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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는 생각, 단편적 느낌, 잡고 싶은 찰나들
7168 bytes / 조회: 808 / ????.12.20 23:15
내일이면 아무 의미 없을 얘기들


향후 5년 이내, 18대 대선과 관련해서 아울러 정치와 관련해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잡담입니다.

TV는 안 본지 오래 됐고 - 인터넷으로 선택적 시청을 하고 있어요,
앞 게시물에도 썼듯이 전 어제 19일 저녁 8시 이후로 국내 모든 포털과 자주 가던 커뮤니티에 발을 끊었습니다.
컴퓨터 포털을 미국 야후로 설정 변경했고 스마트폰의 인터넷도 구글 기본으로 변경했고, 검색도 구글로 하던지 즐겨찾기를 이용하거나, 주소창에 해당 사이트 주소를 치고 접속합니다. 친구들에게도 당분간 정치, 경제, 사회에 관한 얘기는 일절 꺼내지 말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선거 이후 어떤 기사들이 쏟아지는지, 커뮤니티의 반응이 어떤지 전혀 몰라요.
대신 미스usa가 벌금을 물게 생겼다던지, 차고에 코끼리가! (제 눈엔 악어가 더 재미있습디다만) 따위의 글을 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현실도피 중입니다. ㅎㅎ

아마 17일 쯤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사회면 기사에 백화점 1층 수입명품관 프라다 매장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선 사진이 등장했습니다.
17일 가격인상을 앞두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대기 줄이 너무 길어서 입장하는 데만도 1시간이 걸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진을 보면 심지어 미취학 아동을 데리고 선 어머니도 보입니다.
고가의 가방을 사려고 1시간 혹은 그 이상도 기꺼이 기다릴 수 있는 사람들.
추우니까, 멀어서, 놀러가야 되니까, 정치따위 관심 없으니까... 라는 이유로 투표하는 10분이 아까운 사람들.
문득 위 두 부류의 교집합과 차집합이 궁금해졌어요. 의미그대로 '그냥' 궁금해졌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저는 처음으로 투표하지 않은 이들보다 투표한 이들에게 분노와 좌절을 느끼는 경험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한 시민 누구나 지지를 거부하거나 철회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누구를 선택했는가, 누구를 지지하는가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또 제겐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유권자로서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는가에 대해서는 한번쯤 묻고 싶어요.
유권자의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의무인 자신이 투표하려는 후보의 공약을 과연 제대로 읽고 이해했는지를 말입니다.

저희 외가와 친가는 모두 경상도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TKㅡ, 대구경북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지금은 돌아가신)큰 이모부는 그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 세 차례 출마 하셨고, 그 집 장녀는 전직 대통령의 이름과 같아요. 또 포항 출신인 막내 이모부는 새누리가 아닌 야권 인사는 모두가 다 무조건 간첩, 빨갱이라고 믿습니다. 이번 대선도 짤 없습니다. 사실 이런 건 이 지역에 가면 흔한 얘깁니다.
참고로 2010년 재보궐 선거 때던가, 부산 금정구에서 유세 기간 중에 사망한 여당 측 후보가 당선된 실례가 있습니다. 유세 기간에 사라진 죽은 후보가 열심히 유세 활동을 펼친 살아있는 후보를 이긴 거지요. 일부 지역에선 새누리당 깃발을 달면 개가 출마해도 당선된다는 얘기가 유머만은 아닌 실례입니다.

1997년 15대 대선 이후 친일후손들이 헤쳐 모인 수구꼴통 언론들이 사회를 보수우익 대 진보좌파라는 이념구도로 왜곡, 이분화시키고 대결화시켰지만 사실 전 대한민국민의 정치적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우익이라고 생각해요. 보수우익, 진보우익, 중도우익, 급진우익... 이런 거지요.
그런 이유로 제가 정말 참을 수 없는 하나는, 금권을 이용해 병역의무를 기피한 위정자들이 병역의무를 다한 시민에게 '빨갱이, 간첩'이라고 부르면 앵무새처럼 그걸 복창하는 '보통' 시민입니다. 그리고 투표하면 빨갱이라고 부르는 위정자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표를 던지는 '보통' 유권자입니다.

여담이지만, 이번 대선만 두고 얘기하면 막내 이모네 가족을 제외하고 사촌 이내 친척들 모두 공약과 인물을 보고 투표하셨어요. 저희 아버지와는 정치 얘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겠어요. MB정부 때 워낙 실망을 많이 하셨지만 콘크리트가 달리 콘크리트겠어요... 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겁니다.
상위 20%가 약속하는 그들만의 세상에, 나머지 80%의 자리는 없습니다.
20과 80의 경계선을 끊을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르고, 확실한 길은 깨어있는 이성으로 실천하는 투표입니다.

이번 대선 과정을 보면서 제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이겁니다.
상대를 거짓으로 속이는 건 참 쉽고, 상대에게 진실을 믿게 하는 건 참 어렵다는 것.

이러니저러니 해도 과정은 과정이고, 결과는 결과니까요.
부디 지지하신 과반수 분들의 희망과 바람이 이루어져 그 분의 장담처럼 그 분이 '옆에 함께 하시어', '내 꿈이 이뤄지고', '행복한' 5년이 되시길 빌어 드립니다. 또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행사하신 소중한 권리가 부디 칼날을 매단 부메랑이 되지 않기를 빌어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그람시의 글을 인용하며 글을 끝냅니다.
(참고로 붉은 색의 원문은 로맹 롤랑의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를 그람시가 인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I'm a pessimist because of intelligence,
but an optimist because of will.

나의 지성은 비관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적이다.

소수가 혁명적인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다수의 생각을 조금 바꾸는 것보다 혁명적이지 않다

지금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이 순간에
나는 조용히 다시 내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게다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즉 사람은 그 자신의 길을 가기 위헤
뭔가를 계획하고 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 by Antonio Grams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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