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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4394 bytes / 조회: 3,487 / ????.05.07 20:39
[도서] 은희경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가끔 단편을 읽는 것이 장편을 읽는 것보다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것은 '단편'에 대한 기대치 때문인 지도 모른다. 나는 글을 정말 잘 쓰는 작가는 단편을 잘 쓰는 작가라고 믿는 경향이 있고, 그런 이유로『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의 이문열은 이후『선택』으로 세인들의 비판의 정점에 올랐을 때도 나는 비판에서 떨어져있었다.
각설하고, 은희경은 한 마디로 글을 재미있게 쓰는 작가다. 독자가 어떤 얘기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쓰면 재미있는지 잘 아는 작가. 이번 단편집은 여섯 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중「날씨와 생활」은 은희경의 대표작『새의 선물』의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고, 소설의 말미에 다다르면 어라? 싶은 단편이 두 어편 있지만 결론은 대체로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두 어번 커다랗게 웃기까지 한),「지도 중독」. '세련된 음주자'라는 별명이 붙은 그 거대한 곰이 로키의 깊은 골짜기 어딘가에서 지금도 노란 민들레를 꺾고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작가의 다른 단편집은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것이 이 작가의 특징인지도 역시 모르겠지만 이번 단편은 여섯 개중 다섯 개가 남자의 시점인 1인칭이고 그나마 나머지 하나는 3인칭 시점이다. 남자를 화자로 쓰는 여성작가의 얘기는 내게 쓸데없는 궁금증을 일으킨다.
여성 드라마 작가가 쓰는 드라마속 남자출연자의 연기를 남자시청자는 어떤 기분으로 볼까 궁금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는 '허구(fiction)'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사실(non-fiction)'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소설이란 98%의 가짜와 2%의 진짜가 섞인 거짓말의 이야기이고 작가는 이 98%의 거짓말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고 했던가.

나는 원래 국내작가의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는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역시 '재미가 없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국내작가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 최근 1,2년 사이의 일이다. 요즘들어 생각해보면 이런 차이였던 것 같다. 해외소설은 '해외'라는 분류에서 이미 드러나듯 그들 자국의 문화권을 벗어난 독자인 내게 소설을 읽는 동안 '작가의 거짓말에 속지 않겠어'라기 보다는 '그래, 내 기꺼이 그 거짓말에 속아주마'가 되어 이야기의 진짜 여부와 상관없이 상상력을 자극받는 장점이 더 부각된다.

즉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도시와 거리, 인물들은 모두 상상속에서 이미지로 화(化)하게 되고 그래서 나는 그저 작가의 상상력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국내소설로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얘기, 내가 아는 역사, 내가 아는 장소가 배경이 되는 국내소설은, (썩 적절하지는 않지만)간단한 예로 내가 아는 현실의 누구도 "당신만을 사랑해 왔소"라는 어투로는 말하지 않기 때문에(일부러 시켜도 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소설을 읽다가 이런 대사와 부딪치게 되면 잠이 깨듯 작가의 거짓말에 내가 속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깨닫게 된다. 해외소설을 읽을 때와 달리 국내소설을 읽을 땐 진짜 같은 거짓말, 혹은 거짓말 같은 진짜라는 소설의 허구적 상상력에서 빠져나와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이야기가 '그냥 거짓말'로 전락해버릴 기회가 무궁무진한 것이다. 그럼에도 자국의 문화와 이야기를 읽는 장점과 재미는 분명 존재한다.


우리 글로 쓰는 우리 소설에 나타난 정서를 도대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면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고보면 자국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진짜 같은 진짜'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의도와 상관없이 꾸준하게 읽게 되는 비슷한 연배의 국내 여성작가들 중 세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간단한 감상은,
공지영, 영악하다
은희경, 영리하다
김형경, 우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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