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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 지나가는 생각, 단편적 느낌, 잡고 싶은 찰나들
7503 bytes / 조회: 751 / 2022.01.13 18:33
세대와 정치


그러니까 이건 요즘 '이대남' 관련하여 커뮤마다 넘쳐나는 여러 입장의 글을 읽다가 한마디 보태는 글=오지랖이다.

- 당연하지만 모든 20대가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말하자면 나는 또래에 비해 비교적 혜택받은 이십대를 보낸 편인데 어느 복학생 선배한테 육성으로 '느아부지 뭐하시노' 소리를 들어가며 무난하게 이십대를 지나온 경험자로서 아는 척 좀 하자면 이십대는 원래가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찍어서 먹어봐야 아는 세대다. '느아부지'에 첨언하자면 학교에 잔디 깔아주고 입학했다는 소문이 있었다는 걸 안 건 3학년 봄이었는데 왜 그런 소문이 돌았는지 아직까지도 이유를 모른다. 여튼 쁘띠부르조아 소리를 듣던 20대의 나는 고백하자면(고해인가...) 유권자로서 단 한 번도 내 한 표를 행사한 적이 없었다. 아빠가 뉴스 볼 때 오다가다 잠깐씩 눈동냥하기론 소위 정치한다는 인간들은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똑같은 놈들이라 '내 귀한 한 표를 저런 놈들에게 쓰지 않는' 것이 나름 아아주 큰 자부심이었다. 

 

한번은 M에게 물었다. '노무현은 대통령인데 왜 하는 일이 없어?' M이 대답했다. '뭘 좀 하려고만 하면 한나라당이 못하게 막으니까'. 그리곤 언론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 임기말이 되고 대선 시즌이 오고 이명박, 정동영이 각 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지만 나는 여전히 정치에 관심도 없고 정치인 이름도 모르는 정치 무관심자/회의론자였다. 그럼에도 이 무렵 내가 M에게 한 말은 기억한다. '대통령으로 이명박은 아니라고 본다. 건설이 온갖 이권, 비리, 청탁으로 더러운 대표적인 바닥인데 거기서 수십년을 호의호식한 인간이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모두가 다 알다시피 '여러분 이건 모두 새빨간 거짓말인 거 아시죠!' 온 국민 앞에서 새빨간 거짓말을 외치며 이명박이 당선되었다. 돌이켜보건대 아마 이때부터 정치, 정치인, 정치권이라는 것에 서서히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정치무관심자인 내 인생에 전환점이 온다. 5월 그날. 엄마 성화에 겨우겨우 일어나 졸린 눈으로 거실 탁자에서 아침 밥을 먹으며 나는 TV 속보로 '故노무현 서거'를 봤다.

 

M은 정치인을 '사이코패스'라고 정의한다. 실제로 사이코패스는 아니겠지만 그 정도의 인격/인성 박리가 아니면 못 하는 게, 그 바닥에서 못 살아남는 게 정치질이라는 것에는 나도 동감한다. 그래서 나는 문통을 귀하게 여긴다. 문통은 유권자로서 내가 최초로 투표한 정치인이다. 그것도 두 번이나. 도덕적으로 훌륭하고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사람을 아마 앞으로도 보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이십 대로 돌아와서.

기억을 돌이켜보건대 10대와 30대 사이에 껴서 공유보다 소유가 우선하는 이십 대는 상대적으로 자의식이 강한 세대다. 숲보다 나무가 더 잘 보이고 미래보다 현재가 중요하다. 공정, 정의는 길거리에 넘쳐나는 식상한 구호 중 하나에 지나지 않고, 검찰 권력에 한 일가가 박살나는 것도 강한 놈이 살아남는 사회적 약육강식의 사례일 뿐이다. 재미있고 새로운 게 좋고 30대 이상은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이십 대 시절 나는 마흔이 되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흔 이후의 세상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위안이 되는 건 누구나 그렇게 나이를 먹으며 세대를 거쳐간다는 거다. 그러니 이대남, 이대녀 분석하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작금의 분위기도 결국은 정치적인 논리, 정치적인 언어인 것이다. 아이를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는 얘기처럼 다음 세대가 되어야 그 세대의 언어를 얘기할 수 있게 된다. 계단을 밟는 것처럼 한 세대, 한 세대 순서대로 통과하는 것이다. 세대 무임승차 같은 건 없다. 자기가 속한 세대의 언어로 생각하고 얘기하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다. 그러니 이십 대 뿐 아니라 어느 세대든 다른 세대에게 설득되지 않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70대가 아직도 저러고 있겠는가.

 

결론은, '이십대'를 해석하는 건 그 시절을 지나온 내가 보기엔 소모적인 공론이라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짜장 지지 청년들이 마이크를 들고 공정, 상식, 정의를 외치는 장면 위로 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던 얼굴들이 겹치는 건 나도 어느새 꼰대 세대가 되어서인가 보다.

 

'꼰대' 하니 M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젊은 꼰대랑 늙은 꼰대랑 어느 쪽이 더 문제인가'라는 내용인데 결론만 쓰자면 내 눈엔 '젊은 꼰대'가 더 꼴불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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