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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 지나가는 생각, 단편적 느낌, 잡고 싶은 찰나들
6348 bytes / 조회: 688 / 2019.09.24 14:36
신념 혹은 가치


신념과 가치가 변질되면 그것만큼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 것이 없다.

그것이 타인의 일이라도, 단지 한 개인의 문제일지라도 그렇다.

본인들이야 억울할 거다.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불러일으킨 사회 반응의 화자가 3인칭 관점이니까.

 

진중권 교수의 얘기가 오늘 각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논객인 진 교수가 입을 다문 지 제법 되었고 그런 근황이 최근 정의당 탈당 소식과 어우러지면서 왈가왈부가 쏟아지고 있다.

 

나는 미학자로서 진 교수에게 호감이 있고 진 교수의 글을 좋아해서 책이 나오는 족족 사모으는 미학자 진중권의 팬이다. 원래는 논객 진중권의 팬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기를 헤아려본 적은 없는데 지금 쓰면서 새삼 헤아려보니 아마도 진중권이 모 종편 시사 방담 프로에 출연하면서 부터였던 것 같다. 출연이 이유가 아니라 시기적으로 그 이후였다는 거다.

 

예전에 항간에 그런 얘기가 떠돈 적이 있지만 종편 프로그램 동료 출연자 전여옥, 안형환 등과 어울리면서 진중권의 리버럴주의가 변질되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내가 보는 진중권 교수는 진보주의자도 좌파주의자도 아니다.

진중권 교수는 그냥 리버럴주의자다. 

그래서 진중권은 파시즘- 집단주의, 전체주의를 가장 싫어하고 좌든 우든 아주 조금이라도 '패거리'의 기미가 보이면 질색한다. 이건 진영주의에도 해당한다. 그러니 진중권이 싸우는 상대는 좌/우 진영에 머물지 않고 온오프 커뮤니티, 남여노소, 종교 뭐든 가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어제는 내 편, 오늘은 네 편, 내일은 공동의 적이 되는 거지.

 

진중권의 정의당 탈퇴 이유와 관련하여, 요즘 내가 기자 안 믿는 병에 걸려서 '조국 장관 임명 찬성한 정의당의 입장에 실망했다'는 등의 기사 내용은 일단 거른다. 이건 나중에 진중권의 입으로 혹은 손으로 직접 밝힐 때 그때 얘기하면 되는 거고.

 

다만 짐작하기로 리버럴리스트 진중권이 정치/사회/문화 컨텐츠를 상대로 벌이는 논객의 역할에 지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은 든다. (feat. 온리마이피셜)

 

진중권이 수구보수 정권에 날선 비판을 던지고 박정희를 공개 비판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제멋대로 진중권을 좌파진보지식인으로 분류하고 진중권에게 진영의 논리에 힘을 보태기를 기대하지만, 말했듯이 진중권은 리버럴리스트이고 진중권이 가장 싫어하고 질색하는 건 전체주의, 집답주의, 진영주의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본 지식인 중 가장 근본주의자, 리버럴리스트가 진중권이다.

 

사실 나는 진중권이 정의당원인지 몰랐다. 당원 기간이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지만 내겐 리버럴리스트 진중권의 입당 소식이 탈당 소식보다 더 의외롭고 놀라웠다. 아마도 진중권으로선 입당 자체가 큰 결심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노유진을 진행하던 시기에 노와 유의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 연장선으로 뇌피셜이지만 노회찬 의원의 사망과 유시민 작가의 탈당이 진중권의 탈당 결심에 일획을 그었을지도 모르겠다.

 

진보주의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결점주의, 결벽주의다. 진보주의자는 이코노미만 타야 되고, 에코백만 들어야 되고. '진보는 가난하다'는 황당무계 근본 없는 가치가 사회적으로 대두되었던 가장 대중적인 사건이 아마 나꼼수 팀의 뉴욕행 비지니스석 탑승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당시 동행했던 공지역 작가의 명품백 소란도 있었지.

 

연장선으로, 나는 이번 조국 장관의 청문회를 그동안 사회 현상에 머물던 '강남좌파'가 정치 현상으로 무대를 옮긴 첫 번째 본격적인 신호탄으로 본다.

 

조국의 자식은 안 되고, 나경원/장제원의 자식은 되고. 부패한 자의 거대한 부패에는 관대하면서, 정직한 자의 소소한 부패에는 판관 노릇하려는 여론.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는 수구들의 잔꾀와 제 밥그릇이 깨질까 발가벗고 막춤 추는 사법 주체들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것이 지금 '조국 대첩'이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보다 냉정해졌을 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희한한 촌극들은 학계에서 연구되고 분석될 것이며 그 결과로 인문학, 사회학 분야에서 학문적 진보를 이룰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이 수구가 만든 프레임이든 뭐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프레이즈는 이제는 진보의 '업(業)'처럼 되어버렸다. 좌파의 태생적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낸 이 프레이즈를 진보주의자들은 이제 그만 쓰레기통에 처넣어야 된다. 자신들의 진영에 만들어진 미궁을 인정하고 깨부수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강남좌파 조국 장관의 등장이 참으로 반갑다.

온 마음으로 온 진심으로 조국을 응원한다.

더불어 리버럴리스트 진중권의 한계가 아쉽다. 역시 응원한다.

 

긴 글을 요약하자면,

나랑 같이 못 먹고 못 배우고 못 살아야지, 넌 왜 잘 먹고 잘 배우고 잘 사는 거야! 바락바락 하지 말라는 소리다.

넌 계속 못 먹고 못 배우고 못 살아야지, 왜 나처럼 잘 먹고 잘 배우고 잘 사는 거야! 바락바락 하지 말라는 소리다. 

 

(+)

진중권 교수의 신간은, 이후 진 교수의 탈당 변을 보고 결정할 생각이다.

리버럴리스트 진중권은 응원하지만 자유당주의자 진중권은 응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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