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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7551 bytes / 조회: 4,589 / ????.04.15 22:38
[도서] 니체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미셸 푸코, 카뮈, 피카소는 모두 내가 좋아하는 근대의 문학가, 사상가, 화가인데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니체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푸코의 '광기'에 대한 인식과 해석, 카뮈의 문학에서 보여지는 음울하고 씁쓸한 부조리 밑에 깔려 있는 실존, 후기 피카소의 주요 화풍을 이루는 해체와 재구성의 반복 등이 모두 니체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던 것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정작 '니체'는 몰랐기 때문이다(그러고 보면 뒤늦게나마 푸코의 저서가 '니체 전집'이 그런 것처럼 재번역되어 완역본이 출판된 것과, 까뮈의 문학을 김화영이라는 동시대의 번역가를 통해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평소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사람과 사물, 사람과 생각에도 인연(因緣)이 닿아야 하고 또 그것을 위한 '때'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말하자면 내게 니체도 그랬다. 따지고 보면 '니체'는, 구체적으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내가 지나온 시간의 어디에나 있었다. 대학2학년 때 교양 수업의 리포트 주제가 '차라투스트라의 위버멘쉬(당시엔 초인)'이었고, 좋아하는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는『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추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단어를 제목으로 하여 소설『문』을 출판했고, 밀란 쿤데라의『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시작하는 첫 문장과 마지막에 흐르는 주제 의식 역시 차라투스트라가 그토록 외치고 다니던 '영원회귀'였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트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것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p.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니체와 인연이 없었다. 작년, 추석을 앞두고 긴 연휴 기간에『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것 역시 전혀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물론 읽으려고 책장에 꽂아둔 것이니만큼 언젠가는 읽겠지만 그 시기가 그 때는 아니었다.

니체전집의 정본을 완역, 예전의 오류를 바로 잡는다는 화려한 수식을 달고 책세상에서 출판된 새로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리포트를 쓰려고 의무적으로 읽었던(숱한 오역과 세간의 낡은 오해, 명예롭지 못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짜라투스트라'와는 이름부터 '차라투스트라'로 바뀌어 있었고 '초인'은 '위버멘쉬'로 바뀌었다. 그 차이는 두꺼운 붉은색 장정의 고급스러운 외양만큼이나 내용의 질에서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극명하게 나타난다.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휴 얼마 전, 읽을 것을 고르다가 아무 생각 없이 잠깐 훑어만 보자고 꺼냈던 것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다 보니 연휴 기간 내내 계속되었고 연휴가 완전히 끝난 월요일 저녁,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말았던 것은.
그 기간 동안 나는 아무 것도 못 했다. 다행히 집에 있던 컴퓨터는 두 대 모두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한 놈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또 한 놈은 모니터가 맛이 가는 바람에), 부산에 가려던 계획은 취소되었고, 긴 연휴 기간 TV에 방영한다는 영화들은 모두 이미 본 것들이었다. 이상하리만큼 완벽한 상황이었다. 니체가 장담했던 것 처럼, 나는 '차라투스트라'에게 선택되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니체에게 선택된 나는 책을 반신욕중에 욕조에 풍덩- 빠트리는 불행까지 겪어가면서(나는 아까워서 책에 밑줄조차 긋지 않는다) 말 그대로 먹고, 자는 시간 외에 외출해서도 '차라투스트라'를 들고 다니면서 읽었고, '차라투스트라'는 그 대가로 읽는 내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과 가슴 벅찬 감동을 내게 주었다. 하지만 읽는 과정은 그다지 즐거웠다고 할 수 없다. 나는 문장이 현학적이면 심하게 조는 버릇이 있는데 은유와 비유, 상징으로 가득한 형이상학적인 문장의 틀 안에 유물론적인 내용적 토대를 가진『차라투스트라는...』을 읽으면서 정말로 많이 졸았다. 이렇게 니체의 사상은 때로는 나를 견딜 수 없이 지겹게 만들었지만 다음 순간 놀랄만한 집중을 끌어내면서 기어이 마지막 장까지 다 읽게 만들었던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면 늘 그렇지만 첫 페이지와 마지막 몇 페이지는 의지와 상관없이 집중이 흐트러지기 마련인데『차라투스트라는...』는 드물게 마지막 한 장까지 씹어 먹듯이 정말 한 자, 한 자 열심히 읽었다. 아마 "이번에야말로"라는 오기와 (다행히) 집중할 수 있는 뭔가가 당시의 내게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책장에 꽂고 돌아서서 한 나절이 지날 무렵, 비로소 미루고 미루던 숙제를 해치운 것처럼 홀가분해지는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이었다. 내가 한 뼘 정도 자란 것 같은, 사유가 더 넓어지고 깊어진 것 같은….
푸코의『광기의 역사』(나남. 개정판)를 보면 역자의 말에 '책을 번역하는 동안 자신의 배움이 진일보 한 느낌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는데『차라투스트라는...』를 읽은 직후, 내가 그랬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사실은 지금도 내가 책의 내용을, 니체의 사상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그 안에 오독은 없었는지 자신은 없다. 하지만 '아이가 반복되는 놀이에 질리지도 않고 즐거워하는' 바로 그 이유처럼 책을 들기 직전의 나와 책을 내려놓은 후의 내가 더 이상 같은 내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니체가『차라투스트라는...』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위버멘쉬'는 자발적 의지에 의한 '긍정'과 '극복' 그리고 '생성' 즉, '긍정의 긍정을 통한 완벽한 자기 긍정과 자기 극복'이 아닌가 싶다. 책을 다 읽은 지금에도 '영원회귀'나 '권력의지'에 대한 부분은 사실 잘 모르겠다. 책을 읽는 동안 집중한 부분은 7~80% 정도였고 하물며 읽었던 부분에서조차 내가 놓친 중요한 내용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의 사상을 완성하는 나머지 저서도 물론 읽어봐야겠지만 그리고『차라투스트라는...』역시 몇 번 더 읽어봐야겠지만 하지만 지금은 어쨌든 '위버멘쉬의 자기 긍정'을 읽어낸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책을 읽을 때 다독(多讀)이 아닌 정독(精讀)하는 독서 습관은 다른 분야는 괜찮은데 사상서쪽은 확실히 좀 곤란하다. 이 참에 독서 습관을 좀 바꿔보면 어떨까 심각하게 고민.

200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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