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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 지나가는 생각, 단편적 느낌, 잡고 싶은 찰나들
10361 bytes / 조회: 1,009 / ????.12.05 04:24
잡설


-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국에, 모총수피셜에 의하면 30분마다 갱신된다는 시국 소식에 눈을 못떼는 동안 12월 첫 주가 지나갔다. 이 시기에 가장 고무적인 일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머리길이가 어깨를 덮었다는 거. 여의도통신에 정신을 빼놓고 있는 새 '자를까 말까 에잇 자르자' 구간을 무사히 지난 것이다. 올레~!

 

- 미스박의 업적은 미스터박의 신화를 깬 것이라는 분석이 보인다. 거기까진 모르겠고. 그런 분석보다 부전여전 덕에 요즘 최모녀 못지 않게 자주 등장하는 '김재규'에게 흥미가 생긴다. 그날 그때그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지식이래야 영화에서 본 것 정도라 구체적인 줄거리는 몰랐던 탓에 요즘 뒤늦게 김재규, 차지철, 김형욱 세 인물의 얘기를 찾아 읽는 중.

흥미를 끄는 얘기는 10.26 사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날 김재규가 박통과 차지철에게 총질을 한 뒤 왜 본진인 중정으로 가지 않고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육본으로 갔을까, 거사 직후 김재규가 남산으로 갔다면 역사가 달라졌을까- 라는 세간의 '만약說'인데 일단, 내 생각엔 '만약'이 벌어졌어도 역사가 그닥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역사는 큰흐름과 작은흐름이 있는데 작은흐름, 즉 중정으로 간 김재규가 '삼일천하'는 누렸을지는 모르겠으나 큰흐름, 즉 결국은 군부가 권력을 차지했을 것이고 국민적 합의 없는 일방적인 군부정권 탄생에 저항하는 민심을 비상계엄 깃발을 꽂은 탱크로 짓밟고 군사독재 시대를 여는 큰 흐름은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각설하고. 그래서 중정부장 김재규는 왜 중정이 아닌 육본으로 갔을까. 김재규만이 알 일이지만, 사실 이와 유사한 일이 약 2천 년 전, 지중해 근처 장화 모양의 나라에도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얘기인데. 카이사르가 구상한 왕정에 불만과 불안을 느낀 원로원 장로 십수십 명은 약속한 장소에서 카이사르를 둘러싸고 칼을 휘두른다. 그리고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그야말로 희비극의 전형인데, 과연 셰익스피어가 창작욕을 불사를만 하다. 그러니까 막상 카이사르가 자신들의 칼에 너무 쉽게 쓰러지자 이 대책없는 노인들이 겁을 집어먹고 각자 흩어져 자신의 집으로 도망친 것이다. 그리고 며칠 동안 패닉에 빠져 아무 것도 안 하는 동안 클레오파트라의 '안토니우스'가 등장한다. 안토니우스는 알려진대로 무장(=군인). 시오노 나나미에 의하면 안토니우스가 권력을 차지하자 원로원 장로들이 '이럴려고 카이사르를 죽였나 자괴감이 든다'고 한탄했다지만 카이사르의 말을 빌리면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루비콘 강도 한참 전에 건넜으니...

거사를 꾸미면서도 감히 성공을 믿지 않았던 거대한 권력자의 죽음을 뒤로 하고 달아날 때 장로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마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공포는 인간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고, 약한 의지는 이성을 무너뜨린다. 무너진 이성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뭐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

역사에서 가장 의미 없는 것이 '가정'이지만, 그래도 만약 카이사르가 죽지 않고 자신이 구상한대로 왕정을 열었다면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유럽사는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끔 궁금하다. 카이사르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그의 이상이 완성한 큰 그림을 영영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옥타비아누스의 팍스로마나도 거대하지만 그래도 역시 카이사르의 팍스로마나가 궁금하다. 그런 이유로 세계 역사를 스쳐간 인물 중 독보적으로 걸출한 이 인물이 서양문화사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B.C의 Before Christ(그리스도 탄생 전후)를 Before Caesar(카이사르 사망 전후)로 봐도 무방하겠다는 순전히 나 혼자만의 주장.

 

- '썰전' 복습. 본방을 볼 때도 역대급이라고 생각했지만 6차 집회 이후 유시민의 '이제부터는 국민vs대통령'의 구도가 될 것이며 대의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할 국회가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국민의 분노는 국회를 향할 것(=직접민주주의 실현 요구)이라는 분석이 더욱 빛나는 회차였다. 물론 그런 유시민 조차도 이번 주말촛불에 대해 확신 못한 것 같지만.

이제 와서 얘기지만 촛불민심에 대해 그나마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인물은 문 전대표였던 것 같다. 문 전대표는 여러 매체의 인터뷰에서 지속적으로 '촛불민심'을 언급했는데 따지고 보면 문 전대표가 전국을 횡단하다시피 돌아다니며 숫자와 통계가 아닌 살아있는 민심과 직접 소통했던 것이 거의 두 달이다. 터져나오는 정국이슈와 함께 점점 변화하고 진화하는 민심을 그속에서 직접 지켜봤으니 국회나 청와대가 헛발질을 하면 촛불민심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을 것이다(Cf. 뉴스룸/뉴스공장). 

그러나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가 '분노의 강도는 점점 옅어진다'는 전원책과 비슷한 예상을 하지 않았을까. 요상한 담화문과 야권공조가 깨어져 2일 탄핵 발의가 무산됐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촛불의 동력도 서서히 힘이 빠지고 이렇게 또다시 역사가 되풀이되는구나 체념하지 않았을까. 단, 깨어있는 시민만 빼고.

당일 자정무렵, 전국 집회 인원 최종집계가 232만이라는 기사를 확인했을 때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뭔가 거대한 어떤 것을 본 것 같은, 이성과 상상을 뛰어넘는, 모든 논리와 공학을 넘어서는, 그 너머의 거대하고 지고한 무언가를 목도한 기분이 들었다. 한낱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지성과 논리라는 건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가. 자신이 부끄러웠다.

주말을 보내고 '썰전'을 복습하니 '똑똑한 바보', '탄핵정국은 야권이 아닌 국민의 요구가 끌고온 것'이라던 유시민의 말이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이해 못 하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사정이 있다. 이를테면 장남 컴플렉스라던가, 착한며느리 컴플렉스라던가. 대개 컴플렉스로 진단하는 심리적 증상인데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도 넓게 보면 결국 이런 심리적 증상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단언하건데 '제 발 저린 도둑'의 예가 가장 나쁘게 발현되는 예가 '주의(主意)'와 결합되는 때이다.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레드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작가 L이 이런 경우다. 특이점은 생의 전반기엔 정상(코스프레였는지 알 길은 없다만)이더니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이런 컴플렉스가 발현되었다는 건데 그게 연좌제의 사슬을 끊고 기득권층에 편입한 자의 불안인지, 자기증명인지, 자기과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L은 또다시 자신의 책이 눈앞에서 불태워지는 걸 볼 거라는 사실이다. 그조차도 L에겐 아리랑축전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임철우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박광수의 <그 섬에 가고 싶다>는 과거 평화로웠던 섬을 이념놀이로 *죽음의 굿판에 몰아넣었던 덕배의 시신을 실은 상여가 섬 사람들의 원한과 증오로 섬에 들어가지 못하고 기슭에서 불에 태워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친일과 독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가장 큰 비극은 사회 곳곳에 암초처럼 독초처럼 도사린 덕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 '죽음의 굿판'은 김지하 시인이 모일간지 칼럼에 기고한 글에서 빌려온 표현입니다.

M에게 윤리적 혹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작가의 책을 사는 것에 대해 물어보니 대번에 '책 태우고 싶으냐'고 묻는다. L에게 판단을 갖지 않았던 시기에 구입한 책에 대해선 사실 별 생각이 없다. 하지만 판단을 가진 이후 구입한 <삼국지>는 후회스럽다. 판본 수집에 욕심을 부린 과거의 나를 패고 싶다.

 

- 책 찾았다. <대통령의 글쓰기>가 아니라 <대통령의 독서법>이었다. 아놔. 멘붕 요소는 '나 이 책 왜 샀지?'

 

- 공중파 뉴스를 안 본 지 6-7년 쯤 된 것 같다. 확실한 건 12년 대선 이후론 TV뉴스는 한번도 안 봤는데, 다시 TV뉴스를 보기 시작한 건 손앵커가 뉴스룸으로 옮기면서. 그나마도 14년에 들어서면서 부터였지만. 최근 커뮤티니의 글을 보면 최박게이트 이후 뉴스룸 외에도 관련 특종을 쏟아내는 타종편방송도 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더라만 공중파고 종편이고 난 여전히 뉴스룸만 본다. 어느 사탕이 썩었는지 모르는데 사탕봉지에 손을 넣고 싶지 않다.

 

 

* 이 글의 처음 제목은 '단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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