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한참 자고 있을 시간인데, 어쩌다 컴퓨터를 붙들고 밤을 새고 있었더니 지진을 경험했네요.
모니터를 보니 정확하게 07:05분입니다.
전 생전 처음 지진을 경험했는데 뭔가 뒤늦게 기분이 오싹한 것이 아, 이게 지진이구나 싶기도 하고.
유학시절 얘긴데, 툭하면 기숙사 건물에 화재경보음이 울리곤 했어요.
화재경보음이 울릴 때 행동 매뉴얼은 일단 건물 밖으로 피신하는 건데, 경보음이 울린 직후 한국인과 일본인의 대처 방식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나중에 일본인 친구로부터 지질학적 위치 때문에 평생 지진의 위협을 받으며 살기 때문에 재해에 대한 공포를 좀더 실체적으로 느낀다는 얘기를 듣고 보니 그 차이가 이해가 가더군요. 이후에도 잊을만 하면 경보기가 울려대고 -미국은 대개가 목조건물이기 때문에 화재 센서가 굉장히 예민하다고 합니다. 센서 바로 아래서 담배만 피워도 경보기가 울려댄다고;; - 그때마다 난민처럼 건물 밖으로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 해서 우리는 익숙하고 귀찮은 의무 정도로 치부했지만 일본인 유학생들은 한결같이 심각하고 진지하게 대피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게중에는 아닌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만...)
지진 공포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들었던 건 시애틀에서 LA로 오던 길에 지진을 겪은 지인에게서였어요.(아마 92년 캘리포니아 지진이었다고 들은 것 같아요) 그 지인의 얘기를 듣고서야 이게 그저 단순하게 사고를 겪는 그런 정도의 일이 아니구나, 알게 되었지만 역시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이 아니어서인지 그 공포를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더군요.
막연히 발 밑이 흔들리는 것 같아... 이런 느낌이 아니라 건물이 쩍 소리를 내며 두세 차례 흔들리는 물리적인 경험을 하고 나니 어렴풋이나마 지진 공포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아요. 지진대에서 벗어나 있는 우리나라의 지리학적 위치가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들었던 이른 아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