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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8 bytes / 조회: 1,057 / 2021.03.11 16:20
이스탄불, 에르도안 그리고 권력


그러니까 쇤메즈의 소설 『이스탄불 이스탄불』을 읽던 중이다.

 

이스탄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의문이 든 건 소설의 「둘째 날」 챕터를 읽으면서였다. 나이도 직업도 모두 제각각인 수감자 넷의 공통점은 이 이국적인 도시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일까. 그리하여 소설을 완독하자마자 유튭에 접속했다. 그리고 검색 두 번만에 에르도안이 등장했다. 

 

現 터키 대통령인 에르도안 집권 중반기에 일어난 군부 쿠데타를 지지기반인 국민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기존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교체하는 개헌 과정에서 많은 언론인과 지식인들이 반테러법이라는 명분 아래 탄압당한 내용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오르한 파묵을 비롯해 사회 유명 인사 다수가 총리에서 대통령이 된 에르도안 정부에 의해 대통령 모독죄로 수감되거나 수감될 뻔했다는 내용도 있다. 와. 대통령 모독죄라니. 지식인 탄압은 술탄이 지배하는 중동 국가 중 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으로 잘 정착한 나라라는 평을 받던 터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작가이며 인권변호사이자 저술가인 쇤메즈 역시 정치범으로 수감되어 고문을 당했으며 이후 영국으로 망명해 치료를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소설에 등장하는 고통스러운 장면은 작가의 체험을 배경으로 쓰여졌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모처럼 재독하고 싶은 소설을 만났는데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와 겹친다.

 

각설하고.

 

유튭에서 속성으로 과외 받은 에르도안은 말하자면 개발도상국 시절 박통 같은 인물인 듯하다. 에르도안의 정치를 크게 경제정책, 군사정책, 종교정책으로 나누었을 때 에르도안이 범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계기가 된 건 경제정책이다.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에서 벗어나 화폐 가치를 정상화시켰을 뿐 아니라 유럽의 병자라는 오명을 털고 EU가입에 나서는 등 터키 경제에 객관적인 치적이 많다. 

 

하지만 경제정책을 제외한 군사, 종교는 에르도안이 경제에서 이룬 업적을 무위로 돌리기에 충분하다. 에르도안은 군사적으로는 중동의 화약고 바로 옆에서 핵무기 보유 행보를, 종교적으로는 케말의 6대 국가 기조를 깨고 이슬람 근본주의로 휘귀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에르도안의 총리 임기가 다하면서 발생한다. 에르도안의 권력욕은 경제정책으로 얻은 국민적 지지를 업고 개헌을 단행하여 터키의 국부인 케말이 공화국을 수립한 지 거의 1세기 만에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꾸는데 성공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각종 입법을 통과시켜 사실상 종신 대통령의 가능성을 열었다. 현재 법으로는 에르도안의 나이가 80세가 되는 2034년까지 연임할 수 있다. 에르도안의 행보로 보아 과연 34년에 퇴임할지 의문이지만. 게다가 유럽 주의로 가던 터키의 방향을 중동 주의로 턴하면서 미국의 묵인과 푸틴의 동조 속에 터키 핵무장을 진행하고 있다.

/ 먼훗날 터키의 어느 국민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에르도안이 그래도 경제는 잘했다고. 망해가던 터키가 누구 덕에 먹고 살게되었냐고. 에르도안은 반신반인이라고. 나라 팔아먹어도 지지할 거라고. 개헌 여부 투표 때 온갖 선거/투표 부정 정황이 의심되는 와중에도 터키 외곽 시골 지역에선 찬성 몰표가 나왔다고 하니 지구촌 어디든 거기서 거기인가 싶고...

 


민주주의의 가장 불행한 점은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기 위해 희생한 당대는 그것의 과실을 맛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에르도안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보는 동안 줄곧 단어 하나가 지속적으로 따라다녔는데 바로 '권력욕'이다. 나도 인간인지라 살면서 여러 욕심을 부릴 때가 있는데 생각해보면 그중에 '권력욕'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간단한 예로 '나 학교 다닐적' 흔한 레퍼토리인 반장도 하고 싶어서 한 적은 없었다. 반장을 하는 중에 딱히 즐겁거나 좋았던 기억도 없고. 그리하여 새삼 권력욕이란 것에 관하여 곰곰 생각해보니 그건 소수 특이한 특정인에게만 있는 '어떤 무엇'인가 형이상적인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에르도안을 검색하니 최근 일자 기사에 '자유/인권 강화 정책'을 정부안으로 내어놓았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거기엔 표현, 결사, 종교의 자유를 강조하는 내용도 있다. 어쩌면 에르도안은 부국강병 터키를 만들겠다는 선한 신념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희생과 반목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것일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동시대의 누가 역사의 과정에 있는 한 인간의 신념과 정의를 논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끈질기게 남는 의문은 있다. 과정이 불의한데 결과가 정의로울 수 있을까,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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