p.147


유영국은 생전에 처 김기순에게 '내 그림은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다행히 유영국의 추상을 알아보는 구매자가 동시대에 있었다. 김기순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네 아버지 그림은 막걸리보다 전망이 밝다'(p.149)고 했다 하니 희극과 비극은 이렇게 어깨를 나란히 걷는 모양이다.

참고로 책에 나오지 않지만 이건희 컬렉션에서 유영국의 그림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많은 화가들에 비하면 가족사 말고는 비교적 시대의 비극을 비켜간 김병기는 막장드라마 같은 가족 내력이 눈길을 끈다. 당시 소문난 평양 거부의 손자로 태어났으나 아버지 김찬영에게 소박당한 어머니의 기억과 머슴방에서 웅크리고 자란 기억을 갖고 성장한 김병기였지만 그의 처숙부가 소설 『감자』의 김동인이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유한계급은 있었으니 신상 넥타이가 나왔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넥타이를 사러 도쿄로 쇼핑을 가는 (김병기에 의하면) 전설적인 갑부 김찬영과 신흥갑부 김동인은 유한계급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에 나오지 않지만 김병기와 이상의 일화가 재미있다. 동경에서 유학할 때 김병기의 집에 찾아온 이상이 하룻밤을 머물렀는데 이튿날 이상이 '빗소리가 토독여서 한숨도 못잤다'고 하더란다. 바로 폴 발레리의 시구절이었다고. 이러니 '낭만'이 아니고 뭐겠는가.

 

'백 살이 넘으니 그림이 뭔지 알 것 같다'고 말하는 노화백 김병기의 인터뷰 일부.

 

어디서도 듣지 못한 관찰, 딱 맞아떨어지는 통찰 그림을 그리지만 그의 본질은 문학청년이다. 책을 엄청나게 읽었다. “일본에서 사랑을 잃고 돌아왔을 때 반닫이 위에 도스토옙스키 전집, 귤 상자 하나, 휴지통 하나만 놓고 방문을 닫아버렸어요. 당시 톨스토이 작품을 읽는 것은 지식인의 보편적 취향이었어요. 하지만 톨스토이라는 높은 산을 올라가니 구름 속에 가려 있던 도스토옙스키가 보입디다. 도스토옙스키에서 현대가 시작되는구나 싶었지요. 전집을 읽다 보니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베토벤 교향곡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김병기 선생의 이런 발언은 정말 흥미롭다. 어디서도 듣지 못한 관찰이었고, 딱 맞아떨어지는 통찰이었다.


“<죄와 벌>은 베토벤 5번 교향곡 ‘운명’과 체질적으로 같아요. <백치>는 6번 교향곡 ‘전원’처럼 터치가 가벼워 경쾌하고, <악령>은 교향곡 7번과 같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교향곡 9번 ‘합창’에 해당합니다. 다시 한번 들어보세요!”

 

출처. 행복이가득한집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674171&memberNo=34225985)


평소 교향곡은 대하소설, 협주곡은 장편, 소나타는 단편소설 같다고 생각해왔는데 노화백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과 교향곡을 매치한 걸 보고 내적친밀감이 치솟았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매력적인 할부지.

 


맺으며.

책을 덮고 보니 윤형근, 이우환, 천경자 화백이 목록에 없다. 이유가 궁금하고 특히 천경자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소송과 분쟁의 역사가 있어 아무래도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된다. 『살롱 드 경성』을 읽는 동안 주인공인 '화가와 그림'을 향한 감상을 제외하고 가장 실감한 사실은 국내 미술계에 끼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영향력이다. 뒤늦게 천경자 화백의 싸움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다름없었겠구나 했다.

  

지금이나 그 때나 미술은 재력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예술이다. 문학은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되고 음악은 목소리만 있어도 되지만 미술은 화구가 있어야 하니 가난한 이들이 넘기엔 문턱이 너무 높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도 마찬가지. 일부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거부나 재력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윤택한 환경에서 일찌감치 선진문물과 예술을 접했으며 일본, 유럽, 미국 유학을 경험했다. 다시 질문. 불행한 격동기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예술과 인생도 바뀌었을까. 신인들 대답할 수 있겠는가만은.

 

긴 안목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죄인은 역시 이승만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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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 <봄처녀> 캔버스에 유채, 1940년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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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94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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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섭 <자화상> 1932 유화, 도코미술학교졸업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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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덕은 사인으로 소를 즐겨 그렸는데 그러다 내처 이름을 소로 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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