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대한 예의' > 달콤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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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 지나가는 생각, 단편적 느낌, 잡고 싶은 찰나들
2330 bytes / 조회: 856 / ????.10.29 03:12
'…에 대한 예의'


올해 전반기에 유독 시공사 책을 많이 샀는데 내심 윤리적소비에 대한 내적갈등이 있었던가 싶다. 어느 날 M을 붙들고 하소연하듯 줄줄 읊어댔다. 중언부언 한없이 길고 지루했던 내용은 압축하면 결국 이렇다.
**작가의 책은 안 사. 하지만 **출판사의 책은 사. 필요하면 **서점도 이용해. **출판사에서 출판한 **작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리진 않아. **작가의 책을 출판한 **출판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리지도 않지. 그것들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에 뭘 넣어도 무방하다)
M은 내내 관심 없이 들었다.
최근 곧잘 보는 방송 프로그램 두 개가 종편작인데 손석희 아나운서를 사장으로 영입하면서 화제가 됐던 바로 그 종편이다. 나의 직접적인 소비(=재화 교환에 의한 경제활동)엔 관심없던 M이 종편 프로를 보는 나는 우려했다. M에게 그 정도 균형감각은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장담했지만 알고 있다. M이 옳다. 애초에 백로는 까마귀 노는 곳에 가지 않는 게 옳다.

<마녀사냥>에서 사귀지 않는 남자의 휴대폰을 멋대로 보는 여자 얘기가 나왔는데, 그에 막 흥분하는 네 남자들에게 격렬하게 공감했다. 작금의 휴대폰은 그냥 전화만 하는 기계가 아니지 않은가. 그야말로 프라이빗한 영역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인데 그걸 왜 동의 없이, 허락 없이 제맘대로 보나? 그런 이유로 나는 외부 일정이 장기간일 때 휴대폰에 꼭 비밀번호를 건다. 

예전엔 음악 들으면서 책 읽고, TV 켜놓고 책 읽고-가 밥 먹으면서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웠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저녁에 그동안 밀린 영화나 볼까 싶어 영화를 틀고 최근 흥미를 끌었던 칼럼을 읽으려고 생각했는데 결국 영화는 다음으로 미루었다. 이건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론 칼럼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누군가의 창작물을 대할 땐 온전히 그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게 예의다. 결론은, 예전의 나는 그냥 예의가 없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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