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거저나 마찬가지'에 부쳐 > 달콤한 인생

본문 바로가기
Login
NancHolic.com 감나무가 있는 집 Alice's Casket 비밀의 화원 방명록
감나무가 있는 집
달콤한 인생
- 지나가는 생각, 단편적 느낌, 잡고 싶은 찰나들
3209 bytes / 조회: 893 / ????.12.17 18:29
박완서 '거저나 마찬가지'에 부쳐


오전에 웹서핑을 하던 중 외화 자막 번역가 황석희 씨의 SNS글을 봤다. 내용을 읽고 제일 처음 떠오른 생각은 래디컬페미니즘의 목소리가 이젠 완전히 양지로 나온 건가.

 

이수역 사건도 그렇고 특정 커뮤니티 공간에서 사용되던 언어가 그 공간을 벗어나 이제 광장에서 외침으로 들려온다. 사실 이수역 사건을 접하고 내가 놀란 건 그 와중에 벌어진 폭력이나 폭력의 양상보다 녹취되었던 음성의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개인공간 혹은 상호 합의된 공간에서 오가던 특정 언어가 공공장소에서 실제로 사용되었다는 게 진심 놀라웠다.

 

그리고 일선에서 돌격대마냥 용감하게 떨치고 일어선 이들을 보니 오래 전에 읽었던 박완서의 단편「거저나 마찬가지」(『친절한 복희씨』수록)가 떠오른다. 어느 여성이 분개해서(그의 분노 자체는 순수한 성질일 거라고 짐작한다) 황석희 작가에게 혐오 문자를 보내고, 공공장소에서 어느 여성이 용감하게(그로선 아마 알콜의 힘을 빌린 용기였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한남여혐을 외치고 있을 때 정작 그 과실은 다른, 엉뚱한 이의 몫으로 차곡차곡 적립되고 있을 것이다. 원래 전쟁은 다수 민간인의 희생으로 치루고, 전쟁의 과실은 소수 권력자가 차지하지 않던가.

 

요즘 급진적인 이들의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차별을 없애는 걸 넘어 차이를 없애자는 것처럼 들린다.

유감스럽지만 차이를 없앨 수는 없다. 일단 염색체가 다르지 않나. 참고로 학회에선 성적소수자를 제3의 성으로 분류한다.

 

가끔 다시 태어나면 건축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왜 현생이 아니고 다시 태어나면인가 하니 나는 뼛속까지 문과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건축학을 못 배우는 건 내가 여자여서도, 대한민국에 태어나서도 아닌 오로지 내가 문과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선출됐을 때 미국 일각에선 유색인 대통령이 여성 대통령보다 더 빨리 탄생했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은,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받고 소외받는 불공정 부조리가 남성과 무관한 여성만의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성의 문제는 결국 남성의 문제인데 여성이 받는 차별은 고스란히 남성+여성으로 이루어진 가족 구성원에게로 이어지기 때문. 즉슨 여성을 억압하는 제도의 본질은 성이 아니라 계급, 계층이 폭력을 통해 강제로 구축한 헤게모니의 역사에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해결책은 오직 여성만 존재하는 사회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 댓글을 읽거나 작성을 하려면 로그인을 해야 합니다.

Total 643건 12 페이지
달콤한 인생 목록
번호 제목 날짜
478 잡담 ??.12.24
477 어용지식인 유시민 ??.12.23
박완서 '거저나 마찬가지'에 부쳐 ??.12.17
475 오늘 하루 ??.12.17
474 혹시 이런 증상이 있다면 ??.12.15
473 김장 2 ??.12.13
472 그냥저냥 2 ??.12.02
471 무제 2 ??.11.28
470 근황 (+이미지 추가) ??.11.26
469 혼자하는말 ??.11.01
468 나르시소 퍼퓸 10ml 2 ??.10.25
467 그냥 잡담 ??.10.25
466 화장품 유통기한/사용기한 잡담 ??.10.22
465 환절기 기초 루틴 ??.10.12
464  [비밀글] ....... ??.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