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우『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Review

본문 바로가기
Login
NancHolic.com 감나무가 있는 집 Alice's Casket 비밀의 화원 방명록
Review
-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4218 bytes / 조회: 4,685 / ????.11.25 09:34
[도서] 이도우『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사서함」으로 할까「별장지기」로 할까, 약간의 고민 끝에 주문하고, 주문해놓고는 혹시 절판되었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그렇게 해서 드디어 손에 받아든 것이 바로 이『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다. 그런데 무려 7쇄... 괜한 걱정을 했다. (내가 자본주의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일까.)
*사실 절판은 나한테 꽤 심각한 문제다. 중고책 거래는 기피하는 편이고, 책대여점은 예전에 소설을 한번 대여했다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이물질'에 기겁을 한 뒤로 다시는 이용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대여한 책에 밑줄 긋는 자, 대여한 책에 자신의 이물질을 묻히는 자.

매화꽃 아래서 입 맞추겠네.
당신이 수줍어해도. 내가 부끄러워해도. [p.419] 

로맨스 물에서 ‘~하오’체를 발견할 때면 ‘아아, 이런, 안 돼!!!’하고 절규하는데, 이『사서함...』에 등장하는 건피디의 ‘-하오’체는 너무나 귀여워서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하오’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남자주인공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드라마에서 극중 캐릭터가 문제가 아니라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내가 아직 10대였을 때, 스물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20대가 되었을 때 서른이 된 나는 좀처럼 상상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30대는 참 재미없는 나이라고 인생의 무덤처럼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사서함...』은 30대의 이야기다. 후기를 보면 작가는 30대 초중반의 이야기를 천천히, 느리게 써보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후기를 먼저 읽어보는 버릇이 있는 나는 그래서『사서함...』을 느릿느릿 읽었다. 가끔 감정선이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힘들고 버겁게 느껴지는 소설이 있는데『사서함...』은 말하자면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읽는 사람의 감정선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종류의 글이었던 셈이다.

“1분간 기회를 주겠어요. 그 안에 왜 화났는지 얘기해요. 카운트 시작.”
“10초 경과.”
“30초. 1분 지나면 애기해도 안 들어요, 나.”
“1분. 당신, 시시해.”   - p.172

건피디가 진솔에게 1분을 주고 차갑게 돌아서던 것처럼, 진솔 역시 건피디에게 단 한번 기회를 주고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건피디가 흔들렸을 때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여지없이 돌아서 버린다. 아마 스물도 마흔도 아닌 서른의 진솔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라디오 방송 피디와 작가로 만난 남녀 주인공들, 이건과 공진솔은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현실성을 간직한 인물들이다. 적당히 매력 있지만 또 적당히 단점도 있는 이 인물들과 함께 웃고 울다 보니 작가의 후기까지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땐 마치 내게 건피디와 공작가라는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괜스레 흐뭇했다. 다만, 선우와 애리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생각하면 내 경우 그들에게 별다른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혹시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들을 놓치는 대신 나는 건피디의 할아버지인 이필관옹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소설(구성)의 3요소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소설은 상상만 가지고 쓰기엔 한계가 있는 창작 활동인데『사서함...』을 읽으면서 특히 즐거웠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30대 작가가 들려주는 30대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다가와서 좋았다는 것이다.   

* 댓글을 읽거나 작성을 하려면 로그인을 해야 합니다.

Total 339건 19 페이지
Review 목록
번호 분류 제목 날짜
69 영상 장예모 / 황후화 ??.01.15
68 도서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12.22
도서 이도우『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11.25
66 도서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11.20
65 도서 쓰네카와 고타로 / 야시(夜市) 1 ??.10.23
64 도서 칼의 노래 / 김훈 ??.10.23
63 영상 <타짜> <야연> ??.10.22
62 도서 다자이 오사무 / 사양 ??.09.27
61 도서 정이현『달콤한 나의 도시』 ??.09.18
60 도서 온다 리쿠『삼월은 붉은 구렁을』 ??.09.02
59 도서 행복의 조건 / 박우정 ??.09.02
58 도서 공지영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08.22
57 영상 몰아서 쓰는 영화 감상 ??.07.22
56 도서 위화『허삼관 매혈기』 ??.05.27
55 도서 J.D.샐린저『호밀밭의 파수꾼』 ??.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