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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3922 bytes / 조회: 4,738 / ????.04.22 19:32
[도서] 서머싯 몸『인생의 베일』


아무 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 것도 사랑하지 못 한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 한다.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 하는 자는, 무가치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는
또한 사랑하고 주목하고 파악한다.  -파라켈수스

검색을 하다보면 가끔 놀랍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런 경험으로 언제부터인가 찬사 일색의 리뷰는 비유를 들자면 한쪽 눈을 감고 읽는 습관이 생겼다. 호평보다 혹평을 먼저 읽고 별 다섯 개보다 별 한 개짜리 리뷰를 먼저 읽게 된 것도 물론 그런 연유에서. 그렇다고 해서 이런 습관이 혹시 내 안에 있을 지도 모를 부정적인 성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화 생활을 즐기다 보면 으례 만나게 되는 다양한 시각의 차이를 ‘가치 판단의 문제’라기 보다는 ‘타인의 취향’으로 순순히 받아들이기 때문.

원제가『Painted veil』인『인생의 베일』은 서머싯 몸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다. 보통 ‘원작 소설의 영화화’일 때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순서를 지킨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냥 그게 순서인 것 같아서다.
소설과 영화를 연이어 읽고 본 소감은 한 마디로 잔혹한 로맨스를 원한다면 소설을, 로맨스의 판타지를 원한다면 영화를... 이다. 물론 둘 다 봐도 상관없다. 다만 영화를 먼저 본 사람은 책에 실망을, 책을 먼저 읽은 사람은 영화가 싱거울지도 모른다. 

:: 편의상 영화는 'Paninted veil', 소설은 '인생의 베일'로 구분

거듭 말하지만『인생의 베일』은 소설과 영화가 동일한 플롯을 가지고 있지만 플롯의 전개 방향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절대로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장르가 로맨스로 분류되는 영화『Painted veil』은 이국의 풍광과 격변기의 시대가 맞물린 가운데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배신, 용서가 어우러진 전형적인 러브 스토리, 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소설『인생의 베일』은 '로맨스'라는 장르적인 속성을 차용하면서 동시에 장르를 피해가고 있다. 유행하는 말로, 이건 불륜으로 얼룩진 로맨스 소설도 아니고 한 여인의 성숙을 다룬 페미니즘 소설도 아니여, 인 것. 

결론부터 말하면『인생의 베일』을 읽고난 감상은, '서미싯 몸의 범작이구나'.
읽으면서 계속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이 소설은 읽는 중에 두 번이나 책 후면에 있는 작가 연보를 확인해야 했는데 처음엔 이름조차 생소한 이 소설이 왜 이제야 출판되었나 궁금해서였고 다음엔 혹시 작가의 초기작인가 싶어서였다. 이 소설이 앞선 두 소설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뒤에 쓰인 소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재능있는 훌륭한 작가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다 뛰어날 필요는 없지, 생각했다. 습작에 가까웠던『행복한 죽음』원고를 책상 깊숙이 숨겨버렸던 카뮈도 있으니.

서머싯 몸이 후기에 남겼듯이 인물보다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쓴 유일한 이 소설을 번역자는 시대에 갇힌 한 여성의 성장 소설로 해석하고 있지만, 내가 소설에서 만난 키티는 인형의 집에서 뛰쳐나가는 노라가 아닌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고 한심한 여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스칼렛 오하라가 목숨처럼 지켰던 긍지 높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쳤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나는 도대체 그녀에게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의 페이지보다 앞서 가던 내 조급함은 끊임없이 키티는 곧 깨닫게 될 거야, 이 모든 일을 통해 성장할 거야, 이 한심한 여자는 새로 태어날 거야… 라는 기대 때문이었지만 작가는 이런 기대를 여지없이 깨버린다.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 느꼈던 연애에 냉소적이다 싶었던 시선을 떠올린다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남편을 배신한 것을 들킨 후 “내가 왜 당신과 결혼했는지 알아요?”라고 따져 묻는 키티에게 월터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당신에 대해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기뻐하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걸,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을 먹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보이려고 별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랑에 보답 받지 못하면 불만을 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어.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길 기대하지도 않았고 당신이 그래야 할 어떤 이유도 찾지 않았어. 내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때때로 당신이 나로 인해 행복하거나 당신에게서 유쾌한 애정의 눈빛을 느꼈을 때 황홀했어. 나는 내 사랑으로 당신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내 애정에 참을성을 잃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이는지 언제나 고민했어. 대부분의 남편들이 권리로 여기는 걸 나는 호의로 받아들였어.”  - pp.96-97

월터는 그녀를 속속들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경멸한다. 
반면 키티는 내연남 찰스가 그녀의 방식대로 그녀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을 경멸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찰스와 사랑에 빠진 자신을 사랑하는 월터를 경멸하고 동정한다.
월터와 키티의 차이는 분명하다. 자신과 상대를 꿰뚫는 통찰력을 지닌 월터, 그런 월터가 느끼는 사랑과 경멸의 감정은 비참할 정도로 정직하지만 통찰력은커녕 심각한 인지부조화에 빠진 키티는 오히려 월터를 향해 “당신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동정하고,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너를 위해서 그만 나를 용서해”라고 말한다.
물론 그녀에게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삶과 죽음이 등을 맞대고 있는 사선(死線)과 맞닥뜨렸을 때 그녀는 변해야 했다. 눈을 떠야 했다. 그래야 옳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철이 없다. She is because she is!

월터가 그렇게 비극적인 방식으로 죽었다는 게 그녀도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가 단지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고 해도 느꼈을 법한 순전히 인간적인 차원의 슬픔이었다. (…) 그들은 함께 있어서 행복한 적이 없었고 헤어짐조차 끔찍하고 어려웠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놀라웠다. 사람들이 실상을 안다면 나를 무자비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하겠지. 글쎄 그들이 어떻게 알겠나. - p.282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자 했을 때 각색 과정에서 있었을 제작자들의 고민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같은 이유로 이야기의 중요한 구성점을 슬그머니 바꿔버린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영화와 소설은 샴쌍둥이가 수술을 통해 분리되듯 이제 완전히 상반된 길을 간다. 영화 속 월터는 죽음 직전에 키티에게 용서를 구하는데 그것은 영화 속 키티가 죽음이 지배하는 오지에서 스스로 변하고 성장하고 그녀 자신과 세계를 통찰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였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장면에서 훌쩍였다. 하지만 소설에선 같은 장면이 전혀 다르게 진행된다. 왜냐하면 소설 속 키티는 여전히 오지로 떠나기 전의(=성장하지 않은) 그녀이기 때문. 물론 소설 속 월터도 그 사실을 알고 있고 그래서 “죽기 전에, 너를 위해서 얼른 나를 용서해”라고 다그치는 키티에게 월터가 남긴 마지막 말은 “죽은 건 개였어.”였다. 수수께끼같은 이 말은 뒤에 키티가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안 월터의 죽음이 자살(죽음 앞에서 자신을 방기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와 함께 한번 더 등장한다.

골드스미스의 ‘미친 개의 죽음에 관한 애가(Elegy on the Death of a mad dog)
어떤 마을에 사는 남자가 잡종개를 만나 친구가 되었는데 어느 날 그 개가 남자를 물자 사람들이 미친 개에 물린 남자가 죽을 거라고 덥석을 떨지만, 남자는 상처가 낫고 정작 개가 죽었다.

역자는 후기에서 키티는 ‘사방에 깔린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간의 삶과 가치관을 체험하고 편협했던 시각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광대한 자연 앞에서 용서라는 실마리를 찾음으로써 속박처럼 자신을 얽어맸던 잘못된 사랑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한다.’라고 했지만 나는 역자의 이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내가 직접 읽고, 보고, 느낀 것으로 판단하면 키티는 마지막까지 '한없이 철없는 존재'였다. 
마찬가지로 역자의 소설을 해석하는 방식 역시 썩 공감이 가지 않는다. 독자로서 내가 이 소설을 읽고 얻은 미덕이 있다면 ‘인간의 본성은 결코 혹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는 것 정도.

서머싯 몸은 작가 후기에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를 우연히 알게 된 단테의 신곡중 연옥편에 등장하는 피아의 이야기에서 그 실마리를 얻었다고 했다. 부정을 저지른 뒤 남편에 의해 죽임을 당한 피아의 이야기가 서머싯 몸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고 또 소설로 창작되었는지는 작가만이 알 것이다.

“이거 한 가지만은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아버지. 저는 바보였고 사악했고 가증스러웠어요. 그리고 끔찍한 형벌을 당했죠. 결단코 저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제 딸을 보호하겠어요. 나는 그 애가 거침없고 솔직하기를 바라요. 그 애가 스스로의 주인으로서 독립된 인격체이길 바라고 자유로운 남자처럼 인생을 살면서 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요.”

과도기에 놓인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키티의 이야기는 어쩌면 이제부터가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녀의 아기와 함께.

:::

영화를 보고 나서 인터넷 검색을 했다. 소설에 잠깐 언급되기는 하지만『Painted veil』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다. 그리고 검색을 하면서 만난, ‘가장 좋아하는 베스트3 작가중 한 사람인 서머싯 몸의『인생의 베일』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을 영화를 보면서 그대로 느꼈다!’는 어느 감상평과 마주쳤을 땐 난감함을 넘어서 당황했다. 위에 언급했지만 영화와 소설은 그 주제가 전혀 다르고, 특히 주제로 돌진하는 클라이막스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는 감독이 영화를 설명하며 그런 말을 했다. 사실 이 소설에 등장하지도 않는 부분(영화에만 있는)에 대해서 움베르트 에코에게 편지를 써서 그 부분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고 말한 독자(?)도 있었다고 한다. - 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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