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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4 bytes / 조회: 756 / 2019.10.02 07:59
언어를 구사하는 방식


조국 법무부장관 자택 압수수색으로 화제가 된 자장면과 케잌.

자장면은 검찰의 조폭본능, 케잌은 가장의 책임으로 대체되어 지켜보던 대중에게 감정이입을 불러일으켰다.

검찰청과 법무부장관의 대립이 이제는 검찰과 시민의 대립으로 옮겨온 상황.

 

간밤, JTBC뉴스룸 긴급 토론과 PD수첩을 연이어 봤다.

긴급토론의 주제는 '조국 장관과 검찰 수사 어떻게 봐야 하나' 이고, PD수첩은 '장관과 표창장'을 다루었다.

 

일단 <긴급 토론> 관전평.

 

긴급 토론에 패널로 출연한 유시민 작가는, 지난주 알릴레오 라이브와 창원 강연(28일 토요일. 미리 알았으면 갔을텐데)을 시청한 소감으로 작심 등판이구나 예상했다. 당연히 기대도 했고. 이 양반은 뭐랄까, 이제 경지에 오른 느낌이다. 유 작가가 작심 등판했구나 느꼈던 건 두 번인데 어제 <긴급토론>과 1년 전 같은 방송사의 '비트코인'을 주제로 한 토론에서였다.

1년 전 '비트코인' 때 '천재가 노력까지 하면'의 실례를 봤다면 어제 토론은 그때 느꼈던 감탄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이 양반은 그냥 차원이 다른 느낌.

유시민은 말하자면 '시장의 언어'를 쓴다. 빠르고 간단하고 쉬워서 이해가 잘 되고, 기억하기 좋고 그리하여 남에게 전달하기에 좋다. 말과 글 밖에 가진 게 없는 아무 힘 없는 일반시민이라고 본인을 지칭했지만 이러한 언어구사력은 광장정치가 주류가 된 21세기에 굉장한 무기이고 자산이다.

 

같이 출연한 상대편 패널 박형준 교수는 유 작가와 비교하기에 아주 좋은 대조군인데(제작진이 노리고 섭외했는지는 모를 일) 유 작가는 '강단의 언어'를 쓴다. 누구나 아는 단어인데도 어렵고, 지루하고, 기억에 안 남고 그리하여 남에게 옮기기 어렵다.

'현학적인 언어'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1은 형용사로만 이루어진 언어를 쓰는 것이고, 2는 뫼비우스식 언어를 쓰는 것이다. 박 교수는 2에 해당한다.

박 교수가 쓰는 언어를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의 예를 들어보면 이런 거다. 멀미주의.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하는데 토끼가 앞서 나가고 거북이가 뒤에서 쫓아가는 건 일단 정말 쫓아가는 건지 단지 그렇게 보이는 건지 먼저 파악해야 하고 다음으로 토끼가 거북이를 정말 앞서 가는 건지 확인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거북이가 뒤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토끼가 앞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가능이 크고 설사 토끼가 앞서 간대도 그것으로 거북이가 토끼 뒤를 따르는 것으로 굳이 봐야하는지 의문이 들고 이는 거북이가 느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토끼가 빠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토끼가 빠른 것이 거북이가 느리다고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오리무중식 언어를 쓰는데 한 마디로 '궤변', 전문용어로 '말장난'이라고 한다.

듣는 사람의 인내심을 어지간히 시험하는 화술인데 오죽하면 유 작가를 향한 지극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박 교수의 궤변을 인내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어 <썰전> 시청을 포기했을 정도.

어제 토론에서도 여지없이 저 궤변이 발휘되었는데 유 작가가 눈에 힘 주고 궤변을 자근자근 밟아주니 속이 시원하더라. 이런 저런 개념을 동원해 회색의 언어로 모호하게 섞어 본말전도할 때마다 유 작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버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 예로 박 교수의 입에서 '호도'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유 작가가 드물게 토론 주제와 상관 없이 일장연설한다. 별렀구나 했다.

 

위 내용에 보충해, 토론 내용 중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인데 박형준 교수가 '국민이' 라고 했을 때 유시민 작가가 '국민이라고 (집단화)하면 안 된다' 고 반박하던 장면. 자유당이 브리핑 같은 거 할 때 '국민이' 하면 M이 지들 맘대로 '국민'을 끌어다 쓴다고 질색하고 치를 떠는데 어제 유 작가의 반응이 아주 친숙하더란.

 

나머지 두 사람은 그냥 넘어가자. 김종민 의원은 유 작가 옆에 있으니 확실히 내공이 딸리는 게 보인다. 이 초선의원의 눈높이 대화법은 아직 설익어서 세련되지 못하고 촌스러운데 정치경력이 쌓이면 극복하던지 보완하던지 하겠지.

주호영 자유당 의원은 사법 판단의 대상이 되면서 몇 년 전부터 쫄보 포지션이라 딱히 보탤 말이 없다.

 

-

 

<PD수첩>이 방영한 내용은 기존에 각자의 방식으로 팩트체크해왔던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표창장 위조에 얽힌 전말을 몰랐던 사람이면 놀랐을 거고, 알았던 사람이면 '드디어 공중파가 다루는구나' 감격했을 거고.

과외의 얘기지만, 이번에 법무부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전후막후에 벌어진 일들을 보면서 조국 장관이 동지는 잃었지만 친구를 얻었겠구나 한다.

 

-

 

'청문회 도중 후보자 부인 기소'로 한창 시끄러울 때 내가 故노무현에 빗대어 조국의 멘탈을 걱정하니 M이 흙수저 노무현과 금수저 조국의 멘탈은 기저가 다르다는 말을 했다. 곰곰히 되씹어보면 참 불행한 얘기다. 10년 전에도 지금처럼 같이 싸워줬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이기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적어도 그가 외롭지는 않았을 텐데. 그를 혼자 외롭게 광장에 내버려뒀던 무관심이 지금도 너무 가슴이 아프다. 국정 지지율 50%인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장관도 저렇게 먼지 털듯 털어대는데 이명박 정부 초기에 노무현과 주변은 도대체 얼마나 털었을까, 상상이 안 된다. 서거 소식이 속보로 뜨는 걸 나는 아침 밥상머리에서 봤다. 그 아침에 먹었던 밥은 지금도 얹힌 것처럼 불편하다.

 

유시민은 김어준을 장판파 전투의 장비에 비유했는데 김어준이 강연과 방송, 책을 통해 기억할 만한 말을 많이 했지만 그중 하나만 꼽으라면 이거다.

 

 

잘 가요, 촌뜨기 노무현.
남은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 김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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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노무현 노제 때 소방차 뒤에서 몰래 울었다는 그는 노회찬 의원의 장례식장에서도 멀리 떨어져서 영정사진을 한참동안 보다 돌아간 걸로 알고 있다.

거대 권력 MB와 삼성과 싸우는 그의 전투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언젠가 M이 지구 종말에 필요한 사람은 몇 명일까, 물었다. 내가 모르겠다고 하니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요즘 1인의 힘에 대하여 많이 생각한다. 물론 주인공은 유시민, 김어준이다.

남은 세상, 어떻게든 해보려고 죽어라 뛰고 있는 김어준을 본다.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받아쓰기 보도를 할 때 김어준 혼자 '사실 보도'를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물론 다른 유튜버, 팟캐스트도 있지만 언론의 형태를 갖추고 보도 형식을 취한 건 김어준이 유일하다. 즉 잃을 거 없는 사인이 아니라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하는 공인의 포지션으로 달렸다는 거다. 웹서핑 중에 김어준을 '정육부장관'이라고 부르는 걸 보고 하하 웃었다. 김어준 최고의 자산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웃게 한다는 거다.

고기 적당히 드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그의 공적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사인으로도 즐겁고 행복하길 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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