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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 지나가는 생각, 단편적 느낌, 잡고 싶은 찰나들
10510 bytes / 조회: 735 / 2022.01.20 04:01
나는 키보드 워리어인가봄(feat.잡담)


-확인할 게 있어 오거서를 뒤지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세상에, 같은' 게시물을 두 개나 쓰다니! 그러고도 전혀 몰랐다니! 석 달 동안 팔자에 없는 리모델링을 하느라 혹사 당했던 후유증이 이렇게 나타나나 봄. 요즘 올빼미에 빙의 상태. 동이 틀무렵 잠들고 오후 햇빛이 거실에 쏟아질 때 눈을 뜬다. 생산적인 아웃풋이 전혀 없는 원시 상태.

 

-역시 오거서를 뒤지던 중, 길 출판의 벤야민 선집 시리즈를 보다가... '서사 기억 비평의 자리'를 한 권 더 주문해야겠다고 결심. 일시품절인 줄 모르고 지역 서점에 부랴부랴 주문했더니 책 상태가 영 메롱하다(서점에 주문하면 진열된 책을 받는다). 새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두고 상태 안 좋은 책은 반신욕용으로 읽어야겠다.

 

-한 해를 정리할 때 그리고 새 해를 시작할 때 가장 심란한 건 '아웃풋'에 관한 고민. 몇 해 전부터 올해는 뭐라도 결과물을 손에 쥐어야 될 텐데 고민을 반복한다.

 

 

 



 

 

리모델링 후기(프롤로그)

(쓰다보니 글이 길어져서 게시글 사이에 문단도 나누고 제목도 따로 붙였지만 본격 리모델링 후기는 아니에요. 리모델링 후기 본편은 드라마 '펜트하우스'에 조금 못미치는 막장대하드라마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리모델링하는 것에 관하여 M과 의견을 나누던 중에 M이 '집을 팔고 새집에 이사가는 게 낫겠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 말에 바로 수긍한 건 직접 경험을 해보니 제정신으로는 못할 짓이 리모델링이기 때문. 지난 석달 비슷한 평형대의 아파트 A와 B의 리모델링에 매달렸고 다행히 해를 넘기지 않고 두 집 모두 작업을 끝냈지만 아직 소소하게 마무리가 남았다. 일례로 B는 베란다쪽 실리콘 작업이 남았는데 이건 날이 풀리는 봄에 하기로 했다. 

 

문제는 A. 인테리어 관련 자잘한 액세서리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A의 마무리가 의외로 지지부진해졌다. 현관의 경우 호수를 표시하는 번호판이랑 스토퍼를 달아야 되는데, 짐작하기로 물량이 넘치는 연초에 택배 파업이 겹쳐서인지 해외에 주문한 번호판이 보름만에 도착했다. 

시간이 좀 많이 지체되긴 했지만 이건 현관에 붙이기만 하면 되니 문제 없고. 계획에 없다가 뒤늦게 추가 설치를 결정한 중문은 지인이 AtoZ 해주시는 거라 나는 신경 쓸 일이 전혀 없고. 복병은 양쪽 베란다에 설치하기로 한 원목 우드 블라인드인데, 업체 실무자가 현장 실측을 했는데 앞베란다 창이 규격을 넘어가서 업체랑 사이즈와 설치 방식을 다시 조율해야 한다. 업체는 우드가 무거우니 사이즈를 나누고 샷시에 고정하겠다는 입장이고 나는 사이즈를 나누지 않고 천장에 고정하길 원하고. 문제는 지난 석 달동안 현장에서 목업하는 분들이랑 하도 지지고 볶고 했더니 이젠 이런 과정 자체가 너무 피곤하다. 

돈으로 해결된다면야 간단하고 편한 일이지만 현실은 비용을 많이 치르든 적게 치르든 현장은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거다. 이것이 이번에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지불하고 얻은 귀한 경험이다. 

 

 

인테리어 업체에 턴키 공사를 맡긴 B는 애초에 별기대 안했기 때문에 결과물이 공산품처럼 나왔어도 그냥저냥 오케이 했다면, A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리가(with M) 직접 손으로 발로 뛰며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관여한 보람이 있어 결과물이 대체적으로 만족스럽게 나왔는데 사실 이건 전적으로 M 덕분이다. 

리모델링을 반대하는 M에게 '너한테 도움요청 안 할 거고 내가 혼자 알아서 할 것'이라고 큰소리 치고 업체와 만나 견적을 내고 실측을 하던 초기의 일이다. 내가 업체에게 받았던 자료를 M에게 공유하고 의견을 물을 때마다 M이 한심해하면서 '올드하다, 센스가 없다, 바가지다' 못된 소리를 던지길래 내가 업체의 입을 빌어 어쩌고저쩌고 반박했더니 '웃기시네(진짜 이렇게 말했다)' 비웃던 M이 도저히 안 되겠던지 어느날 '업체 전화번호 불러라' 했다. 그리고 M이 직접 참전하면서 그때까지 진행하던 걸 모두 엎고 업체를 다시 선정하고 견적도 새로 내고. 그뒤로 석달내내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 먼길을 오가며 M이 현장에 내려와서 작업을 확인하고 이런저런 조율을 하지 않았다면 유툽이나 개인 블로그에 쏟아지는 온갖 후기처럼 '돈 쓰고 마음 상하고 결과물은 맘에 안들고'가 되었을 거다. 안식년에 쉬지도 못하고 고생한 M에게 이 자릴 빌어 다시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B는 턴키 업체에 맡겼고 A는 주방, 욕실, 도장 등등에 필요한 자재를 우리가 직접 고르고 결정해 전문업체에 시공을 맡겼는데 와중에 A, B 시공을 했던 업체 대표와 목업을 했던 분들 모두 공통적으로 M에게 '뭐하시는 분이냐', '이쪽 계통 일을 하시는 분이냐'고 묻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목업을 조율하는 과정이 번거로울 것 같자 주방 벽타일과 수전 이전, 전기 배선 작업을 아예 M이 직접 했기 때문이다. 

주방벽타일의 경우 포세린 600x600을 붙였는데 그때부터 바닥/벽지 시공업체 대표는 M이 관계자라고 단단히 믿으심. 

종목은 다르지만 관련하여 에피소드가 또 있는데, 몇 달 전 세무 관련 문제를 처리할 일이 있었다. 그때 유관 관계자가 24개월 치 장부 내역을 검토하고 산정하는 게 너무 복잡하고 힘드니 그냥 손해를 보고 포기하라고 조언했는데 이 얘기를 들은 M이 자료를 보내라고 하더니 반나절도 안 되어 해당 내역을 산정하고 엑셀로 뚝딱 정리해서 보냈다. 그리고 이 엑셀 시트를 보자마자 관계자가 뱉은 첫마디가 '뭐하시는 분이냐'고. 

 

내 홈 단골 출연자이며 부캐도 있는 M은 몇 번 언급했지만 IT 인재다. 평소 누가 더 바보인가 투닥거리며(이과 바보 vs 문과 바보) 지내다가도 이럴 때면 멘사 상위 1%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M은 문과생인 내겐 그저 조물주처럼 위대한 이과생님이며 한줄기 빛인 것이다. 엄마는 너도 M만큼 잘 한다, M보다 네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응원하지만 애석하게도 엄마 딸은 니퍼와 펜치도 구분 못하는 똥손입니다요~ 

(M tmi가 너무 많아서 나중에 M이 이 글을 보면 분명 내려라 지워라 한소리 할듯... M은 다른 사람이, 특히 내가 본인 얘기 하는 걸 질색한다;;; 질색하는 것까지 다 얘기함 흐~)

 

 

리모델링 후기는 따로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쓰다보니 장문.......ㅠㅠ 나는 왜 이렇게 키보드만 쥐면 자제가 안 되는지 모르겠다...이것이 바로 문과생 DNA가 아니겠는가... 라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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