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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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4919 bytes / 조회: 5,039 / ????.11.20 13:13
[도서]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상, 중, 하 세 권으로 이루어진 조용한 베스트셀러라고 일컬어지는『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오랜만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읽었다.

 

上편 비밀노트
읽기 시작한 직후부터 당혹감으로 다가왔다. 말 그대로 당혹스러웠다. 세상의 금기가 천연덕스럽게, 태연하게 펼쳐진다. 윤리는 무너지고 도덕은 부재한다. 아고타의 문체는 독특하다. 건조하고 시니컬한 문체다. 이러한 문체가 소설에서 받는 충격을 완화시켜 준다.「비밀노트」를 읽으면서 내내 영화「금지된 장난」의 흑백 영상이 머리 한 쪽에서 떠나지 않았다.

中편 타인의 증거
시리즈 중 단연 이 중편을 가장 사랑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읽은 여타의 소설들 중 특히 아끼는 목록에 포함시킬 것이 틀림없다. 4분의 3...? 아마 그 쯤에서였을 것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울고 싶다는 기분을 느꼈다. 중편을 읽는 동안은 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이유를 몰랐다. 그러다 나중에 하편을 읽는 도중에 불현듯 내가 울고 싶어졌던 이유가 소설이 너무 아름다워서였다는 걸 깨달았다. 문체는 여전히 건조하고 딱딱한 흑백톤이었지만 나는 어느새 국경 근처의 작은 시골 마을 깊숙이 감정이 몰입되어 버렸고 루카스와 마티아스를 사랑하고 만 것이다.

下편 50년 간의 고독
중편의 기억이 너무도 아름다웠던 탓이었을까. 상편의 긴장과 중편의 즐거움은 하편에 와서 김이 빠져 버렸다. 텅 빈 하늘로 끝도 없이 날아오르다 뚝. 끊어진 연을 보는 기분... 나는 그랬다.
'우리'였다가(상편) '루카스 혹은 클라우스'였다가(중편), 이제 확실히 분리된 '나'가 등장하는 하편은, 없었으면 오히려 낫지 않았을까 하고 자꾸 아쉬움이 남는다. 마치 루카스를 완벽하게 부정하는 클라우스처럼.
하편이 시리즈를 완결 짓는 중요한 부분인 건 틀림없다. 하편에서는 상편에 나타난 두 아이들의 잔혹한 일상의 밑그림이 펼쳐진다. 하편에 이르러 이 시리즈가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모두 다 채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때로 비워놓고 남겨놓는 것도 괜찮은데... 하지만 이 것도 중편을 너무도 사랑하게 돼버린 내 욕심일 뿐일 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리얼리즘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처음 상/중편을 읽으면서 아고타의 소설은 왜 마르께스나 사라마구의 소설처럼 '마술적 리얼리즘', 혹은 '환상적 리얼리즘'과 같은 수식이 없을까 궁금했는데 하편을 읽고 나니 알 것도 같다. 다만『존재의...』에서 작가의 모든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에 당장은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물론 어느 날, 어느 때 그녀의 다른 소설을 들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 때가 지금은 아니다.
끝으로, 이 소설을 발굴하고 번역을 낸 출판사의 안목에는 감사하지만 10여 년 동안 절판되었다가 재출판을 결정했을 때, 이왕이면 좀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아쉬웠다. 곳곳에서 눈에 띄는 오타와, 세련되지 못한 편집이 읽는 내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출판업계의 번역 양태를 보면 이것도 배부른 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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