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 성추행 이야기 > 달콤한 인생

본문 바로가기
Login
NancHolic.com 감나무가 있는 집 Alice's Casket 비밀의 화원 방명록
감나무가 있는 집
달콤한 인생
- 지나가는 생각, 단편적 느낌, 잡고 싶은 찰나들
6978 bytes / 조회: 866 / ????.03.17 21:58
[펌글] 성추행 이야기


* 여성이라면 누구나 '성추행'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세상이지만 막상 '그 이후'에 대한 논의는 늘 아쉬운 것 같아요.
기사의 후반부 '상담'의 내용이 한번쯤 읽어볼만 한 것 같아서 원문 링크와 함께 내용 일부를 옮겨봅니다.

성추행 이야기

(…중략)
성추행 피해자이면서도 주변의 반응에 더 부끄러워하며 지내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전문 상담기관을 찾았다. 우선 여성긴급전화 1366에 전화를 했다, 상담원은 “생각도 못한 사람이 (성추행을) 그렇게 하는데 충격받은 상태에서 하지 말라는 말밖에 뭘 더 할 수 있겠냐. 증거를 남기고 신고하는 건 나중 문제다. 우선 상담을 받으라”며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02-739-8858)를 연결해주었다. 상담 시간이 회사 업무 시간과 겹치니 점심시간을 이용해 상담하려고 점심도 먹지 않고 배회하다가 아무도 없는 수유실에 숨어들어가 전화를 걸었다. 상담은 사건 발생 나흘 뒤, 오후 1시 언저리에 이뤄졌다.

“당신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고 나온 거다. 그 사람을 배려하다가 당했고, 발을 만지는 순간 그 상황이 잘못됐다는 걸 인지했다. 그리고 스스로 불쾌감을 추스릴 수 있도록 행동했다. 성적 불쾌감을 느낀 순간에 그 상태를 벗어나려고 노력한 것은 아주 당연한 대응이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때 자신을 오픈한 상태가 되는데 이 상황에서 공격을 받으면 공황 상태가 된다.” 상담자는 우선 내가 겪은 사건에 대한 지지의 말을 건넸다.
성폭력 대처 요령이란 건 정답이 없다. 이런 문제에는 자기 느낌을 신뢰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그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쉽게 말하고 대처 방법 운운한다는 것은 성적 감수성이 없어서 일어나는 문제다. 상담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성폭력 상황에서 어떠한 대처도 못해 자괴감을 느낀 적이 많았다. 어떻게 대응하면 내 기분이 좀더 나아질까 싶어 훈련한 결과 이제는 욕 한 마디, 주먹질 한 번은 하게 됐다. 내가 그게 마음 편하기 때문에 선택한 거다. 만일 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고 마음이 불편하면 그건 정답이 아니다. 성폭력 앞에 ‘감성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처리하라’는 말은 말이 안 된다.” 주변 반응에 더 상처받고 있던 내 마음에 위로가 내려앉았다.
(…중략) 

예전에 여학생들끼리 '성추행'을 주제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당시 인원이 대여섯명 정도 되었는데 놀랍게도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안심한 목소리로 "다행히 나는 아직까지 그런 경험이 없어." 했더니 한 선배가 "있었는데도 네가 미처 인지를 못 했을 수도 있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대학 3학년인 외사촌 여동생이 작년에 겪은 일입니다. 버스를 탔는데 얼마쯤 가다 보니 동생이 서 있던 좌석에 앉아 있던 어느 정신 나간 (젊은)놈이 동생이 입고 있는 치마 아래로 손을 슬쩍 갖다대더랍니다. 예쁜 얼굴에 손대면 툭 날아갈 것 같은 청순가련형 외모와 달리 하는 짓은 아주 제대로 선머슴인 동생은 그 순간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정신 나간 놈의 머리통을 있는 힘껏 내리 쳤다고 해요. 그랬더니 버스가 서기가 무섭게 내려서 도망 가버리더랍니다.
이 얘기를 듣고 이모랑 저는 동생의 행동이 우스운 한편 "그 남자가 해꼬지를 하면 어쩌려고 그런 짓을 했냐, 다음 부턴 그냥 피해라" 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했습니다. (동생은 여전히 "내가 그때 흥분만 안 했으면 구두 굽으로 내리쳤을 텐데"라고 아쉬워했어요)

위 링크 기사를 읽으면서 상담소의 상담자가 정말 (노랑 형광표시의)저런 얘기를 기자에게 해주었다면 저 기자는 굉장히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얘기할 때 사람들은 대개 '과거 회귀'적인 충고를 합니다. "그러게 왜 그랬어", "왜 더 빨리 뭔가를 못 했어?", "그걸 그냥 놔뒀어?" 등등이 그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이런 얘기들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주어가 "너는"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얘기들은 말하는 사람의 본의든 아니든 피해자에게 원죄 의식을 씌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기자 역시 주변의 그런 반응에 이중으로 상처를 입었다고 얘기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현명합니다. 하지만 막상 일이 발생하면 달라집니다. 사건 발생 전엔 내 일이 아니므로 객체로서 문제에 논리적으로 접근하지만 사건 발생 후엔 당자사인 주체로서 감정적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적인 대응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하는 심리적 거부 반응이라는 2차 피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변의 누군가 저와 같은 일을 겪었을 때 우리가 그녀를 위해 해주어야 할 것은 '탓'을 하는 이성적 충고가 아니라 나는 네 편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위로일 것입니다.
"너는 잘못한 게 없어. 너는 최선을 다했어.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유독 '성'(性)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면 피해자인 여성이 가해자가 되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우는 집단과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전에 MBC에서 방영했던 '아우성'(아름다운 우리들의 성)의 진행자였던 오숙희씨가 어린 시절에 겪지 말았어야 할 일을 겪고 난 직후, 그 사실을 안 어머니가 "너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다"고 얘기를 해 주었고 그로 인해 상처를 현명하게 극복하게 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쉽고 간단한 일인데도 막상 우리 주변에 이런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드문 것 같아 아쉽습니다.
* 댓글을 읽거나 작성을 하려면 로그인을 해야 합니다.

Total 643건 35 페이지
달콤한 인생 목록
번호 제목 날짜
133 국회법92조 3 ??.07.22
132 곡학아세 (曲學阿世) 3 ??.05.15
131 혼자 하는 말 4 ??.05.01
130 태봉씨 7 ??.04.10
129 0409. 잡담 - 요즘 12 ??.04.09
128 정신이 없어요 7 ??.03.27
127 0323. 잡담 - 나의 주말 6 ??.03.23
[펌글] 성추행 이야기 4 ??.03.17
125 미리 버리면 안 되는 것 6 ??.03.08
124 흥미로운 그의 관점 8 ??.03.04
123 크록스 crocs 7 ??.03.03
122 그냥 주절주절 4 ??.02.27
121 늘 하는 실수 6 ??.02.17
120 [펌글] 미네르바의 부엉이 3 ??.01.16
119 미리 해피 크리스마스 10 ??.12.20