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겨울로 가는 마차』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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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6836 bytes / 조회: 3,822 / ????.05.19 19:50
[도서] 김수현『겨울로 가는 마차』


1. 오랜만에 시집이 읽고 싶어서 시집을 사러 서점에 갔다가 드라마 작가로 더 유명한 김수현의 신작소설이라는『겨울로 가는 마차』가 눈에 띄었다. 서서 몇 페이지 읽다가 구입. 시집은 M군이 골라준 백석詩集으로 구입.

2. 최근 몇 년간 읽은 로맨스소설에서 내가 만난 최고로 멋있는 남자주인공을 꼽으라면『겨울로…』의 '박우섭'을 꼽겠다.
나는 말을 할 때, 표현을 할 때 미사여구를 아끼지 않는 버릇이 있다.
최고야, 제일 좋아, 정말 좋아... 아낌없이 최상급을 가져다 쓴다.
아주 오래 전 이런 내 말 버릇에 제동을 건 건 M군이었다. 오늘은 좋지만 내일은 안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왜 그렇게 단정지어 버리느냐는 거였다. 실제로 나의 최고와 제일과 정말은 그동안 여러번 바뀌었지만 -게중엔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도 물론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 말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박우섭에 대한 애정은 아마 꽤 오래 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궁금해진다. 이 소설도 드라마화 될까? 그렇다면 우섭은 어느 배우가? 기왕이면(?) 주진모였으면 좋겠다. --;
*참고로 영화에선,『라스트 모히칸』의 '호크아이(Hawkeye /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부동의 내 애정을 독차지하고 있다.
*『겨울로 가는 마차』는 현대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로맨스소설로 읽었기 때문에 로맨스소설로 리뷰함.

3. '멋있는 남자'에 대한 취향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만약 이 '멋있는 남자'에도 원형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박우섭같은 남자가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은 소설 내용의 곳곳에서 보이는 몇 가지 흔적으로 보아 그리고 동명의 동일한 내용의 영화가 80년대 초반에 개봉했었던 걸 볼 때 오래 전에 이미 출판되었던 것을 이번에 다시 출판한 것으로 보인다. 제목부터가 옛 냄새를 솔솔 풍기지 않는가. 물론 이야기 또한 한 마디로 신파와 통속 그 자체다. 하지만 뻔하디 뻔한 롤러코스터의 여정에 독자를 끌어다 앉히는 것은 작가의 능력. 시청률 귀신이라는 작가는 그녀의 통속적인 세계 속에 시청자인 나를 잡아다 앉혔듯 독자인 나도 그렇게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나열할 수 있는 몇 개의 작품을 리스트에 올린 작가라면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는 자기복제의 혐의를 김수현 작가 역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공통적으로 변주하고 있는 요소를 꼽으라면 역시 캐릭터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캐릭터들은 식상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예순이 넘은 이 노련한 작가는 캐릭터를 구현하는데 있어 가히 발군의 감성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보수적이고 반듯하고 언뜻 마초적인 냄새도 풍기지만 사랑하는 여자앞에서는 굽힐 줄도 알고 부드러워질 줄도 아는 남자, 그리고 더없이 신파적이고 청순가련형에다 쉽게 순응하지도 비굴하지도 않는 자존심을 가진 여자는 김수현식 로맨스에 빠져서는 안 될 요소인 동시에 김수현식 로맨스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김작가의 로맨스는 캐릭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강하지만 유연한 남자와 약하지만 부러지지 않는 여자는 가부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한편 역설적으로 김수현식 신파와 통속을 대중과 소통하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이들 캐릭터는 다소 구식이고 답답하지만 그런만큼 성실하고 정직하고 주도적이고 주체적이다. 한 마디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한 성인의 성숙한 연애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들은 매력적이다. 이 점이 김수현 드라마의 힘은 스토리보다도 캐릭터에 있다고 보는 이유이다. 스타가 드라마를 성공으로 이끄는 드라마도 있지만 김수현 드라마는 드라마속 캐릭터가 바로 스타이다. 작가의 뚜렷한 스타일로 인해 몇 가지 면에서 계속 비판을 받고 있지만 어쨌든 작가 김수현은 국내의 어느 드라마 작가보다도 로맨스의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로맨스를 로맨스이게 구현해낼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다.

물론 드라마 시청과 독서의 집중도는 엄연히 다른 점이 있고 그래서 책을 읽는 중간 중간, 작가의 어법을 빌려 '쩍' 소리가 나는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 예로 이제는 구닥다리처럼 보이는 몇 가지 이야기속의 소품들 그리고 부모님 세대에나 통할 것 같은 경직된 말투는 애교로 봐준다 쳐도 '흰 런닝, 흰 팬티'에 이르면 작가를 향한 원망의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 시대의, 그 시대를 위한, 그 시대에 의한 정서는 그것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 후대를 사는 우리의 몫이 아닌가 관대해지기로 한다. 하긴 가깝게는 셰익스피어 이후 이 장르에서 이미 보여줄만큼 보여준 연인들의 애정 구도가 21세기에 진입한 현재까지도 여전히 국내외 로맨스소설에서 빈번하게 우려먹고 있는 소재이고 보면 러브스토리와 그 속의 주인공들은 시대나 세대 그리고 세태의 변화에 별다른 구애를 받지 않는 것 같으니 기우일 수도 있겠다.

다만 완벽주의라고 소문난, 그래서 세간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드라마 대본에서 보여주었던 작가의 꼬장꼬장한 장인 정신이 책에도 발휘되어 오타와 표준문법, 편집등에 좀 더 신경을 써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계속해서 남는다.

해방前에 태어난, 국내 드라마 역사에 계속해서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는 이 노작가를 내가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한 사랑을 그리는 밑그림이 작가의 것과 내 것이 똑같이 닮아있는 것에는 놀라는 한편 감격한 것이 사실이다. 고백하건데 그런 사심이 이 책에 점수를 후하게 준 것일 수도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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